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산골에서는 먹을 것이 늘 부족했습니다. 여름이나 가을이야 들에서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삶아 먹고 지져 먹고 구워 먹습니다만, 겨울에는 저장해 놓은 것이 아니면 먹을 것이 없습니다. 아니, 겨울보다는 보릿고개라고 하는 고갯마루에서는 정말 무엇이건 먹을래야 먹을 것이 없는 때입니다.
추운 겨울이 되고, 하얀 눈이 바람에 날려 마루까지 덮으면, 우리 3형제는 꼼짝하지 않고 방안에서만 지내야합니다. 유일한 먹을 거리가 있는 곳은 사랑방 윗목에 둥그렇게 발을 두르고 쌓아 놓은 고구마둥우리입니다. 가을에 가득 쌓아 놓았던 것을 위에서부터 하나하나 꺼내서 삶아 먹기도 하고, 사랑방 부엌에서 소죽을 끓이고 아궁이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하고, 생 걸로 깎아 먹기도 합니다. 삶아 먹을 때는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으로 먹습니다. 붉은 껍질에 노랗게 익어 따끈따끈한 고구마는 두 세 개만 먹어도 한 끼 식사로 거뜬합니다. 찐고구마는 물을 먹지 않아도 목이 막히지도 않습니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질감도 부드럽습니다.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고구마로는 탈이 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소죽 아궁이에 구운 고구마는 뜨거운 것을 꺼내 재를 탁탁 털어서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불이 센 곳에 노출된 부분은 껍질이 두껍게 타서 들러붙어서 먹을 게 별로 남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소죽솥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을 때는 지키고 앉아서 지켜봐야 하는데, 우리는 질래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고구마 익을 동안 조금 놀고 온다고, 나 혼자 하고 영구와 종구 둘이서 한편을 먹어 축구를 하면, 고구마 묻은 것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축구가 끝나고 아궁이를 찾아오면 고구마는 이미 새까맣게 타서 재만 남습니다.
“아 참, 고구마 묻었지. 빨리 꺼내자.”
그재야 아무리 빨리 꺼내도 탈 것은 이미 다 탄 후입니다. 아버지가 구워 주실 때는 어쩜 그렇게 잘 구워 주시는지, 고구마를 구울 때도 어른들은 뭐든지 다 잘하시는 것 같습니다.
고구마를 화로에 구울 때도 있습니다. 밤은 이미 깊었고, 잠을 자려니 배가 보파서 잘 수 없을 때, 급한 대로 화로 남은 불에 고구마를 묻습니다. 묻을 때 이미 자기 것을 정해 놓는데, 서로 큰 것을 먹으려고 고르다가, 결국에는 큰 놈으로 세 개를 화로 가득 묻어 놓습니다. 남은 불은 별로 없는데, 화로 가득 고봉으로 담긴 고구마를 불과 재로 덮어 부젓가락으로 꼭꼭 눌러 놓습니다. 그런데 고구마가 익기를 기다리다가 그냥 자버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에 화로에 구운 고구가 어찌 됐느냐고 찾으면, 고구마는 물론 화로 채로 없어져버렸습니다.
“어제 우리가 묻은 고구마 누가 먹었어요?”
“화로불이 약한데 그렇게 큰 고구마를 세 개나 묻으면 익기나 하냐?”
하고 회색 재가 묻은 익다만 고구마가 소죽 솥 부투막 위에 굴러다닙니다.
“생고구마는 먹지 말라”
우리만 집에 두고 이웃집에 마실을 가는 어머니가 일러 줍니다. 생고구마는 소화가 되지 않아서 먹으나마나 랍니다. 더욱이 채하기라도 하면 약도 없답니다. 배가 아주 많이 고파서 생고구마라도 먹어야할 때는, 밤이 늦어 화로에 불도 약해 구울 수도 없을 때는, 어머니가 깎아서 얇게 썰어 줍니다. 그것도 일삼아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아서 우리가 생고구마를 깎아 먹을 때는 얇게 썰어 주는 의미도 모른 채 고구마 생긴 대로 껍질만 깎아서 먹습니다. 빨간 껍질에 깎아도 황색 빛이 나는 고구마는 틀림없이 찌거나 구워도 맛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생 걸로 깎아서 먹어도 역시 맛있습니다. 톡톡 이 사이에서 부서지는 것이 달착지근합니다. 그런데 이빨이 빠지느라고 앞니가 흔들리는 영구는 생고구마를 먹다가 고구마에 피가 묻어났습니다.
