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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전기의 발자국이 보인다.




전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50층 건물에 사람 10명이 탄 엘리베이터를 거뜬히 들어 올린다. 대성에만도 사람이 깰 것 같으면 오함마로 내려 처도 하루 종일 걸릴 돌도 모터를 돌려 금새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가 주로 다루는 22,900V로 못 할 것이 없는 전기가 문제인 것은,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강력한 것이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고 있으니 한편으로는 참 편리하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 세상은 어디나 양면이 있기 마련이다. 기회라는 놈만 앞면만 있고, 뒷면은 없다고 하던가?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전기를 오감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 냈다.


  활선테스터기는 아주 편리하고 쉽게 사용하는 기구다. 전기에서 나오는 파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기구다. 한 선에만 전기가 흘러도 신호를 준다. 볼펜처럼 주머니에 꼽고 다니기도 하고, 손목에 차고 다니면서 손을 뻗으면 소리도 나고 불빛이 나기도 한다. 헬멧에 착용해서 머리가 무의식중에 고압에 닿으면 소리가 나기도 하고, 긴 막대기에 달아서 고압에 정전기가 남아 있는지 측정하기도 한다. 


  공사팀에서는 공사를 마친 콘센트에 전기가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콘센트검전기가 있다. 콘센트에 전기기기를 일일이 꼽아 보지 않아도 검전기를 꼽아 보면 콘센트가 살아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드라이버식으로 된 접촉식검전기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이것은 콘센트에 중성선과 핫선을 구별하는데 주로 쓴다. 중성선에 접촉을 하면 드라이버 손잡이에 불이 들어오지 않지만, 핫선에 대면 불이 들어와, 두 선을 구별해서 배선을 할 수 있다. 


  이 외에서 보이지 않는 전기를 보이게 하거나 들리게 하려는 시도가 많다. 그 중 우리가 전기 안전관리에서 주로 사용하는 도구는 열화상카메라다. 직무고시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도구다. 직무고시가 아니더라도 안전관리에 필요한 도구다. 


  내가 열화상 카메라를 들고 나간 첫날이다. 오후에 명화태양광에 들렀다. 9월이라지만 열대야는 40일 넘게 계속 되고 있다고 했다. 한낮에는 태양볕이 뜨거워 처서를 넘어 백로가 지나 배추 모종을 했는데, 다 녹아버렸다고 할 때였다. 뜨거운 날이 계속될수록 태양광발전은 호황인 셈이다. 날이 엄청 덥다. 뜨겁다. 


  대은 태양광에 갔을 때다. 두 노인네 내외가 텃밭에서 고구마를 캐고 있었다. 

  “씨알이 얼마나 들었는가 보려고 한 뿌리 캐 봤어요.”

  “와, 고구마가 굉장히 예쁘게 들었네요.”

여주 고구마는 빨간 색깔에 알맞게 굵고 길쭉하기로 유명하다. 거기다가 아직 싱싱하게 푸를 고구마 잎이 달린 줄기도 버리지 않고 걷어 왔다. 휠체어에 앉은 부인이 묻는다. 

  “발전은 잘 되고 있는 거예요?” 

  “예, 잘 되고 있어요. 남들은 날이 뜨거워 죽겠다는데, 태양광은 그 덕분에 올 여름에 큰 흑자가 났어요.”

  “하하하. 그래요?”

  “태양광에서 벌어서 날씨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갚지요?”

이 한마디에 셋이서 마주 보며 크게 웃었다. 


  다시 명화태양광 이야기다. 햇볕을 받고 있는 태양광 판넬을 지나면서 열화상 카메라를 연신 눌러 댔다. 판넬 표면 온도가 50˚에 이른다. 판넬 고랑을 지나 끝에까지 이르자 고구마를 심은 밭이 있다. 밭가에 내 키보다 더 큰 식물 대궁이 나무처럼 서 있다. 꽃송이 몇 개가 내 얼굴보다 크다. 넙덕넙덕한 노란 꽃잎이 깃발처럼 휘날린다. 훨훨 바람에 휘날린다. 이런 꽃을 매단 나무 대여섯 그루가 듬성듬성 서 있다. 어떤 대궁에는 하나가, 그 옆의 대궁에는 둘이, 건너편에 세 그루 대궁에는 아직 안 핀 것과 어린 송이가 어우러져 있다. 얼굴보다 더 큰 꽃은 꽃잎이 여섯 개가 사방으로 뻗어서 가운데 수술을 둘러싸고, 지나가는 나를 너울대고 불렀다. 


