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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교회는 어머니 품 같았다.


  장정교회


  내가 언제부터 교회에 갔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장정교회는 내가 의식이 있을 대부터 이미 익숙한 공간이었습니다. 교회 마당을 두르고 있는 벚나무는 봄이면 환한 벚꽃을 피웠고, 꽃이 지면 머지않아 까만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버찌는 먹고잘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안 따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뽀얀 먼지 이는 교회 마당과, 나무 기둥을 세우고 하얀 회를 바른 교회당과, 교회당 입구 옆에 서 있는 나무기둥 종탑에 매달려 기우뚱거리면서 '떵, 떵' 울리는 종소리는 내게 늘 친근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교회에 관한 대화를 하시면, 자주 말하시는 이름이 이친모 전도사님 이야기였습니다. 이친모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춘모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있는 전도사님이 여자 전도사님이었는데, 이름으로 봐서는 이분도 여자일 수도 있습니다. 하여튼 이 전도사님이 있을 때, 나는 깨벗고 교회 마루를 뛰어다녔답니다. 사내아이는 오줌만 가리면 웃옷은 뭘 걸쳤겠지만, 아랫도리는 입지 않고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교회를 갈 때는 내게도 가림옷을 입히셨겠지만, 아래는 가릴 것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친정이 바로 교회 옆집이었습니다. 남천으로 시집을 가기 전에도 이미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어머니가 정장에 살았답니다. 그러면 시집을 가려면 최소한 더 나은 집안으로 시집을 갔어야 했습니다. 집안이 좋아서 칠결에서 내로라 하는 신구의 장씨나, 사동의 이씨나, 남천이라면 조씨 집안에서 골랐어야 할 법합니다. 집안이 별로 좋지 않다면 살림께나 있는 집안으로 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논밭전지라도 남부럽지 않게 있어서 화전은 일구지 않아도 될 만한 사람을 고르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저저도 아니고 피난고지를 찾아온 뜨내기 집안에, 화전을 일구지 않으면 땅뙤기 하나 없는 샘골의 아버지에게 시집을 가셨습니다. 장정에 살면 한발자국이라도 대처로 눈을 돌려야 하는데, 장정에서 올려다봐도 산꼭데기 동네로 한참을, 아니 더 이상은 갈 곳도 없는 막다른 골로 시집을 갔습니다.


  그것은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랍니다. 외할머니 혼자서 7남매를 다 거두어 먹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큰이모는 뱀재를 넘어와 집도 절도 없이 혼자 떠도는 총각에게 시집을 보내, 장정에서 개울 건너 모래변에 살림을 차리게 하고는 처갓집을 좀 돌봐 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이 맏사위가 사람은 좋은데 영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인 어머니를 아버지에게 시집을 보내면서 남천에서 장정을 오르내릴 때마다 외풍을 좀 막아 주길 기대한 것입니다. 자식들은 아직 어리지, 외할머니 혼자서 다 거두기는 벅차지, 최소한 동네서 무시는 당하지 않고 사는 방도가, 할아버지 집안과 인연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외갓집은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집 앞에 있는 교회를 열성을 다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셨습니다.


  아버지는 남천에 살면서 할머니가 병환을 앓으실 때 천주교회에 다니셨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또 어머니와 결혼을 하시고는 교회에 신실하게 다니셨습니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태신앙인 셈입니다.

 

