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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뱀재로 비행기가 날았다.

  뱀재를 넘은 비행기


  6.25전쟁이 끝난 지가 10년이 가까이 되어도 우리가 살았던 산골에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빨지산은 지리산에 남아 있었다는데, 지리산은 우리 동네 뒷산인 소백산맥의 끝줄기입니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연결되는 지점에서 서쪽으로 소백산을 지나 도솔봉 너머 연화봉 아래가 사동이고, 조금 더 서쪽으로 가면 풍기장을 보러 가던 뱀재가 나옵니다. 뱀재 아래 동내가 샘골입니다. 동내이름은 샘골이었지만 골짜기가 아니고 산 중턱이라서, 뱀재를 넘어 나는 비행기가 동네 머리 위를 바로 지나갑니다. 뱀재로 사람만 넘어 다닌 것이 아닙니다. 비행기도 소백산맥을 넘어 날 때는 비교적 낮은 뱀재를 넘었습니다.


  남천은 산 중턱이라서 비행기 소리가 유난히 큽니다. 물론 북쪽에서 남쪽으로 넘어갈 때는 긴 예음이 있습니다. 남천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덕촌 위에서부터 장정을 거처 비행기가 날아오면 '쉐에에에엑-' 하면서 길게 기계 소리를 내다가, 남천 머리 위를 지날 때는 엄청 큰 소리로 산맥을 넘어 금방 조용해집니다. 그러나 남쪽에서 날아올 때는 예음이 없습니다. 소백산맥 남쪽에서 날아 올 때는 소리가 들리지도 않다가, 산맥을 넘어서기만 하면 갑자기 '쏵-' 하고, 산맥을 찢고 나타나 우리가 사는 동네도 온통 찢어 놓을 듯이 날아갑니다. 장정 하늘 위로 날아갈 때는 꽁무니를 보이면서 약올리듯이 유유히 사라집니다.


  비행기가 소백산을 찢고, 동네를 찢으면, 동네에 사는 생물들도 한꺼번에 찢어집니다. 닭은 알을 품고 있다가도 놀라서 뛰쳐나옵니다. 알을 낳다가도 놀라서 둥지를 뛰어내려와, 숨을 생각도 없이 무조건 땅을 차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봅니다. 딛고 있는 땅이 갈라진다고 땅을 박차고, 날고 있는 하늘이 갈라진다고 허공으로 날개짓을 합니다. 날다가 뛰는 아이에게도 떨어지고, 갈 곳을 모르는 소 등짝에도 머리를 쳐박습니다.


  소는 외양간에 있든지 말뚝에 박혀 비탈에서 풀을 뜯고 있든지, 꼬뚜래가 부러지도록 당기고, 뚫은 코가 찢어지도록 가로 뛰고 세로 뛰고, 그 큰 등치값도 못합니다. 특히 외양간에 있을 때 겁나는 것은 외양간 기둥이 뽑힐까 걱정이었습니다. 돼지는 아무리 꽥꽥거려도 들리지 않는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 구석에 머리를 쳐박고 발버둥을 칩니다. 염소는 묶인 고삐를 가운데 두고 뱅긍뱅글, 다시 거꾸로 뱅글뱅글, 살길을 찾는지 발버둥을 칩니다. 소리만 들으면 땅도 찢어지고 하늘도 갈기갈기 찢어져 내려앉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통에는 그 비행기에서 폭탄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아마 폭탄이 떨어져도 비행기 소리에 묻혀, 꽝꽝 터지는 소리만 났지, 찢어지는 소리에 묻혔을지 싶습니다. 뱀재를 넘어온 비행기 소리가 바로 전쟁통입니다. 산맥을 넘으면서 고도를 더 낮추는 듯도 했습니다. 휘청하면서 온 천지를 찢어 놓습니다.





  염소와 비행기


  우리 어머니는 5남매를 낳아 4남매를 기르셨는데, 몸이 약해서 아이들을 모두 젖으로 키우지 못하셨습니다. 늘 젖이 모자라 염소를 한 쌍 사다가 새끼를 내고, 염소 새끼의 젖은 일찍 떼고는, 대신 그 젖을 짜서 우리가 먹고 컸습니다. 처음에는 염소의 뒷다리를 묶지 않고 짰는데, 어미 염소가 뒷발로 하도 차서 땅에 말뚝을 박고 양 뒷다릴 묶어 놓고 짰습니다. 짠 젖은 하얀 천에 한번 걸러서, 숯불에 한번 뽀르르 끓여서 먹었습니다. 잠시만 끓여도 가장 위에 종이보다도 더 얇은 젖막이 생깁이다. 마시기 전에 젓가락으로 걷어서 입에 넣으면 아주 고소합니다. 엄마 젖을 먹는 다른 집 아이들보다 일찍 젖을 뗐고, 밥을 일찍 먹기 시작합니다. 이 염소를 키우지 않았을 때는 백설기를 해서 말려 저장했다가 끼니마다 물에 풀어서 먹였답니다.


