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연애는 셋이서 했다— 나, 그 사람, 상담사

<나를 알아가고, 말이 많아졌다> 4년간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 언어

by 바람꽃

똑, 똑, 똑.


이 회사를 2년 넘게 다녔지만,

심리상담실 문을 두드려보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걸음도, 마음도 조심스러웠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중년의 여성분이 웃는 얼굴로 맞이해주셨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안경, 청바지에 분홍 운동화.

크지 않은 체구. 오며 가며 몇 번 마주쳤던 얼굴 같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사원, 대리 전체 대상으로 상담하신다고 해서요...”

나는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내 목소리도, 표정도, 긴장한 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상담실은 예상보다 따뜻하고 안정된 공간이었다.

하얀 테이블과 푹신한 의자,

이파리가 길게 늘어진 초록 화분,

창밖으로는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차들이 보였다.

그리고, 간식도 있었다.

그건 조금 반가웠다.


그럼에도 상담실은 나에게 여전히 어색한 공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이를테면 우울증이 있거나, 공황장애, 신경증 같은.

나는 지극히 멀쩡하다고 생각했다.

여군 장교도 했고, 무너진 적도 없고,

꿋꿋이 살아왔다고 믿었다.


“회사 생활이 힘든 건 누구나 겪는 정도잖아.”

“그냥 지치는 거지, 다들 그렇잖아.”

심리테스트나 몇 개 해보면서

회사 돈으로 성격이나 한 번 알아보고 가면 되겠지.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몰랐다.

그 문을 열던 작은 발걸음이

내 감정과 내 삶을 완전히 새롭게 다시 보기 시작하는 시작점이 될 줄은.


그 첫 상담 이후,

나는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조각내어 꺼내기 시작했다.

무심히 넘겼던 말들, 누르고 살았던 감정들.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였다.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던,

일에 파묻혀, 사람들에게 치여 무감각해져 있던 내 삶 속으로

소소한 기쁨과 따뜻함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햇살에도 감탄하게 되고,

벚꽃에도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조금씩 더 웃게 되었다.


4년 동안 나는 세 명의 상담사를 만났고,

한 번의 이직을 했고,

생각지 못한 새로운 꿈들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어딘가에서,

‘연애’에 대해, 그리고 내 마음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셋이서 한 연애

지금부터 꺼내볼 첫번째 이야기다.

나, 그 사람, 그리고 상담사.

그 연애는 셋이서 함께한 관계였다.


어느 일요일 점심, 강남 시내 한복판.

한복바지보다 펑퍼짐한 그의 새카만 양복바지가 걸을 때마다 펄럭인다

주말 강남의 젊은 사람들 속에서 묘하게 어울리 않는 느낌.

로스쿨 졸업 후 세 번의 시험 만에 어렵게 이제 막 수습 변호사가 된 그는,

마치 오랜 기간 굴 속에 있다가 막 밖으로 나온 곰 같았다.

부모님의 권유와 강요로 맞선을 봤다.

상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만나게 되었다.

아빠 쪽 고모가 신경을 많이 써준 인증이 된 사람이었다.

좋은 조건, 착한 사람, 성실한 남자.

그리고 나는, 어쩌면 그게 ‘괜찮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까지,

1년이 걸렸다.


다음화에서 그와의 만남이 어땠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댓글로 함께 나눠주세요. 매주 시리즈 연재 중으로 구독 부탁 드립니다.


<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다음 편: 《셋이서 연애, 뽀뽀도 안 하고 1년 만난 남친(?) 》



#상담실에서의연애 #자아탐색 #감정서사 #자기이해 #자아정체성

#셋이서한연애 #감정의공존 #상담사와함께한연애 #나를알아가고말이많아졌다 #감정에세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