“야, 영구야. 피.”
하고 들고 있는 고구마를 가리키자, 베어 물다가 아파서 찡그리더니, 피를 보자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겨울도 깊어서 봄이 가까우면 고구마 둥우리에 고구마도 얼마 남지 않습니다. 천장까지 닿던 둥우리가 가운데로 기울어지면 가끔은 썩은 고구마를 집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은 것 같은데, 썩은 고구마는 삶아도 쓰고, 구워도 쓰고, 생 걸로 먹어도 써서,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합니다. 썩은 고구마는 소를 줘도 안 먹고, 돼지를 줘도 한번 맛을 보고는 먹지 않습니다. 살짝 썩어서 아직은 먹을만하게 보여도, 썩고 나면 그렇게 쓸데가 없는 것은 아마 고구마 밖에 없을 것입니다. 겨우내 먹었는데도 썩어서 버리는 고구마를 보면 섭섭하기만 했지 시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아깝습니다. 그러나 천상에 못 쓸것이 썩은 고구마입니다.
감자
감자는 썩어도 버리지 않습니다. 감자와 고구마는 즐겨 먹고 밥대신 먹는 다는 것은 비슷해도, 그 성질은 다른 면이 많이 있습니다. 감자는 봄에 심어서 여름에 거두어 가을 식량이 나올 때까지 먹는 구황식품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별로 먹지 않습니다. 여름이 되면서 캐서 겨울이 시작될 때까지 감자는 좋은 양식입니다. 감자를 구워서 먹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쪄서 먹으면 한 끼 식사고, 간식으로 먹어도 어디서나 환영입니다. 고구마는 주로 쌀 대용이로 먹고 반찬으로 만들어 먹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감자는 쌀 대용은 물론 반찬으로도 많이 만들어 먹습니다. 또 고구마는 생으로 까먹어도 달착지근히 맛있지만 감자는 생으로 까먹지는 않습니다. 생 걸로 먹으면 아리서 못 먹습니다.
감자의 최고 용도는 밥을 할 때 함께 쩌서, 밤 그릇 위에 얹어주는 것입니다. 한창 감자를 먹을 때는 감자가 밥 그릇 위에 하나씩 있어야 밥을 푼 것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쌀이 없으면 시커먼 보리밥에 감자가 얹히기도 하고, 보리도 없어서 옥수수를 때껴서 쌀 대용으로 한 밥 위에 감자를 올려놓아도, 어울리는 한 그릇 밥입니다. 옥수수를 때낀다는 것은 옥수수 껍질을 벗겨서 쌀알 크기로 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쌀과 색깔도 비슷하고, 거기다가 감자를 함께 숟가락을 꺼 먹으면 쌀밥을 먹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감자는 감자보시기를 해도 맛있습니다. 밀가루에 막걸리를 넣어 반죽해서 아랫목에 하룻밤을 넣어 두면 둥그렇게 부풀어 오릅니다. 감자를 놋숟가락 한쪽을 갈아 날카롭게 만든 닳은 숟가락으로 깎아서 솥바닥에 깔고, 감자 위에 부푼 밀가루를 얹고 찌는 것입니다. 감자가 다 익고 빵이 다 익으면, 주걱으로 감자와 빵을 함께 으깨어 푸면 그것이 감자보시기가 됩니다.
“예들아 저녁 먹자.”
하고 어머니가 부르면, 감자 보시기를 가운데 놓고 숟가락만 들면 됩니다. 감자는 포삭거리고 빵은 사카린을 넣어서 달아서, 김치 갈기를 가끔 한 쪽씩 섞어 먹으면 든든한 저녁이 됩니다. 그런데 빵이 제대로 부풀지 않아서 딱딱하거나, 찔 때 감자 위에서 쪄지지 않고 물에 닿아서 질컥하면, 제일 나중까지 남은 빵은 아무도 뜨지 않는 개밥에 도토리처럼 양푼 속에서 맴돕니다.