  염소는 일 년에 두 번, 봄 가을로 새끼를 낳습니다. 보통 두 마리를 낳고, 한 마리를 낳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세 마리를 낳을 때도 더러 있습니다. 우리 염소가 상당히 많이 불어났습니다. 한 쌍을 2년만 키우면 어렵지 않게 6,7 마리로 불어납니다. 많다고 좋아만 할 것도 아닙니다. 관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마리마다 고삐를 매야 합니다. 산으로 도망을 치면 잡을 장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도망을 치지 않고 집에 들어온다고 해도 농작물을 마구 뜯어 먹을 텐데, 막을 장사도 없습니다. 아침을 먹고 들에 나갈 때 끌고 가 풀밭에 묶어 놓고 뜯기다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 올 때 풀어서 끌고 돌아와야 합니다. 남천은 순전히 비탈이 많아서 고삐를 자칫 잘못매어 놓으면 나무에 얽혀서 종일 뜯어 먹지도 못하고 쫄쫄 굶거나, 아니면 나무에 얽히고 자기 줄에 섥켜서 목을 매 죽어 있기도 합니다. 번식을 시키면이야 얼마든지 많은 염소를 기를 수 있지만, 젖을 짜먹기 위해 기른다면 5마리를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아버지가 분양을 하거나 잡아 먹어서 3마리에서 5마리까지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염소는 성질이 고약해서 두 마리도 함께 가지를 못합니다. 아니, 한 마리를 몰고 다녀도 앞으로 힘껏 달려서 줄을 팽팽하게 당겼다가, 더 이상 안 당겨진다 싶으면 비탈 내리막으로 내 달렸다가, 그래도 안 딸려 온다 싶으면 반대로 비탈 오르막을 숨가쁘게 기어올랐다가, 고삐를 잡아 당겨 길로 내려놓으면 이번에는 오던 길을 거슬러 뒤로 줄달음을 칩니다. 젖을 주는 일이 없으면 도무지 친근감을 가질 수 없는 놈입니다. 날이 사뭇 저물어 땅거미가 짙어지기라도 하면 저도 집에 빨리 가야겠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앞으로 당기는 걸음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큰 놈이라면 한 마리도 소를 몰듯이 쉽사리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두 마리라도 되면 더 정신이 없습니다. 도무지 함께 길을 걷지 않습니다. 하나가 앞을 서면 다른 하나는 비탈을 내리 달리거나, 하나가 비탈을 내려가면 다른 하나는 뒤로 되돌아 뛰고, 하나가 뒤를 달리면 다른 하나는 앞으로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고삐를 나무에 매어 놓을 때까지 합니다. 세 마리만 되면 양손에 잡았던 고삐를 하나로 묶고 끌고 가야 합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날고 뛰는 염소 가운데서, 원의 중심에 서서 둘레를 끌고가듯해야 합니다.


