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셋이서 연애, 뽀뽀도 안 하고 1년 만난 남친(?)

<나를 알아가고, 말이 많아졌다> 4년간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 언어

by 바람꽃

"그 집 부모가 빌딩 재벌이래~"

"너 그 아빠 쪽 친척 OO 오빠 본 적 있나? 그 오빠 친구래.

오랫동안 봐왔는데 그렇게 사람이 인성도 좋다고,

원래는 자기 딸이랑 결혼시키려고 점찍어둔 사람이라고 그러네."

"아빠는 딸이 평생 돈 벌어다 줄 좋은 남자 하나 붙잡아서 편하게 살면 좋겠다. 잘 만나봐"


만나기 전부터 귀가 아프도록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을 들었다. 당부도 있었다.

그래도 성의를 봐서 무조건 다섯 번은 만나봐야 한다고.


몇 번 만나보니, 따뜻하고 긍정적인, 여러 면에서 나보다 나은 점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성적인 설렘이 없어도, 운이 좋으면 나중엔 생기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그의 적극적인 태도에 별생각 없이 만남이 이어졌다. 당시 나는 번아웃 상태였다. 연애에 대한 큰 욕구도 없었고, 매일 회사에서 상사에게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따뜻하게 위로를 건네고, 자꾸 맛있는 것을 사준다니 나쁠 것도 없었다.


나보다 두어 살 많았던 그는 희귀한 유형인 모태솔로였다.

20대엔 공부만 했다고 했다. 약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나와 함께 비싸고 고급스러운 맛집들을 찾아다녔다.

여자와 데이트를 하면 이런 걸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그를 좋아해 보기 위해 노력해 보자고 생각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이 편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내 마음이 내 생각처럼만 따라와 준다면 좋겠다고.


내 눈에 거슬렸던 건 그의 외적으로 올드한 스타일과 앞으로 미래가 더 밝아질 것 같은 넓은 이마였다.

여러 번 쇼핑을 같이 가며 요즘 느낌의 단화와 옷들을 골라주었다. 그의 어머니께선 단화를 보고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일에 치여 머리를 못 자르던 그를 보며 나는 그러다가 묶고 다니겠다고, 최양락이 될 거냐고 농담을 했다.

덥수룩한 머리를 보며 선물로 미용실 선결제 사용권을 줄까도 싶었다. 미용실에서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는 스타일을 하고 왔길래 정말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주었다. 앞으로도 그런 '이마를 가리는 스타일'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나를 살짝 안을 때, 먼저 느껴진 건 그의 배였다. KFC 할아버지나 산타클로스를 떠올리게 했다.

내 뱃살도 많지만, 공교롭게도 내 취향은 운동선수처럼 단단한 체형이었다.


"헉... 나 힘들어~ 먼저 가아~"

"벌써? 얼마 안 뛰었는걸?"


그를 데리고 러닝을 몇 번 했지만, 매번 이삼백 미터 뛰고 열외가 되었다.

매일 부모님과 통화하던 그는 이런 나와의 일상을 자랑스럽게 공유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은 러닝 할 때보다도 뛰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며 좋았던 점은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생생히 알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이 부러웠고, 회사 생활에 지친 나는 자꾸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말했다. "만약에 하면 너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의 조언은, 오랫동안 머뭇거리던 나를 슬며시 밀어냈다.

나는 그해, 정말로 로스쿨 입학 지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도 계속 되는데..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매주 시리즈 연재 중으로 구독 부탁 드립니다.


<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다음 편: 《 프린세스 메이커와의 연애(延 碍) 》




#상담실에서의연애 #자아탐색 #감정서사 #자기이해 #정처성 #로스쿨 변호사

#셋이서한연애 #감정의공존 #상담사와함께한연애 #나를알아가고말이많아졌다 #감정에세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