몰론 감자만 쩌서 저녁으로 먹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노랗고 하얀 감자를 손으로 집어 먹고 물을 마시지만, 어른들은 감자도 젓가락으로 먹고 김치를 반찬처럼 먹습니다. 그런 감자에 옥수수라도 두어 자루 먹고 자면 천하게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감자는 고구마처럼 아무리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습니다. 감자도 그렇지만 특히 고구마를 먹고 똥을 누면 힘들이지 않아도 매끈하게 잘 나옵니다. 고구마를 많이 먹을 때는 눈 똥도 고구마처럼 생겼습니다. 색깔도 똑같고 모양도 같을 때가 있습니다.
고구마는 썩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도, 감자는 썩어도 쓸모가 있습니다. 떡을 해 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감자가 썩었을 때만 떡을 해 먹는 것은 아닙니다. 감자는 껍질을 벗겨서 강판에 갈기만 하면 떡을 할 수 있습니다. 강판에 갈아서 양대를 넣고 찌기만하면 감자떡이 됩니다. 투명한 듯도 하고 말갛기도 하고 쪽득쫀득하기도 합니다. 더러 섞여있는 양대는 울타리콩을 말하는데, 감자떡에 아주 잘 어울리는 콩입니다. 강판에 간 감자는 적(전)처럼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부쳐도 맛있습니다.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떡은 어머니가 시간 여유가 많이 있을 때 부쳐 주셨습니다.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깊어 거둘 것을 다 거두었을 때쯤이면 감자를 잘 보관하지 못해 썩히기도 합니다. 고구마가 썩으면 소도 먹지 않아 거름더미에 버리지만, 감자가 썩으면 옹기함지에 담고 물을 부어 더 썩힙니다. 함지에서 폭삭 썩어 껍질만 남고 썩은 전분은 가루로 가라앉으면 껍질을 걷어 내고 흰색으로 남은 전분을 또 오랫동안 물에 담궈 둡니다.
“청구야, 우물가에 가서 우리 감자 물 갈아 주고 오너라”
하고 어머니가 심부름을 보내십니다. 그러면 나는 썩은 감자를 더 썩히는 함지를 찾아갑니다. 이쪽 함지는 인수네 꺼, 저쪽 동이에는 가유네 꺼, 저 건너 그릇에는 점종이네 꺼. 우물가에 서로 물을 길러 왔다가 손보고 덮어 둔 썩은 감자 전분 내는 그릇입니다. 위로 말갛게 뜬 물을 따뤄내고, 하얗게 가라앉은 전분만 남으면 새물을 부어 줍니다. 찬바람이 일 때까지 우물가에서 물을 갈아 주기 여러 날이면, 어머니는 맑은 물을 쪽 따라내고 하얀 가루만 가지고 집으로 갑니다. 하얀 가루를 말려서 송편을 빚으면 그렇게 시커먼 떡을 또 처음 보겠습니다. 검어도검어도 그렇게 검을 수는 없습니다. 같은 감자라도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만든 떡은 속이 보일만큼 말갛더니, 썩어서 물로 여러 번 행궈 낸 감자는 부엌에서 꺼낸 숯덩어리만큼 시커멓습니다. 그런데 맛은 또 기가 막힙니다. 썩은 것에서 또 이렇게 맛있는 것이 나다니 이상합니다. 고구마는 썩으면 그렇게 쓰던데, 감자는 썩으니까 그렇게 맛있는 것이 납니다.
옛날 어른들은 썩은 감자를 떡을 해 먹는 방법을 어떻게 알았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고구마가 썩으면 냄새는 별로 나지 않고 살짝 썩으면 만져 봐도 잘 표시가 안 나서 먹도록 찌든지 굽든지 칼로 벗겨 보고서야 발견하기가 일수입니다. 먹으려고 앞에 두고는 썩었다고 쓴입을 퇴퇴 밷기도 합니다. 그런데 감자는 만져 보면 금방 썩은 것을 골라낼 수 있습니다. 금방 물렁물렁해지고, 진물도 나서 겉으로 배어 흐르기도 하고, 날파리가 먼저 알고 집는 손을 피해 윙거리며 떼로 날아오릅니다. 감자나 고구마다 우리가 맛있게 먹기에는 한가지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가 참 신기했습니다. 감자가 썩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오래 걸리는 시간만큼 과정도 간단한 것이 아닌데, 썩은 것을 가지고 어떻게 떡을 해먹을 생각을 했을까가 궁금했습니다. 그러면 고구마는 왜 떡이 될 수 없을까요?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슨 질서 같은 것이 분명히 있을 것같습니다.