  어머니는 염소가 세 마리 이상이 되면 짜증을 내십니다.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는 아버지는 꼴짐을 한 짐 지고 소를 몰로 오고, 어머니는 염소를 끌고 오십니다. 아버지가 짐을 무겁게 지고 염소에 끌려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끌려는 다니더라도 천상 짐을 지지 않은 어머니가 염소 고삐를 잡아야 했습니다. 원의 중심에서서 원 둘레를 도는 염소에 끌려 도무지 집으로 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잖아도 약한 몸에 종일 들에서 일을 해서 기운은 없는데, 기운 센 염소에 끌려 다니면서 집으로 오려니 여간 힘에 부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 때 비행기가 뱀재를 넘어 예고도 없이 지나가면, 그래서 비행기 찢어지는 소리에 염소가 놀라 각자 제 길로 뛰기라도 하면, 지친 엄마는 사정없이 염소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것입니다. 고삐를 놓치는 날에는 어디로 처박혀 있는 지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다른 고삐를 처리하고 쉽사리 잡으러 갈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젖을 먹이지 못하고 염소젖을 자식들에게 먹이는 대신 염소들에게 사정없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거기에 비행기가 톡톡히 한 몫 했습니다.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 셋째 동생 종구에게 염소젖을 짜 먹일 때는 나와 영구가 염소를 끌고 다녔습니다. 염소 뜯기러 다닐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나무에 고삐가 얽히지 않게하고, 비탈에 매서 염소가 매달리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고삐를 맬 때 조심해야 합니다.  첫째는 염소가 하루 종일 당겨도 풀어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과, 둘째는 풀 때 잘 풀어지도록 매야합니다. 한번 고리를 주어서 매는 방법입니다. 고리를 당기는 고삐 안에 주어서 염소가 당기면 당길수록 묶음은 단단히 조여지게 하면 풀리지는 않습니다. 풀 때는 고리 준 끝을 잡아당기면 한 번에 풀 수가 있습니다. 고리를 주지 않고 매면 염소가 하루 종이 고삐를 당겨서 얼마나 단단히 묶이는지 모릅니다. 우리 어린 손으로는 도저히 풀 수가 없습니다. 웬만한 나무에 묶으면 나무를 뽑아서 때도 안됐는데 염소 혼자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염소가 풀을 뜯는 곳으로 가서, 우리는 소꼴을 한 짐 베서 짊어지고, 염소를 끌러 집으로 올 때였습니다. 짐을 졌을 때는 염소가 두 마리만 되어도 끌고 올 수 없습니다. 한 마리라면 그래도 끌고 올만 합니다. 짐 진 팔로 고삐를 바짝 들켜 쥐고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쨍쨍한 볕이지만 누적지근하게 공기가 무겁더니 드디어 호랑이가 장가를 가는가봅니다. 해는 떴는데 비가 오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소나기였습니다. 지나가는 비라도 염소는 비를 제일 싫어해서 더 들고 뜁니다. 아주 많이 오는 비에는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려고 풀이 죽지만, 작게 오는 비는 빨리 피하려고 여간 서두는 것이 아닙니다. 꼴짐을 져서 위는 젖지 않았는데, 그래도 비는 비라서 신은 고무신에 물이 들어가 미끄럽기는 했습니다. 벗어지는 고무신을 간신히 끌고, 달리는 염소 고삐를 단단히 당기며, 벌써 꼴짐이 무거워 어깨가 아프고 다리가 휘청거려도, 양지말 개울을 지나 집에 닿는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뱀재를 넘어왔습니다. 펄쩍 펄쩍 뛰는 염소를 당할 수가 없습니다. 앞으로 가다가, 비탈을 내리 달리다가, 다시 뒤로 돌더니, 오르막을 뛰어 올라서는, 내 두 다리를 감고 다시 내리막을 달려갔습니다. 나는 '어-' 할 사이도 없이 찢어지는 비행기 소리에 놀라고, 인간으로의 스타일도 완전히 찢어져, 꼴짐을 진 채로 내리막으로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올라오던 양지말 개울에 쳐박혔습니다. 아, 저 산통 다 깨는, 근근신이 살아가는 삶통을 다 깨는 비행기를 어쩌면 좋단 말입니까? 아직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밤 옥수수로 저녁을 때우고 누워서, 영구와 함께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엎친데 덮치기


  날은 저물지요.

  지게는 무겁지요.

  꼴짐은 기울지요.

  허리띠는 끊어져 바지는 내려가지요.

  소나기는 내리지요.

  고무신은 미끄러워 벗어지지요.

  염소는 비 온다고 뛰지요.

  그 때

  비행기는 지나가지요.

  쐐액- 비행기 소리에 염소는 사방으로 뛰지요.






  효구를 데려간 비행기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는 아들도 잘 낳았습니다. 반대로 부잣집에서 호강하는 사람들은 자손이 귀했습니다. 낳아도 딸이 많았습니다.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일꾼이 필요하니까 아들을 선호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우리 집에도 아이가 태어났다하면 아들이었습니다. 제가 맏이이고, 제 아래도 연달아 아들에 셋이 더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친구들은 아버지가 욕심도 많다고들 했습니다.