  당시 교회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벽은 안팎을 회로 발랐습니다. 외벽은 도리부분까지 묽은 시멘트 반죽을 흩뿌려 울퉁불퉁했고, 도리 위로 지붕 아래까지는 흰색 회를 발랐습니다. 내벽은 전부 흰색 회를 발랐습니다. 신발을 놓는 바닥에서 한자 정도 높이로 마루를 깔았습니다. 마루에서는 방석을 깔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당에는 교회를 들어가면서 왼쪽이 남자석이고, 오른쪽이 여자석입니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이들도 남녀를 구별해서 앉았는데, 개구쟁이들은 교회에서도 하얀 벽에 낙서를 했습니다. 남자석의 아이들 손 높이에 칼로 파거나 연필로 그리거나 한 낙서가 있었는데, 그 낙서 중에 가장 큰 낙서가 바로 내 이름 석자입니다. 내 친구가 그랬는지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칼로 파서 ‘김청구’라고 굵직하게 써 놓았습니다. 이걸 지울 수도 없고, 다른 글씨로 바꿀 수도 없고, 덧칠할 수도 없어서 안타까이 두고만 보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을 자주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에 영태는 교회 바로 앞집에 살았는데, 교회서 늘 만났습니다. 원영이도 교회를 자주 왔습니다. 내가 데려가지는 않았지만, 신구에서 동네 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도 있습니다. 원영이는 참 똑똑하고 당당한 친구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늦게라도 들어가면 미안해서 고개를 똑바로 들지 못하고 내가 앉을 자리만 보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원영이는 조금 늦게 '삐끄덕'하는 문소리를 내며 들어오면서도 어린이 예배를 인도하는 선생님에게 꾸뻑 인사를 하고 들어옵니다. 평소에 선생님을 만나도 온 몸이 굳어져 겨우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만 하고 지나치고, 혹시 무슨 말이라도 걸어 오실까봐 가슴이 꽁닥꽁닥할 뿐입니다. 그런데 원영이는 그런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고, 인사를 하면 선생님은 또 미소로 맞아 주시고, 교회에 예배 중간에 들어오면서도 그 자신감을 잃지 않는 것이 내심 부러웠습니다.


  내가 친구를 교회에 처음 데리고 가면 내 옆에 앉혀놓고 예배드리는 것을 일일이 알려 줍니다. 그날은 남조 사는 노영이를 처음 교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찬송가를 부르면 노영이가 더 쉽게 따라하도록 크게 부르고, 성경을 찾으면 같이 보고, 처음 와서 당황하지 않도록 다음 순서도 일러주기도 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왠지 예배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시끄럽습니다. 사회를 보는 선생님이 기도할 선생님을 소개하고는 특별히 일렀습니다.

  “기도할 때는 아무도 떠들지 말고 조용히 선생님의 기도를 들으세요.”

곧이어 기도를 맡은 선생님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처음 교회에 온 노영이는 기도가 뭔지를 모르고,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가르쳐 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기도는 시작되었는데,

  “기도할 때는 이렇게 무릎을 꿇는 거야. 손은 모아서 가슴 앞에 두고, 눈은 감아야 해.”

노영이가 들을 수 있게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기도 전에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준 선생님이 내 자리로 찾아와서는,

  “청구 너, 조용히 하라고 했는데 왜 떠들어?”

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장난을 치느라고 떠든 것이 아니고, 모르는 친구에게 알려 주느라고 작게 이야기 한 것인데, 민망하게도 친구가 보는 앞에서 혼이 나고 말았습니다. 노영이가 몰라서 가르쳐 준 것뿐이라고 말할래도 그러면 선생님이 더 무안할까봐 내가 참고 말았습니다. 그렇게라도 떠들지 않고 조용히 하는 것이 기도라고 노영이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름성경학교


  여름성경학교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흰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하는 노래가 나오기만 하면 그 무더운 땡볕에도 남천에서 장정까지 한달음에 달려 왔습니다. 재미있는 동화에, 푸짐한 상품에, 맛있는 간식도 있고, 무엇보다도 서울에서 처음 보는 선생님이 오신다는 것이 좋습니다. 서울에 무슨 교회인가 자기 교회의 여름성경학교를 끝마치고, 농촌교회 봉사활동 차원에서 어린이들이 좋아할 선물을 잔뜩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이름도 참 이상하지, '남화남'이라고, 앞뒤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동화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윗이 돌을 던져서 9척 장신의 골리앗을 쓰러트리고는, 골리앗이 찼던 단칼을 빼서 머리를 싹뚝 잘라서 어깨에 매고 왔다고 하는 장면에서는, 자기 손수건에 강대상에 있는 종을 싸서 어깨에 둘러매는 시늉을 할 때는 아주 실감났습니다.