옥수수
옥수수로 저녁을 때울 때도 많습니다. 옥수수대에 아기 업히듯이 달린 옥수수가 수염이 희푸르다가 갈색으로 꼬불꼬불 마르기 시작할 때가 먹기에 좋은 때입니다. 너무 익어도 야물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 너무 일찍 따도 속이 덜 차서 먹을 것이 없기도 합니다. 아직 때가 일러 성급할 때는 덜 익은 것을 따기도 하고, 옥수수가 거의 야물어질 때에 가면 다 익어버려서 먹을 만한 것을 따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싸리 다래끼나 바지게에 옥수수를 따지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서,
“예들아 옥수수 좀 까라.”
하고 아버지가 소리치십니다. 우리는 봉당에 앉아 옥수수 껍질을 벗깁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솥에 넣고 불을 붙이면 옥수수는 먹는 것입니다. 옥수수 껍질은 삼태기에 담아 소죽통에 넣어 주면 소도 좋아합니다. 옥수수는 사람과 소가 함께 맛있는 먹는 저녁 식사입니다.
노랗게 익은 옥수수는 나란히 돋은 옥수수 알과 반짝이는 빛깔만 봐도 어느 것이 맛있는 것인 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찰옥수수 중에서 말입니다. 찰옥수수는 우선 자루 길이가 짧아서 소출이 적습니다. 그러나 꺾어 쪄먹는 맛으로 심습니다. 매옥수수는 우선 쩌먹기는 맛이 없어도 한겨울 양식으로는 찰옥수수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래서 찰옥수수는 따서 쪄먹을 것으로 심고, 매옥수수는 겨울 양식이나 간식으로 심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건져서 마루에 오면, 가장 맛있게 보이는 것으로 하나씩 잡고 젓가락을 옥수수 대에 끼워 잡고 먹습니다. 이것이 저녁인 셈입니다. 두 자루 먹고, 세 자루, 네 자루째 먹기 시작하면 배가 차서, 남은 것 중에서 하나씩 골라 아무도 찾을 수 없이 나만 꺼내 먹을 수 있는 곳에 숨겨 둡니다. 무슨 보물이라도 숨기듯이 각자 방으로 가서 깊숙이 박아 둡니다. 그러다가 잠을 자려고 이불을 깔다 보면 이불 갈피에서 옥수수가 튀어 나오기도 합니다.
“야, 이거 뭐야 이불에서 옥수수가 나오네.”
“그거 내 옥수수야.”
종구가 옥수수를 이불 속에다가 숨겼나 봅니다. 어떤 때는 숨긴 데를 찾지 못해 며칠을 걸려 찾다가 실겅 위에 굴려 넣었는데, 쥐가 뜯어 먹다 남은 것을 늦게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쥐가 이발로 건드린 알만 떼어내고 먹기도 했습니다. 가장 늦게까지 먹는 사람이 약을 올리며 먹을 수 있으니 이기는 것입니다. 많이 먹으려고 꼭꼭 씹어 먹지 않고 빨리빨리 삼키다 보면, 소화가 되지 않은 옥수수알이 몽알몽알 그냥 나오기도 합니다. 세모로 생긴 옥수수씨눈만 보이면 그래도 잘 먹은 것입니다.