  당시 막내로 태어난 동생을 형 셋이 다 엄청 귀여워했습니다. 막내 동생에게 인기를 끌려고, 위로 3형제는 서로 좋은 것을 주고 호감을 사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못치기하는 못을 주면 '모찌 모찌'하며 받았고, 영구가 고구마를 구원 주면 '괴기맘 괴기맘'하고 받아먹습니다. 웃는 것도 귀여웠고, 우는 것도 예뻤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효구라고 하자고 의견을 모았는데, 아버지는 필구라고 호적에 올리고 오셨답니다. 그래도 우리 삼형제는 효구라고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막내 효구가 비행기 소리에 잡혔습니다. 마당에서 놀 때입니다. 병아리들은 엄마 닭을 따라 싸리 울타리 아래 갓 깨어난 벌레를 쪼고, 돼지우리에 돼지는 죽통에 구정물을 꿀꿀 거리고, 우리들은 모처럼 화창한 봄볕을 마당 흙바닥에서 쪼일 때였습니다. 뱀재 위로 비행기가 나타나더니 하늘을 찢고, 땅을 찢고, 그 사이에 생명있는 만물을 갈래갈래 찢으며, 피할 수 없이 덮쳐왔습니다. 암탉은 병아리를 챙기지도 못하고 제 몸뚱이 부서지는 줄 알고 날아올랐습니다. 돼지는 깜짝 놀라 우리 구석에 대가리를 박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우리도 마당에서 놀다가 도망을 치지만, 등짝에서부터 머리통을 쪼개듯이 찢는 소리에 발짝도 떼지 못하고 버둥대기만 했습니다. 효구는 그만 그 비행기 소리에 놀라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비행기가 지나간 다음에도 넘어져 울고 있었는데, 왠지 우는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악을 쓰며 울어도 시원치 않은데, 그냥 힘없이 '응애 응애' 울고 있습니다.  


  그 후로 효구는 심하게 아팠습니다. 마루에도 나오지 못합니다. 소죽을 쑤는 사랑방 문을 열고 창백한 얼굴로 내다만 볼 뿐입니다. 모찌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괴기맘을 줘도 먹지도 않습니다. 코물만 심하게 흘렸고, 칭얼칭얼 울기만 했습니다. 부모님은 어디 가서 좋은 약을 구해다가 먹였다고 하는데도, 영 나아지는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가, 그러다가, 열흘이나 지났을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랫목에 누워 앓던 효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동이 트기 전에 아버지가 죽은 효구를 산에 묻고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동생을 잃었습니다. 부모님은 눈물을 흘리셨지만, 우리의 충격을 줄여 주시려고 애써 태연해 하시면서, 평상시와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그 찢어지는 소리에 나도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았다면 잡히겠다 싶었습니다. 골을 쪼개 헤치는 것 같고, 등을 갈라 내치는 것 같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어떻게 하면 살겠구나하는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거대한 소리에서 피할 탈출구가 없는 것이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당했으면 다음 또 올 때는 이렇게 대처해야겠다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단단히 마음을 먹었어도 매번 비행기가 날아 올 때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무사히 비행기가 지나갔어도, 다음에 또 오면, 또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위에서 덮치는 그 큰 소리를 견뎌낼 수가 없었습니다. 효구가 당했습니다. 효구는 겉으로 보기에 몸은 갈라지지 않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정신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비행기가 하늘을 날면서 사람을 죽이고 있습니다. 산골에서 이름없이 사는 백성들은 뱀재를 넘어 온 인민군에게 속절없이 죽어 간 것처럼, 전쟁이 끝난지 10년 가까이 흘러 그렇게 비행기 소리에 죽어 가도,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산골짜기에서 땅을 파먹고 사는 사람들은 국군들이 다시 몰려와 부역을 한 빨갱이로 몰려 애닯게 죽어 간 것처럼, 우방인 미국의 쌕쌕이가 낮게 날아 사랑하는 가족을 죽게 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 한마디 할 곳도 없었습니다. 우리 효구를, 이젠 땅에 묻힌 효구를 어찌 한단 말입니까?