  둘째 날에는 다음 날  다른 선생님이 동화를 들려주었는데, 한 아이가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 고양이 똥냄새가 나더랍니다. 거실로 나와서 아무리 찾아도 고양이 똥은 안보이고, 온 방을 다 뒤져도 고양이가 실례를 한 덩어리는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하도 이상하고 이상해서 찾다가 자기가 누운 곳에 고양이 똥을 한 무더기 발견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냄새가 났구나 하면서 깨끗하게 치웠는데, 그래도 냄새를 가시지 않더랍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다른 고양이 똥을 찾아다니다가 발견하지 못하자 찾기를 포기했답니다. 벽에 걸린 거울을 지나가는 순간에 자기 코 옆에 뭔가 이상한 못 보던 점이 있더랍니다. 이상하다 하고 가까이 가봤더니, 글쎄 그 검은 점이 고양이 똥이었답니다.

  "아이고, 코에 묻은 똥을 모르고 있었으니, 온 집안 똥을 다 치워도 냄새가 나지.”

하고 우리는 자지러졌습니다.  


  선물은 어린이들이 보는 월간잡지에서, 학교 공부에서 답이 나와 있는 전과나, 장정의 가게에서는 살 수도 없이 색깔이 많은 크레파스나, 색연필이 빨간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12가지 색연필박스나, 공책만 있는 줄알았는데 아무 줄도 쳐지지 않는 새하얀 백지 공책 등 생전 처음 보는 선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귀한 선물들은 물론 누구에게나 주는 것이 아닙니다. 노래를 부르거나, 동화를 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하는 특별한 재주를 겨루어 입상을 해야만 특별히 귀한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래는 안뜰에 동건이가 잘합니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되면 늘 일등을 했습니다. 동화대회에서는 신구의 복순이가 잘합니다. 코가 납작한 아이가 앞에 나가서 동화를 들려주면 어쩜 어른들처럼 잘합니다. 그림은 성경학교에서 공부한 내용 중에서 그리는데 학교 밑에 옥경이가 잘 그립니다. 모두 한 두 가지씩 잘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난 늘 전체 참석한 어린이에게 주는 선물만 받았습니다. 색종이나 연필이나 공책이었습니다.


  나도 이번에는 욕심나는 상품이 있습니다. 두툼한 월간잡지입니다. 나도 한번 앞에 나가서 뭔가를 잘해 상으로 저 월간잡지를 받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스케치북이라는 것도 탐이 납니다. 그러나 만화도 있고 이야기도 있는 월간잡지가 더 좋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듣기 좋게는 안 나왔습니다. 그림도 손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리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말로 하는 동화가 제일 만만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들려줄 이야기가 없습니다. 알고 있는 이야기는 교회에서 다 함께 들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 밖에 없습니다. 아, 한 가지 생각이 났습니다. 며칠 전에 방학을 했는데, 방학책에 있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5학년 여름방학책 한 페이지에 있는 짧은 만화인데, 개이야기입니다. 주인이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들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주인이 꼼짝없이 타 죽게 생겼습니다. 옆에서 주인을 지키던 개가 자기 몸을 개울물에 적셔 주인에게 다가오는 불을 껐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걸 동화로 해야겠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갔습니다. 이야기를 될 수 있으면 길게 끌었습니다. 또 평소 까불던 태도와는 달리 공손하게 인사도 했습니다. 제자리에 돌아와 앉을 때도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단정히 앉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찔리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방학책의 내용을 이야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습니다.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데 어쩌겠습니까? 등수를 발표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 ... 3등 김청구.”