매옥수수는 수염이 새까맣게 마르고, 옥수수 껍질이 갈잎이 될 때까지 뒀다가, 완전히 여문 다음에 수확을 합니다. 껍질을 까서 사랑방 윗목에 말리면 촘촘히 붙어 박힌 알들 사이에 실금이가도록 마릅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만든 송곳으로 두 세줄 걸러 한 줄씩 찔러 골을 냅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한 자루씩 잡고 탁탁 튀기듯이 옥수수 알을 땁니다. 그래도 좀 덜 말랐다 싶으면 베자루에 담아 묶어서 아랫목 뜨끈뜨끈한 곳에 놓아 말립니다. 옥수수 자루 말리는 자리에 콩자루가 누워있을 때도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밖에서 노느라 동상이 걸릴 때가 있는데, 손이나 발에 얼음이 박힐 때가 있습니다. 동상이 걸리면 그냥 있어도 가렵고, 따뜻한 물에 씻어도 근질근질 거려, 피가 나도록 긁어도 가려워 견딜 수가 없을 때, 끄끈끄끈한 콩 자루 밑에 넣고 있으면 낫는다고 했습니다. 발을 넣고 있다가 그대로 누워 잠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옥수수를 아랫목에 놓고 말리면 한 이틀이면 완전히 말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린 옥수수를 때껴서 쌀 대신 밥을 해 먹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 집은 당시 쌀밥보다 옥수수밥을 먹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옥수수는 엿을 고아 먹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 집은 머슴아들 삼형제가 자라느라고 늘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막내로 난 딸이야 먹어야 얼마나 먹겠습니까만은, 한창 크느라고 먹성 좋은 사내아이들은 무엇을 해도 모자랐습니다. 그렇다고 어디서 사다가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겨울에 어디 밖에서 먹을 것을 조달할 수도 없고, 그래서 한겨울에는 옥수수로 엿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옥수수 농사도 잘 됐고, 많은 옥수수로 엿을 일곱 번이나 고았습니다. 아버지가 사랑방 소죽솥에 엿불을 지피시면서,
“아, 이놈들. 올 겨울에 벌써 일곱 번째 엿을 고는구나.”
하시면서 안방 부엌에서 밥을 짓는 어머니를 건내다 보시면서 웃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좀 묽게 과야겠다.”
“그래요. 손으로 뚝뚝 떼어 먹을 수 있도록 고아 봐요.”
어머니는 이빨을 갈고 있는 영구를 생각하는가 봅니다.
옥수수엿을 만들 때는 먼저 옥수수로 쌀을 대신할 때 때끼듯이, 방앗간에서 옥수수 가루로 빻아 옵니다. 노르끄름한 가루를 큰 소죽솥에 물을 타서 멀겋게 끓입니다. 이 때 엿기름을 함께 넣습니다. 한번 뜨겁게 펄펄 끓인 옥수수 가루를 식힌 다음에 삼베자루에 퍼담아 건더기는 거르고 맑은 국물만 내어서, 솥에 다시 넣고 끓입니다. 이때는 불을 너무 괄게 넣으면 안 되고, 서서히 덥혀 국물을 졸여야 합니다. 물을 다 졸이고 남은 것이 엿이되기 때문입니다. 수시로 나무 주걱으로 떠봐서 엿의 점성을 봐, 식으면 딱딱하게 엿이 되겠다 싶으면 불을 그만 때고, 얇은 쟁반이나 장독 뚜껑에 퍼서 먼지가 내려앉거나 쥐가 타지 않을 곳에 널어 둡니다. 이것이 식으면 바로 엿이 되는 것입니다. 노르끄름하던 옥수수가루가 검붉은 엿덩어리로 응축되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옥수수로 시작했는데, 얇은 쟁반 하나에 편편하게 앉히도록 쫄아 들었습니다. 가루로 푸석푸석하게 날아갈 것이었는데, 딱딱해서 망치로 깨야할만큼 뭉쳤습니다.
