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셋이서 연애, 프린세스 메이커와의 연애(延 碍)

<나를 알아가고, 말이 많아졌다> 4년간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 언어

by 바람꽃

상담사가 물었다.


"지금 OO씨는 그분과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그와 만나며 로스쿨 입학 시험인 법학적성시험을 한 번 치뤄봤고, 지방까지 기차를 타고 설명회도 갔다. 어렵사리 자기소개서를 써서 지원도 했다. 면접 스터디에도 들어갔다. 그는 입시 단계별로 세밀하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원대한 플랜을 설파했다.

"합격하면 회사 퇴사하고, 신림동 어디 학원 등록해야 해. 겨울에는 민법을 1회독 하고, 입학하면 이 과목부터 정리해야 하고..."


그는 자신이 프린세스 메이커가 되어 단기간에 나를 변시에 합격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결혼을 한다면 물심양면 지원하고 매일 과외해주겠다고 했다.


이제 막 지원했을 뿐인데, 그는 이미 나보다 세 단계 앞서 있었다. 변시를 3번만에 합격한 그는 어느새 열정적인 스터디 플래너가 되어 있었다. 과하다 싶다가도 고맙고, 든든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상담사가 다시 물었다.

"OO씨는, 지금 그 분과 어떤 관계인가요? 두 글자 단어인데요."


말문이 막혔다. 사실 알고 있었지만, 그 단어를 입 밖에 꺼내는 순간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알 것 같아 멈칫했다.


"그걸 바로... 과외라고 하죠."


아차. 그에게 과외를 받았다. 그리고 그에게 설레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내 필요에 따라 그를 옆에 두었다. 내게 부족했던 무언가를 그에게서 빌려 쓰고 있었다.


"이제 불합격했으니 더 이상 정보도 필요 없죠. 정보는 한 번 받으면 충분하잖아요. 그리고 정서적인 불안함은 이제 심리상담실에서 채우게 되니까, 그와 만날 이유도 없어진 거고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인정했고, 상담사와 함께 헤어질 마음도 정리했다. 이별은 이번엔 성숙하게 하고 싶었다.

따뜻하고 고마웠던 그에게 진심을 담아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괜찮고 멋진 사람이었다. 눈을 보며 말을 차분히 들어주었고, 존중한다고 말하며 받아들였다.


그는 나와 뽀뽀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헤어졌다. 순수했던 그는 형법 사례를 보면 ‘원하지 않는 스킨십은 추행’이라는 말을 종종 했고, 그래서 함부로 스킨십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말하기 미안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는 상냥하고 말이 많은, 푸근한 아주머니 같은 느낌이었다.


이 사람과의 만남은 "延碍(연애)"였다.


延: 늘이다 (연)

碍: 막히다, 흐르지 않다 (애)


길게 이어졌지만, 내 감정은 인간적 존경까진 갔어도 사랑으로 흐르진 못했던 관계.


미안함은 있었지만, 오랫동안 끌어오던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따뜻하고 고마웠던 나의 서포터, 나의 맛집 탐방 대원.

모든 이별이 꼭 슬퍼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마음껏 설레는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그도 누군가에게 마음껏 사랑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시간이 지나 다른 여자를 만났고, 그녀는 그를 무척 좋아해서 따라다녔다고 한다. 결국 둘은 결혼도 잘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키가 크고 몸이 좋고 비율이 좋은, 잘 생긴 남자였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의 연애와는 다르게, 유독 이렇게 남성미가 넘치는 대조적인 사람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그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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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말이 많아졌다> 시리즈는 상담실에서 마주한 감정의 조각들을 꺼내어 쓰는 기록입니다.

연애, 자아, 가족, 군대—삶의 여러 장면 속 감정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다음 편: 《 셋이서 연애, 몸 좋고 잘 생긴 회피형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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