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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 얼음 깨고, 봄 개나리와 함께 ..내게 온 너

by 캠강맘

추운겨울.. 몸을 알리는 개나리와 함께.. 내게 온 너


추운 겨울을 녹여내고, 점점 옷이 얇아지고 있는 지금! 골목마다 보이는 개나리는 이젠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울새도 없이, 공원 담아래, 차로 가로 지르는 도로 곳곳에, 저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 산에 개나리가 보이고, 진달래도 보인다.


하얀 눈이 쌓이고, 추운 겨울 머리 끝까지 이불을 덮고 앉아 있어도 입에서 후후 하얀 연기가 피어올라오면 따뜻한 봄이 그리웠다.

19살 가장의 무게가 무거운 줄 모르고, 버스비를 아낀다며 한번에 타는 버스를 타기 위해 20분을 걷는데..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빨갛게 얼리고, 숨을 쉬는 코가 얼어붙는 가 한다.


해마다 봄을 알리는 꽃은 개나리였지.

개나리는 1년의 시작을 알리고, 새 희망을 꿈꾸게 했다.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는 내 인생 첫 기억을 품고 있다.

봄이 오는 길목마다 펼쳐진 그 노란 풍경은 어린 소녀의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 있었다.

옆방 주인집 동갑내기 똘똘이가 친구들과 발을 구르며 뛰놀던 그 길위에서, 나는 너무 재밌고, 행복했다.


장판이 누렇게 딱 달라붙은 아랫목 이불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밍기적거리다가도 눈을 비벼 잔득 움치린채 이불밖으로 나왔던 어린시절.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절, 마당엔 옷감으로 돌돌 말린 수도가 있었고, 수도 구멍으로 졸졸 떨어지는 물은 너무나 아프도록 차가웠다. 간밤에 미리 담아둔 대야에 물은 깡깡 얼어 사용할 수 없었고, 다시 졸졸 천천히 떨어지는 물을 받아 연탄불에 얹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지금은 아랫목이 없어도 '24도' 보일러 온도만 맞추면 겨울,여름,비가오는 날도 항상 같은 온도로 내 몸을 지킨다. 새벽5시 이른 새벽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을 차리고, 게으른 날엔 김밥 한줄로 얼굴 마주하는 날들도 있고, 아침이 다 되서야 잠이 들어 남편이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고 아침 늦게 까지 늦장부리며 곤하게 잠을 잘때도 있다.


큰아이는 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딸이였다..

종가집 종손은 아들이어야 했다.

20년전만해도 '아들,딸 구별법' 이라는 책이 유명했고, 나 또한 선물 받아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알카리 음식과, 산성 음식을 구별하며, 안전하고, 건강하고, 예쁜 음식만 골라 먹었다.

비싼 멜론을 먹으며 엽산도 채웠다.

영양제와 철분제는 당연히 챙겨 먹었다.


내 인생은 너무나 행복했다.

내 앞길은 창창했다.

그 누구보다 빛났고, 다들 부러워라 했다.

그 토록 기다리던, 아들을 낳을 종부니까

아이가 태어나면 남향의 새소리를 들으며 눈을 뜰 수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행복한 미래였다.


여자의 감은 정말 무섭지..

아들을 임신한지 5개월..

" 선생님, 검사 다 해주세요.."

"산모님, 큰 아이도 건강하게 출산했는데, 너무 예민하신거 아니예요?"


6개월..

"그래도 할 수 있는 검사 다 해주세요"

"산모님, 피검사 이상 없죠? 초음파도 괜찮아요. 걱정마세요."


내일 당장 출산하는데도.. 내 불안은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면.. 그런데.. 왜 불안하지?"


다음날 아이를 출산하고 눈을 떳을땐, 아이 호흡에 문제가 생겨 큰 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 있다고 했다.

큰 아이땐 황달로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겁을 먹고, 많이 요란을 떨던 산모였다.. 그런 기억을 떠 올리니 이번엔 .. 둘째가 큰 병원으로 갔다해도 크게 걱정이 되지 않고, 마음은 차분했다.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 봄을 알리는 개나리와 함께 아들은 3월 내게 왔다..


퇴원 수속을 할때.. 남편과 시어머님, 친정어머니가 조용히 내 눈치를 살피셨다..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아이가 많이 아프게 태어났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무슨 의미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남편은 태어난 아이의 모습에 놀라 그 자리에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병실로 들어오지 않은 남편의 얼굴은 그늘이 있었고, 나를 쳐다 보지 못한채 문 앞에 서 있었다.


" 이놈의 병원!! 불 싸질러 버릴꺼야!!"

머리가 터질듯이 지끈거리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어르신들은 출산한 아이엄마가 그러면 큰일 난다며 날 진정시키려고 했다... 친정 아버진 병원장을 잡으러? 다녔고, 병원장은 오랜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었다..

마취과가 문제야!!

초음파에서 의사가 알지 못했다구?

피 검사는 정상이라며?


아이가 있는 대형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내게 말했다..

" 아이가 100일을 넘기기 어려워요.. 마음에 준비를 하셔야 할것같습니다..."

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자꾸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입에선 짐승의 울부짐이..


어떻게 해야하나..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때면 저 벼랑끝에서 날 당기는 듯 했고, 그 때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똑띠..정신 차려라..'

내겐 4살된 어여쁜 딸이 있었다..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지..

맘 착한 남편도 있었다..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지..

우리 부모님은..

그래.. 정신줄을 꼭..잡아야지..


먹은 우유의 80%를 천장에 닿도록 코로.. 입으로 뿜어냈다..

몸에 조금이라도 좋은 영양가 있는 우유를 찾아야 했다.

씨밀락.. 액상.. 1통이 하루치 였지만 가격이 너무나 비쌌다.. 그 마저도.. 20%밖에 먹지 못하니..

정말 정신을 똑바로.. 챙겨야지..


병원 소송은 준비만 하다 끝났다..

여전히 병원장은 만날 수 없었고.. 변호사들은 병원을 이기지 못한다며.. 아이에게 신경을 더 쓰는게 좋겠다고 했다... 돈도, 에너지도, 시간도 많이 뺐기는 소송이였다..

그렇게 선택과 집중을 해야 했다..



아이가 5살이 되었을때,

" 우리나라엔 없는 희귀병이고.. 외국에선 10살까지 산 아이가 있긴한데.."


또 다른 의사는

" 어머니.. 음.. 비행기가 하늘에 떠 있어요..

.. 비행기가 착륙을 하지 못하고 계속 하늘에 떠 있어요..

그런데.. 이젠 연료도 없어요..

언제 추락해도 이상하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아들은 건강은.. 삶은.. 생명은


지금 아들은 21살 대학생이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챙기고, 또 챙겨야하는 시기.

죄송스럽게도 난 아직까지 80을 바라보는 친정어머님의 도움을 받으며, 80이 넘은 시부모님 따스한 온기를 채우며 하루하루 열심히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니.. 행복하다.. 아무일도 생기지 않는 이 시간이..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살기까지 많은 눈물이 있었고, 어려움이 있었고, 슬픔은 내것이었다.

하지만, 보상이라도 받는 듯..

이젠.. 아무도 내게 뭐라하지 않고,

이젠..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젠.. 드디어 자유를 느끼는가 싶다..


내 나이 오십!! 캠핑카를 산 나는,

오늘도 캠핑카를 타고 강의를 간다.


다시.. 고속도로 길가에 핀 개나리를 보며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내 삶은 오늘도 흐른다.

#개나리, #봄,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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