내가 3등이랍니다. 난생처음 등수 안에 드는 상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도 개근상은 몇 번 받았지만 공부상은 못 받았고, 운동회를 해도 달리기를 못하니 등수에 들지도 못했고, 교회에서도 다니기만 끈질기게 다녔지 상줄 때는 언제나 박수만 쳤고, 전부 다주는 선물만 받았습니다. 평소에는 그칠 줄 모르는 개구장이라 늘 꿀밤만 주던 선생님도 진지한 내 마음을 인정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여름성경학교가 끝나고 성경학교에서 배운 성경 읽기를 생활화하자고 성경읽기 표를 주었습니다. 해바라기 그림 가운데 ‘성경을 읽자’는 구절을 쓰고, 해바라기 꽃잎을 30개를 그려서, 하루에 한 구절을 읽으면 한 칸을 색칠을 하든지 연필로 빗금을 그으라고 했습니다. 한 달치를 준 것입니다. 그런데 난 학교에 갔다 오면 집에서는 늘 꼴짐을 져야 하고, 부모님을 따라 다니면서 담배 농사도 지어야 합니다. 그래도 저녁이면 집에서는 하루에 한 번씩 성경을 읽기를 빼먹지 않았습니다. 해바라기 꽃잎에 표시를 하는 것은 두 번째입니다. 내일 해도 됩니다. 또 비가 와서 궂은 날은 해바라기가 젖으면 칸을 다 채워 교회가 가지고 가기도 전에 훼손되거나 찢어져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집에서는 힘든 일을 하고, 사는 살림은 깨끗하지 못하고 흙벽에서 굴러도, 교회에 가지고 가는 숙제는 깨끗하게 보존하고 싶습니다. 성경읽기는 빠짐없이 했다가 표시는 날이 좋은 날 한꺼번에 하자고 미뤄 두었습니다. 읽는 것만 잊지 말고 읽어서 빠트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어느덧 날자가 다 차서 교회에 가지고 갈 때가 됐습니다. 연필로 빗금을 그어서 성경을 읽은 날자를 표시하기만 하면 됩니다. 빠진 날이 없으니 처음에는 일일이 한 칸씩 자를 대고 금을 그었습니다. 3/4 바퀴쯤 돌아갈 때였습니다. 어차피 다 그릴 것인데 해바라기 꽃잎의 그림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여러 잎을 한꺼번에 그려도 될 것 같습니다. 긴 줄은 세 칸도 넘어가고, 잎파리 통통한 곳에는 네 칸을 한 줄로 이어 그었습니다. 칸을 빠짐없이 채워서 가지고 오라고 한 날짜에 분반공부 선생님에게 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모양입니다. 내가 그은 빗금을 선생님이 가만히 살펴보시더니, 하루에 한 번씩 읽고 표시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분명이 한꺼번에 그은 것이 틀림없답니다. 나는 그런 대화를 나누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리지는 않지만, 그런 내용일 것이라고는 짐작은 갑니다. 나를 힐끔 보고, 내가 낸 해바라기를 가리키면서, 이 선생님 저선생님 돌려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서서 그렇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내 진심, 종이를 훼손하지 않고 깨끗이 유지하려고 했던 마음, 빗금을 그어도 비뚤빼뚤 그리지 않고 자를 대고 똑바로 그으려고 한 정성, 무엇보다도 안 읽은 것을 읽었다고 하나님을 속이지는 않았다는 정직한 진심만은, 마음속에 든든히 가지고 모른 척 기다렸습니다.  


  다행히도 선생님들은 회의 끝에 나를 믿어 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그려진 대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하나님은 역시 내 진심을 보아 주셨다고 믿습니다. 사람은 혹시 오해를 하거나 곡해를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내 진심은 물론 정성을 다하려는 마음까지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권정자 선생님


  장정교회 교회학교는 권정자 선생님이 계셔서 좋습니다. 권정자 선생님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첫 발령으로 부임해 오셔서 4년째 장정교회 어린이를 도맡아 지도해 주고계십니다.  처음 장정초등학교에 오셨을 때는 우리 외갓집에 방을 빌려서 살았습니다. 외삼촌이 선생님이라서, 함께 근무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의 생활을 잘 이해 할 것으로 알았겠고, 또 교회를 다닌다니까 서로 간에 이해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난 남천에서 꼬질꼬질 굴러 먹다가, 내려오느라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외갓집에 들어서면, 뽀얀 선생님이 맨얼굴로 웃으며 맞아주시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할머니를 보는 것보다 선생님을 보는 것이 더 기다려집니다.  