  여름 꽃이라도 다른 꽃들은 보이지 않는데, 이 꽃만 활짝 피었다. 하늘에서 내리 쬐는 햇볕이 이 노란 꽃잎에는 자양분을 주는 모양이다. 날이 뜨거운데도 더 화려하다. 태양광 발전소가 뜨거운 태양에 덕 보듯이, 추석이 다가오는데도 한창인 뜨거운 날씨에 덕 보는 것이 여기에 또 있는 모양이다. 뜨거운데 활짝 피었다. 그 큰 꽃송이가 무거워 고개를 들지는 못하는지, 높이 달려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고 있다. 처음 보는 이 꽃이 무슨 꽃인가 싶어서 열화상 카메라를 놓고,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돌아와 꽃을 검색해 보니 황촉규라는 꽃이었다.  


  날이 뜨거운데 꽃만 찍고 시간을 보낼 수가 없어서 서둘러 점검을 계속했다. 인버터에 들르기 전에 밭 가운데 섰는 접속반에 갔다. 접속반 문을 열고 열화상 카메라를 대고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온도가 엄청 높다. 배선용차단기를 찍으니 128˚C다. 왼쪽으로 돌려 각 태양광 판넬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들어오는 전선은 빨간색으로 절연이 되어 있는데, 이 선들이 검붉게 변했다. 이것도 찍어 보니 82˚C다.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태세다. 접속반 판넬에 물을 부으면 바로 끓을 것 같고, 가랑잎이 불어 닿으면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발전이 잘 되지만, 만일 잘 못 되면 화재가 나기도 하겠다. 역시 자연이란 양면성이 있다. 태양광이 흑자라면 열사병에 죽는 사람도 많고, 태양열이 뜨거워 황촉규가 크게 피더니 김장배추는 녹아버렸다. 여기에 발전이 잘 되더니, 불이 날 위험도 커졌다.   


  큰일 났다 싶어 태양광 사장님에게 사진을 보내고 전화를 했다.

  “사장님, 전기안전관리자입니다. 제가 지금 사진을 몇 장 보냈는데, 확인하셨는지요? 지금 접속반에 온도가 엄청 높아요.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화재가 날 것 같습니다. 아마도 배선용차단기가 불량해서 그런가 봅니다. 접속반 설치업자에게 전화하셔서 교체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얼마나 높아요? 120˚C가 넘어요? 알았어요. 업자에게 전화해서 갈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왜 갑자기 온도가 높이 올라가는지는 모르겠어요. 일단은 차단기라 불량한 것은 맞아요.”

  “예, 아마도 오래 써서 그런가 봐요. 10년은 됐거든요.”

열화상 카메라 덕분에 고온을 신속히 발견하고 조치할 수 있었다. 


  오래 전이다. 이름이 비슷한 옆 동네에 대양태양광에 갔을 때다. 판넬을 열으니 차단기 4개가 시커멓게 탄 것이 보였다. 이때는 열화상 카메라가 없을 때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깜짝 놀랐다.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사진을 찍어서 주인에게 보내서는 즉시 갈게 했었다. 명화태양광에도 그만 옛날처럼 탄 것이 보이지 않는 한 점검기록표에,

  “열화 탄화 여부 점검. 정상”

하고 썼을 것이다. 그러면 불이 붙었을지도 모른다. 접속반이 다 타버렸을 것이다. 열화상 카메라 덕분에 예방 하나 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할 때다. 조부장을 만나서 이러이러하게 120˚C 넘는 것을 열화상 카메라 덕분에 처리했노라고 이야기 했다. 