올해 처음에 두 번은 그냥 엿을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와 네번째는 콩을 볶아서 엿과 함께 뭉쳐 콩엿을 만들었습니다. 엿만 먹으면 달기만 하니까 뭘 좀 더 넣어서 먹으면 좋을까 싶어서, 설 때 동네에 세배를 다니면 가끔 부잣집에서나 얻어먹는 콩엿을 생각하고는, 우리도 넣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때는 볶은 콩이 엿보다 더 야물어 이빨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거기에 영구가 아주 질색을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는 아주 얇게 널어서 깨 먹기 좋게 만들었습니다. 그냥 엿을 하면 얇은 주변부터 깨 먹다가 가운데는 언제나 두껍기 마련입니다. 엿이 검푸름이 더하면 만져보지 않아도 그 두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두꺼운 부분을 깨 먹으려면 칼등으로 깨자니 다칠 것 같고, 망치로 깨자니 깬 부분이 더러워질 것 같고, 그냥 먹자니 너무 커서 입에 넣을 수가 없고, 뭘로 때려서라도 깬다고 해도 방바닥에 흩어져 찐덕찐덕 묻어나는 것이 싫고, 그걸 보다 못해서 다섯 번째부터는 아주 얇게 만드셨습니다. 이번에는 일곱 번째인데 아주 묽게 해서 손으로도 떼어 먹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올 겨울을 삼형제는 사랑방에서 엿으로 났습니다. 엿을 곤 아궁이의 방은 엿맛 만큼이나 뜨끈뜨끈합니다.
옥수수로 만들 수 있는 간식으로 또 좋은 것은 틔밥입니다. 박상이라고도 합니다. 동네 가운데로 이사 간 원각이네 집에 틔밥장수가 왔다고 하면 먼저, ‘펑 펑’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립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아주 급해집니다.
“영구야, 틔밥장수 왔다. 종구야, 틔밥 틔우러 가자. 빨리 옥수수 퍼 담어.”
먼저 옥수수를 퍼 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옥수수만 있으면 무조건 담고 보지만, 아무 것이나 퍼갔다가는 틔밥장수가 덜 말랐다고 하는 날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합니다. 순서가 밀리는 것이야 좀 억울해도 참을 수가 있지만, 혹시 못 틔겨 먹을 까봐 조바심이 나는 것입니다. 옥수수는 있는데 틔길 돈이 없을 때는 한방거리의 옥수수를 더 가지고 가면 됩니다. 그러니까 옥수수 한 방을 틔기는데는 옥수수 두 방 값이 드는 셈입니다. 어떤 때는 틔기는 삯에다가 나무도 한 도막 가지고 가야할 때가 있습니다. 틔밥장수가 나무를 짊어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무야 우리 집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틔겨만 준다면 한 짐이라도 지고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옥수수만 틔겼습니다. 한 줄로 옥수수 자루를 놓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다음 순서로 자루에서 쌀을 쏟을 때는 순서를 다투다가도 입이 다물어져 모두 말을 못하고 조용해집니다. 물론 옥수수는 꺼칠꺼칠해서 어린 아기는 쌀틔밥을 먹어야 한다지만, 쌀을 밥으로도 못 먹는 사람들은 주점부리로 먹을 것을 쌀로 만든다는 사실에 기가 죽고 맙니다.
“원각아, 저 쌀은 누구네 거야?”
“거 있잖아.”
그러면 다 압니다. 틔밥장수가 올 때마다 부잣집 한 집만 쌀을 틔겨갔습니다. '펑' 할 때 날아 떨어진 쌀 틔밥을 주워서 입술에 한 알 넣어 봐도 역시 입안에서 살살 녹아 깨물 것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평소에 뭘 먹고 살까가 궁금했습니다. 물고기를 천정에 매달고 쳐다보기만 했다는 자린고비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네가 먹는 호매고기 말고 진짜 생선토막이 깨끗이 손질되어 찬장에 놓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옥수수를 한방을 틔겨 놔 봐야 우리 집에서는 며칠 가지도 못합니다. 아무리 실겅 위에 높이 놓아도 삼형제는 등을 밟고 올라가 꺼내 먹고, 숨긴다고 옷궤짝 속에 넣어놔 봐야 있는 것을 아는 이상 온 집을 다 뒤져 찾아내고야 맙니다. 틔겨지지 않아서 돌처럼 딱딱한 알갱이도 다 찾아 먹고, 노란 옥수수 껍질까지 입에 넣고 틔길 때 넣은 단 맛을 보는데야, 다음에 또 한 방만으로 때울 수는 없습니다. 다음에는 서너방을 틔워도 아귀처럼 먹어 치우는 아이들 먹성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버지는 소죽을 끓이고 어머니는 아침밥을 짓는 사이에, 우리 삼형제가 일어나 틔밥 한 방을 앞에 놓고 먹기 시작하면,
“밥먹어라.”