  외갓집에서는 외갓집 식구들과 밥을 함께 먹을 때도 있습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다른 성도들이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거의 교회의 친교실처럼 쓰는 외갓집에 모여들면 점심을 함께 먹습니다. 평소에는 철저히 혼자서 식사를 해결하지만, 성도들이 많이 몰려오면 어김없이 선생님도 불려나와 웃음을 보태십니다. 선생님은 외갓집 식구들을 우리와 같이 불렀습니다. 외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부르고, 둘째 외삼촌을 삼촌이라고 부르고, 우리 이모들을 이모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우리와 같은 높이에서 부르는 것을 보고는 더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외갓집에 산지 1년만에 권정자 선생님은 학교 관사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관사에 살던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기 때문입니다. 관사는 운동장 왼쪽 구석에 조금 높은 곳에, 지붕이 세모지지 않고 평평하게 생겼고, 일단 집에 들어가면 집 안에서 불도 때고 화장실도 가는, 생전 처음 보는 신식 집입니다. 한번은 선생님이 집으로 초대를 하셨습니다.

  “청구야 우리 집에 갈래? 가서 밥 먹자.”

나야 내심 고대하던 일입니다. 고매한 선생님이 먹는 밥은 어떤 밥일까 기대를 하며 따라 들어갔습니다. 선생님의 밥상은 물론 다릅니다. 하얀 쌀밥입니다. 우리 집에는 옥수수로 해먹는 쌀밥입니다. 반찬은 김입니다. 설날이나 추석에만 볼 수 있는 김을, 아니 김만, 간장에 찍어 반찬으로 드십니다. 아 김치가 꼬부라져 신내를 내면서 한 그릇 있습니다. 그래도 내게는 꿀맛입니다.