  그 후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했습니다. 놀라서 도망을 가다가도, 정신을 바짝 잡고 돌아서서 하늘을 향해 팔을 치켜들었습니다. 발길질을 하면서 돌을 던졌습니다. 그래도 비행기는 유유히 잘도 날아갑니다. 미국놈들 비행기라고 표시가 있을 때는 엄청 얄미웠지만, 어디 가서 미국이 나쁘다고 말도 못했습니다. 하늘을 나는 놈들은 땅에 사는 사람을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날아다니는데 울화통에 터졌습니다. 더군다나 남의 나라에 와서 남의 나라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을 미국놈들이 더 미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애국가를 부르는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이 있어도, 소백산 아래서 비행기 소리에 놀라 죽어가는 무지랭이를 보호해 줄 조국은 없었습니다. 비행기 소리 때문에 나처럼 동생을 잃은 친구가 또 있다고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비행기가 지나갈 때 하늘을 향해 욕하는 것은 누구나 똑 같았습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봄비가 푹신 내려서 어른들이 흡족한 마음으로 농사준비를 할 때입니다. 평소에는 큰 버스만 드나들던 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농협창고에 큰 트럭이 비료를 잔뜩 싣고 왔습니다. 평소에 버스를 돌릴 때도 버스 뒤꽁무니는 신구 가는 다리가 있는 담장 너머까지 빠져야하는데, 큰 트럭을 농협창고에 바짝 붙여 대려고 담장으로 바짝 붙여서 돌다가, 그만 물 먹은 담장이 무너져 트럭이 담장 아래로 뒤집혀 떨어졌습니다. 신구 다리 바로 앞입니다. 남천이나 남조를 갈래도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학교가 막 끝나던 참이라 책가방을 메고 달려가 정류장에서 뒤집힌 트럭을 내려다 봤습니다. 뒤집힌 트럭 밑바닥은 바퀴만 튀어나와 천천히 돌뿐, 나머지 편편했습니다. 그런데 편편한 차 밑바닥을 보니 내장을 보는 듯했습니다. 돼지를 잡을 때 배를 갈라 놓으면 창자와 간과 오줌보가 보이듯이, 뒤집힌 트럭도 내장을 다 드러내고 있습니다. 굵은 통도 있고 가는 통도 있고, 둥그런 관도 있고 네모진 관도 있고, 가운데는 두꺼운 쇠도 있고 가로는 얇은 철판도 있습니다. 이런 내장들이 차 바퀴만 땅에 닿을 수 있도록 같은 높이로 짜임새 있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소백산을 너머 샘골을 지날 때부터 고도를 낮추어 장정을 지날 때는 이런 비행기 내장이 다 보일 때가 있습니다. 유난히 낮게 떠서 굉음을 내며 날아가는 비행기를 향해 팔을 치켜들어 욕을 하다가도, 돼지 내장을 보는 것도 같고, 비료를 싣고와 뒤집힌 트럭 밑바닥을 보는 것 같이, 비행기 내장을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색갈은 모두 회색같은 은색인데, 비행기의 긴 모습을 따라 굵은 관과 가는 관이 어우러지고, 짧은 통과 긴 통이 짜임새 있게 빼곡히 박인, 화려한 날개 밑의 치부를 보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 문득 땅을 박차고 올라가 비행기 바퀴를 붙들고 매달려 날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비행장까지 붙들고 날아가 조종사에게, '왜 이리 낮게 날아서 사람을 놀래키느냐?'고 한 판 따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보는 소년조선 신문에는 아톰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신문에 그림으로 나오는 아톰은 한 팔을 치켜들고 멋지게 하늘을 날았습니다. 그런데 아톰은 발이 유난히 두꺼웠습니다. 동그란 신발을 신었는데, 발의 두께도 발의 넓이만큼 높았습니다. 발이 두꺼워서 저렇게 날아갈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내 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도 아톰처럼 날아 오를 수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해가 동네 뒷산 도솔봉 쪽에서 떠서, 남조의 좁은 하늘을 지나, 신구 뒷산으로 질 때, 장정에서 남천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는 그림자를 보면서 올라가게 됩니다. 기울어지는 해가 내 발의 그림자를 꼭 아톰의 발을 닮게 만듭니다. 발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릅니다. 그 발로 아톰처럼 땅을 박차고 뛰어 올라 낮게 떠서 내장을 다 보이며 지나가는 비행기의 밑바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잡아서 제발 비행기가 낮게 날지 말고 높이 날아서, 무지랭이로 살아가는 약한 백성들 좀 죽게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자 발은 두꺼웠지만 오르막을 오르는 다리는 길게 가늘기만 했습니다.


  그 후 막내로 여동생 미란이가 태어나서 4남매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그 후 한 번도 효구에 대하여 언급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비행기만 지나가면 효구 생각이 납니다. 부모님도 가슴 한 켠에 효구를 늘 아프게 기억은 하고 계실 것입니다. 나처럼 비행기만 날아가면 효구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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