고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가 그렇게 반갑지 않습니다. 벌써 틔밥 한방을 다 먹었으니 밥맛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러고도 밥상머리에 앉으면 밥 한 그릇씩 여전히 해 치웁니다. 틔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다는 말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소리입니다.
틔밥을 너무 좋아하자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겨울 방학 때 아버지가 틔밥을 틔우는 기계를 아주 사오시고 말았습니다.
“옛다. 마음대로 틔겨 먹어라.”
아, 이게 왠 떡입니까? 마당에다가 기계를 차려 놓고 우리가 직접 틔밥을 틔겼습니다. 아들들이 어느 정도 컸으니 아버지는 기계만 사놓고 삼형제가 엎치든 접치든 상관하지 않고 무심한듯 지켜보기만 하셨습니다. 나는 영구와 종구를 데리고 수리도 했습니다. 틔밥이 나와 받는 그물이 시원치 않으면 철사로 꿰매 가면서, 오늘은 벌써 다섯 번을 틔겼습니다. 어제도 세 번을 틔겼습니다. 입구를 막는 부분에 납을 녹여서 김이 새지 않게 하는 부분도, 많이 사용해서 김이 새면 우리가 녹여서 손질을 했습니다. 이 작업은 한나절은 걸리는 공사입니다. 친구들은 우리가 튀긴 것을 얻어는 먹어도 자기 옥수수를 가지고 와서 틔겨 달라고는 안했습니다. 먹어보고는 틔밥장수가 틔긴 것과는 맛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며칠 후, 제천에서 현덕이 아제가 왔습니다. 현덕이 아제는 나와는 오촌간인데 나보다 나이가 한 살 더 많습니다. 함께 틔밥을 틔겼습니다. 온도가 차서 기계 입구에 철망을 씌우고, 입구를 여는 고리에 쇠막대기를 걸고 당기면 입구가 열려 뻥 터져 틔밥이 틔겨지는 것입니다. 현덕이 아제가 해 본다기에 나는 쇠막대기가 구멍에 잘 끼워졌는지 아닌지 살펴보았습니다.
“잠깐, 내가 볼게. 저 구멍에 쇠막대를 잘 끼워서 당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당겼습니다. '펑' 철망 안을 살피려는 내 눈이 틔밥이 터지는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갑자기 캄캄해졌습니다. 눈을 떠도 눈이 없습니다. 양 손으로 감싸니까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앞이 영 보이지 않습니다. 틔밥장수가 틔울 때는 '뻥이요'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는 자신도 고개를 돌리고 터트리던데, 난 뻥 터질 때 눈을 바짝 대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합니다. 영구와 종구는 자신들이 아는 대로 현덕이 아제에게 '기계 속을 샅샅이 긁어내야 한다'느니, '망을 제대로 안 씌워서 밖으로 날아가는 것이 많다'느니, '꺼내 놓은 불을 아무데나 두면 불이 날지도 모른다'느니, '다음에 틔길 것에 소다와 당원을 넣었냐'느니, '너무 가득 넣으면 덜 틜지도 모른다'느니, 다시 기계에 불을 넣고 돌릴 때까지 시끌벅적한데, 난 앞도 못보고 눈을 감싸쥐고 찬 마당에 앉아서 꼼짝도 못한 지가 벌써 한참입니다.
기계를 다시 돌리기 시작하면서 한방 틘 것을 수습하고야 정신이 들었는지,
“청구가 왜 그러고 있냐?”
고 돌아보았습니다.
“앞이 안보여. 내 눈이 날아 갔는가 봐.”
해도, 피가 나지 않으니까 그랬는지 모두 웃기만 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아프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뭐가 들어간 것처럼 몽긍몽글하기는 해도 아프지 않으니까 한참을 그렇게 있었습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틔밥 기계에 나무를 넣고 돌리는 현덕이 아제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옥수수로 겨울을 났습니다.