  선생님 방안에는 책꽂이도 없이 벽에 책이 낮게 쌓여 있습니다. 바로 이 방에서 교회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나왔을 것입니다. 권정자 선생님은 목요일 저녁에 모이는 어린이 예배에 재미있는 동화를 들려 주셨습니다. '장발장'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는 장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장발장이 배가 고파서 빵을 하나 훔쳐 먹다가 감옥에 가고 말았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의 것을 훔쳐서는 안 되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장발장이 감옥에서 나와 쫒기는 것을 수녀들이 숨겨주고 먹여 주었는데, 그날 밤 몰래 은촛대를 훔쳤가다 경찰에게 잡혀 도둑으로 몰릴 때, 수녀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고 준 것이라고 대답해서 혐의를 벗었답니다. '사실보다도 사랑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목요일 저녁이 기다려지기까지 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이야기를 그렇게도 잘 하실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장발장 이야기 다음에는 단테가 쓴 '신곡'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 지옥의 단계 단계,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갈수록 전율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느 감옥에 들어갔더니 뒷간같이 가득 찬 똥물이 끝도 보이지 않게 넓은데, 거기 사람들이 둥둥소에서 수영하듯이 가득 찼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턱을 들어야 겨우 입이 똥 밖으로 겨우 나올 수 있을 만큼 잠겨 있더랍니다. 또 어떤 단계의 지옥은 뾰족한 창으로 심장을 찌르는데, 기절해서 쓰러지면 다시 살려서 또 찌르고, 또 죽고 또 살리고 다시 찌르고를 영원토록 계속한답니다. 또 어떤 지옥은 끝도 보이지 않는 불판에 파란 불이 사람 키만큼 활활 타고 있는데, 그 속에 사람들이 영원토록 뜨겁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답니다. 물론 천국의 이야기를 할 때는 상상만 해도 신났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어린이 예배에는 동화만 들려 준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끝나고 신나는 놀이도 합니다. '곰발바닥 소발바닥' 같은 놀이입니다. 네댓팀으로 나누어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우리 팀이름 곰발바닥을 먼저 부르고 다른 팀이름 소발바닥을 부르면, 소발바닥은 소리를 모아 자기 팀 이름 소발바닥을 불러 받은 다음에 다시 다른 팀이름 닭발바닥을 불러 공격하는 식입니다. 상대가 부를 때 자기 이름을 한 목소리로 내지 못해도 걸리는 것이고, 팀에서 한 사람 리더를 정해 이 리더가 가리키는 대로 상대의 이름을 한목소리로 부르지 못하고 어수선해도 걸리는 것입니다. 한 팀 한 팀 떨어지고 나중에는 두 팀이 남아서 받고 공격하고를 한참이나 하면 저절로 신이 났습니다. 마룻장이 들썩들썩했고, 마루에 땀이 흘러 번들번들했고, 천정이 들썩들썩, 웃음이 함박으로 터졌습니다. 그러면서 소발바닥이나 닭발바닥이라는 것도 이름이 되어 내 마음속에 들어왔습니다. 닭이 내 앞에서 걸어갈 때 사뿐히 드는 발바닥을 유심히 내려다 보기도하고, 고삐를 치고 소를 몰면서도 두 개로 갈라진 소발바닥을 유심히 살피기도 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 남천에서 내려오면 캄캄한 밤길을 걸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어제 수요일 예배에 참석했으니, 어린이만 오롯이 저녁을 먹고 밤길을 내려와야 합니다. 우리 형제 셋과 현금이네 형제 한 둘과 봉순이네도 갈 때가 있습니다. 상인이도 곧잘 갔는데, 밤에 갈 때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귀한 집에 밤길에 나섰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랍니다.


  목요일 낮에는 밤에 들고 갈 횃불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짚을 팔뚝의 두 배 굵기 만하게 묶는 것입니다. 끌컹은 가지런히 해서 약6센치 간격으로 촘촘히 묶어야 합니다. 손잡이 부분은 자연히 가늘어집니다. 교회 갈 사람이 다 모여서 길을 나설 때 맨 위 끌컹부분에 불을 붙이기만 하면 됩니다. 불이 너무 활활 타면 금방 타버려 장정에 도착하기도 전에 꺼질 것이고, 불이 너무 속으로 들어가 어두우면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라도 할테니, 횃불을 흔들어 돌려 적당히 밝기를 조절해야 합니다. 6센티 넓이로 묶은 끈이 하나 하나 타내리면서 횃불이 짧아져 꺼질만큼 되면, 그래도 장정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준비해 간 횃불은 예배당에 들어갈 때 문앞에 놓고 들어가야 합니다. 올라올 때는 횃불에 옹기종기 모여 그 날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곱씹으면, 곰국처럼 진하고 지금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빛처럼 영롱합니다.   


  권정자 선생님은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청주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나는 학교에서는 한 번도 배워보지 못했지만 교회에서는 늘 만나서 정이 들었습니다.

  “선생님, 어디로 가세요?”

물었더니,

“과자국민학교”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먹고 싶은 것이 과자인데, 그 학교는 학교에 가기만 하면 과자를 주느냐고,

“과자요?”

하고 물었더니, 선생님도 눈치를 챘다는 듯이 ‘가좌’라고,

“가좌초등학교”

라고, 청주에 오면 들르라고 하시면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새벽송  


  교회에서 또 즐거운 시간은 성탄절입니다. 겨울방학을 꼭 12월 23일날이나 24일날 해서 성탄절에는 마음 놓고 놀 수 있습니다. 24일 성탄절 전야에는 교회에 모여서 잔치를 합니다. 어린이들이 그동안 익힌 노래를 부르거나 무용을 하거나 연극을 하기도 합니다. 하루에 발표를 하고마는 24일 저녁보다는, 준비하느라고 모인 저녁이 더 재미있습니다. 추운 겨울이라서 난로를 피워야하는데, 어른들이 먼저 와서 따뜻하게 해 줍니다. 오늘은 덕촌에서 기동이형 아버지가 난로를 피워주러 오셨습니다. 가는 장작 아래 불쏘시개를 넣고 성냥불을 붙이고, 불쏘시개가 탈 때는 연기나 나니까 난로 뚜껑을 잠시 덮어 두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불이 붙고 있나하고 열어 보았더니, 그만 꺼지고 말았습니다. 이걸 보신 심집사님은 하시는 말씀이,

  “시커먼 불이 활 활 타고 있구먼.”

하셨습니다. 빨갛게 타는 불이 타야할 난로 안이 시커멓게 어두컴컴하다고, 시커먼 불이 탄다고 표현하신 것이 아주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합니다.


  어린이들 발표가 다 끝나면 마지막 순서로 싼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큰 자루 한 가득 선물을 등에 걸머지고, 흰수염을 길게 덮어 누군지도 모르게 분장을 해서, 예배당 밖에서 '메리 크리스마스' 하고 큰소리로 인사를 하고 들어올 때는 예배당이 떠나가도록 함성을 지릅니다. 그 선물 보따리는 컸어도, 선물을 받고는 그다지 좋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선물은 과자나 장난감인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가지고 온 선물은 양말이나 기껏하면 장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물은 새벽송이 끝나면 돌아올 때가 많습니다. 새벽송은 24일 밤을 넘겨 25일 새벽이 되면 성도들의 집을 찾아가 부르는 성탄노래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천사들이 들에서 잠을 자는 목동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알려 주었듯이, 우리가 천사가 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 주는 의미입니다. 한 가운데 장정교회에서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의 집을 찾아가려면 조를 짜서 뿔뿔이 흩어져야 합니다. 한 조는 덕촌과 안뜰과 사동을 가고, 또 한조는 장정을 거쳐 신구를 거쳐 무수천과 남천을 가고, 또 다른 한 조는 올산을 가야 했습니다. 어느 조로 가든 가장 마지막에 다다르는 집에는 들어가서 몸을 녹일 수 있습니다. 추울까봐 발도 든든히 동이고, 목도리도 퉁퉁히 동이고, 눈만 빼꼼히 내 놓고 다니다가, 밤을 새고 어른들을 따라 새벽길을 걸었으니, 아이들은 따뜻한 방에 들어가 떡국을 먹지도 못하고 잠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서둘러 길을 나섭니다. 졸다가 자는 어린이를 업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벽송을 부르면 대게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릅니다. 1절만 부릅니다. 그런데 권정자 선생님이 가는 조는 노래를 다양하게 부릅니다. 성도의 집에 가면 초롱불이든지 호야불이든지 처마밑에 켜 놓고 기다리는데, 권정자 선생님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는 불 옆에 서서, 입모양을 크게 하고 소리를 작게 해서 어떤 노래를 부를 지 첫 구절을 부르고는 시작하라고 신호를 줍니다. 선생님이 선곡하는 노래는 목요일 밤에 성탄을 준비하느라고 불러서 익히 아는 노래였습니다. 대게는 노래가 시작되면 방문을 열고 나와서 함께 서서 끝까지 노래를 함께 부르고는, 천사들이 '기쁜 성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면 '감사합니다.'하고 화답을 하고는, 선물을 줍니다. 이 선물 속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과자가 대부분 들어 있습니다. 성탄절에 예배를 마치고 어린이에게 돌아오는데, 이 때 둘러 앉아 먹는 과자는 풍성하고 맛있기가 성탄절 맛입니다.