떼까치
옥수수를 꺾어온 옥수수 밭에는 한 겨울에 떼까치 떼가 날아듭니다. 온 산에 들에 흰눈이 쌓이고 나면 밭에 선 빈 옥수수대만 바람에 삭은 잎을 날리고 서 있습니다. 어디를 봐도 흰 눈 아니면 푸른 소나무 밖에 볼 수 없는데, 옥수수 밭에 선 빈 옥수수 대궁이 새들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빈 옥수수대에는 더러 옥수수 알이 남아 있을 때가 있습니다. 옥수수를 수확할 때 무녀리로 자라 먹을 게 안 된다고 남겨 두고 간 것이나, 쥐가 먹어서 몇 알 남지 않은 것은, 따가지 않아서 내년 봄 옥수수대를 뽑아 불 지를 때까지 밭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까치는 흔히 검은 바탕에 흰 점이 있는데, 떼까치는 옥수수대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갈색 깃털을 하고 있습니다. 울음소리는 까치와 비슷합니다. 떼로 몰려다니면서 까치처럼 운다고 해서 떼까치로 불렀습니다.
오늘같이 흰눈이 온 천지를 덮으면 우리는 옥수수 밭에 새 덫을 놓습니다.
“영구야, 우리 떼까지 잡으러 가자.”
“그래, 형. 가자.”
그러면 종구까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떼까치를 잡을 덫을 만듭니다. 떼까치 덫은 참새덫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덩치가 크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무 중에 단단한 산초나무를 구워 삼태기모양으로 휩니다. 휜 나무에 가는 노끈으로 얽어 망을 만드는 것이 우선 할 일입니다. 다음은 탄력이 좋은 굵은 나무를 새끼 줄 두 개로 활을 만들어, 가운데 얼개를 끼우고 돌립니다. 활의 펴지는 힘으로 얼개가 힘있게 돌아가겠다 싶으면, 짚단을 풀어 얼개가 닫힐만큼 가운데 끼우고 틀을 만드는 것입니다. 얼개를 졋혀서 떼까치가 좋아하는 옥수수 도막을 미끼로 달아 바늘로 꼽고는, 흰 눈 위에 풍성한 옥수수 잎을 깔아 잔치상을 펼쳐 놓으면, 어김없이 떼까치가 몰려옵니다.
떼까치 덫을 확인하러 오후에 갈 때는 떼까치들이 사람이 가까이 가도 차마 날아가지 못하고 주변을 부산하게 날아다니는 때가 있습니다.
“영구야, 떼까치가 잡혔는가봐. 떼까치 떼가 안 날아가고 있어.”
그럴 때는 떼까치가 잡혀서 아직도 살아나려고 발버둥 치는 중입니다. 잡힌 동료를 두고 차마 날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새들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침에 확인을 하러 가면 혼자서 죽어 있습니다. 밤이 되면 떼까치도 자러 날아가는 가봅니다. 덫을 대여섯 개를 놓으면 어떤 때는 두세 마리를 잡아 갈 때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도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떼까치를 잡아 가면 우리는 소죽 솥 아궁이에서 구워 먹습니다. 털을 잡아 뽑고, 배를 갈라서 내장을 꺼낸 다음에, 소죽을 끓이고 난 숯불에 굽는 것입니다. 셋이 앉아서 다리를 하나씩 떼어 먹고, 가슴살을 뜯어 먹고, 날개도 가는 뼈만 남기고 발라 먹었습니다. 막내인 미란이에까지 돌아 갈 것이 있습니다. 새까맣게 탔어도 숯을 긁어내가며 고깃맛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두세마리가 될 때는 먹고잘 것도 있지만, 오늘같이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을 때는 입맛만 다시기 일수입니다. 오늘은 막내에게 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조용조용 먹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막내가 사랑방문을 열고 나타났습니다.
“오빠, 내 꺼는?”
“어? 뭐? 새고기?”
다 뜯어먹고 떼까치 대가리 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사정도 모르는 막내는 자기도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막으려고 남은 동그랗게 탄 머리통을 건네줍니다. 막내는 그것도 오빠들이 맛있게 먹는 고기인줄 알고 한 입에 넣고 깨물어 먹었습니다. 우리 삼형제는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오빠들과 함께 한 입 얻어먹었다는 것으로 이내 조용해진 막내가 신이 났습니다. 내일은 막내에게도 제대로 된 다리 하나를 건네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떼까치도 어둑한 밤에는 집으로 들어가 옥수수 밭도 조용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