  새벽송을 돌 때는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 올산에 가는 조를 자청합니다. 산을 넘어가야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내가 올산을 가기로 했습니다. 어른 중에는 굳은 일에 가장 먼저 앞서는 모래변 이모부가 앞장을 섰습니다. 그리고는 장정교회에 기둥이 되는 장정들 둘이 더 합세해 남자만 4명이 가기로 했습니다. 여자들이 끼이지 않아서 조금은 섭섭하지만 길이 험해서 하는 수 없습니다. 올산에서 교회를 나오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도는 있답니다. 그래서 성탄절을 맞아 일 년에 한 번씩은 새벽송을 불러 주어야 한답니다.


  올산을 가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신구 뒷산 새고개를 넘어가는 길과 모래변과 덕촌 사이에 난 오솔길로 오는 길입니다. 모래변과 덕촌 사이 길은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넓은 산판길이 나옵니다. 벌목을 하면 나무를 실어 나르느라고 트럭이 오간길을 말합니다. 산판길만 들어서면 옆으로 늘어서서 이야기를 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오솔길은 한 줄로 가야하기 때문에 왠만하면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낮에는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동네라 올산에 도착을 해도 어디가 어디인지, 동쪽이 어디고 서쪽이 어딘지도, 꼬불꼬불 난 골목길을 한참을 돌다 보면 집을 찾아가래도 못 가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돌다가 여기가 올산학교라고 하면, 새벽 어스름 달빛에 시커멓게 누워있는 학교 마당에, 기억자로 생긴 올산에 가는 조에만 들려주는 후레쉬 가는 불빛을, 운동장에 바닥에 가로 긋고는 지나갔습니다. 네 집을 돌면서 새벽송을 부르고는, 샛터라는 마지막 집에서는 집안으로 초대를 했습니다. 오늘도 새벽송을 올 줄 알고 다섯 집이 모여 떡국을 끓여 놓고 기다렸습니다. 떡국을 먹고는 곧장 일어나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지체했다가 누구 하나 잠에 골아 떨어지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새벽에 만나 떡국을 먹고는 바로 헤어져야하는 사이입니다.  


  대게는 왔던 길 모래변 덕촌 사이길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눈이 많이 오는 성탄절에는  신구 뒷산 새고개를 넘는 것이 좋습니다. 새고개를 넘을 때는 새끼줄로 신발을 칭칭 동여매야합니다. 고개를 오를 때는 몇 번이고 미끄러지고, 뒤에서 받쳐주고, 앞에서 손을 내밀어 끌어주고, 빨지산이 지리산을 헤매듯이 산을 넘습니다. 내려갈 때는 발로 걸어간 것보다 엉덩이로 미끄러져 간 산길 더 많을 정도입니다. 거의 허벅지까지 쌓인 눈에 앉으면 저 아래 바위에 막혀 돌아가는 곳까지 미끄러졌고, 바위를 돌아 또 앉으면 길을 벗어나 잡목가지에 걸려 거꾸로 누워있기 일수입니다.


  새벽송을 돌고 나면 남천 집으로 돌아 올 수가 없습니다. 외갓집에서 자거나, 큰집에서 자야 합니다. 오늘은 이모부와 함께 올산을 갔다왔으니 이모부를 따라 이모네 집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외갓집에서 자도 11시 예배에도 참여하지 못할 만큼 잠에 떨어집니다. 물론 올산으로 가지 않고 남천으로 가는 조에 끼면 장정 교회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래도 시간에 맞게 일어나 예배에 정상적으로 참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합니다. 새벽송을 돌 때 받은 선물 중에 맛있는 과자가 많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왕사탕을 하나 받는 날에는 예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먹어도 남을 정도입니다. 골고루 나누어 주어서 먹어도 좋고, 온 성도가 둘러 앉아 집어 먹어도 역시 좋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한 자리에서 마음을 연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멋이 더 좋습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라도 내려 온통 흰 세상을 맑은 유리창에 낀 김을 닦아서 내다보며 먹는 과자는 성탄절의 백미입니다. 예배당의 나무 난로는 주전자의 물을 따뜻하게 데워주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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