  “역시 제 덕분에 열화상 카마라를 사기를 잘 했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거 없었으면 발견하지 못 했을 것을 쉽게 발견해서 예방 하나 했어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수용가도 참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이 참에 보고서 만드는 것도 시도해 보세요.”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서로 카메라를 꺼내서 비교해 가면서, 파일도 컴퓨터로 주고받았다. 


  그런데 내 카메라에 전원을 눌러 켜는데 한 번에 켜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다시 길게 누르니까 전원이 그냥 꺼지고 만다. 왠지 불량 같다. 어쩐지 물건을 처음 받을 때, 상표로 붙은 스티커가 2/3쯤 떨어져 있었다. 뭐 그만한 걸로 반품해서 바꿔 달라고 할 수 없어서 그냥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마음이 달라진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애초에 불량품으로 반품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반품하기로 결정했다. 쿠팡의 직원에게는 이유를 세 가지로 달았다.

  “1. 물건을 받을 때부터 상표 스티커가 2/3쯤 뜯어져 있었음.

   2. 전원을 켜니까 한 번에 화상이 나타나지 않고 상표인 ‘OOOMICRO’만 떠서, 다시 누르니까 전원이 꺼짐.

   3. 내가 찍지 않은 화상이 카메라에 내장되어 있었음.“

세 번째 이유는 찍은 화상을 컴퓨터에 옮겨서 보고서를 만들 때 카메라에 남아 있던 영상을 본 것이다. 


  이튿날 조부장에게 반품했노라고, 이유는 세 가지라고, 첫째 둘째 셋째를 읊었다. 듣고 있던 조부장이 세 번째 까지를 듣고는, 

  “잠깐.” 

한다.

  “왜요?”

  “세 번째는 제 카메라에도 담겨 있었어요. 아마도 출시할 때 모든 카메라에 예시로 담아 보낸 것 같아요.”

  “그래요? 이미 반품 했는데? 그건 그럼 아닌 걸로.... 두 개의 사유로도 반품 사유가 충분하니까....”


  웬걸, 반품 한다니까, 제조회사에서는 이유를 꼬치꼬치 묻고 조사를 하는 모양이다. 제조회사에는 세 번째 사유는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예, 구매자님, 스티커가 탈락됐다는 것만으로도 반품 사유는 됩니다. 저희도 포장 전에 사진을 남겨 놓기는 합니다. 포장하는 과정에서 스티커가 슬쳐서 떨어진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물건이 반품 처리 된 것을 다시 보낸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저희는 새것을 보내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물건 중에 지금까지 반품 된 것이 없었거든요. 저희가 물건을 받는 대로 다시 점검해 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다시 전화가 온 것은 이틀 후다. 물건을 받은 모양이다. 

  “고객님, 저희가 다시 켜 봤는데, 이상이 없습니다. 제가 켜 본 동영상을 보내 드릴 테니, 한 번 확인해 주세요.”

  “알았어요. 보내 보세요.”

내가 사무실에서 켜서 바로 화상이 뜨지 않을 때 이전에도 잘 됐었다. 지금도 물론 잘 될 것이다. 나는 단 한번이라도 안 되는 것을 보고는 애시당초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반품을 한 것이고, 지금 직원 손에 들어가서도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 보내 준 동영상을 보니 역시 단번에 잘 되긴 한다. 


  한 참 있다가 다시 전화가 왔다.

  “고객님 확인해 보셨지요? 잘 되지요?”

  “잘 되기는 하네요. 하지만....“

  “네, 알아요. 상표까지 조금 뜯겨 지고, 한번이라도 비정상적인 경우를 보시면 다시 쓰시기 꺼림칙하시겠지요.”

  “그럼요. 저도 깎지도 않고 제 값 다 주고 사서 쓰는 건데....”

  “그래서 제가 제안 하나 드릴게요. 그 카메라를 담아서 메고 다니며 쓸 수 있는, 10만원 상당의 파우치를 하나 보내 드릴게요. 그러면 쓰시겠어요?”

  “파우치요? 그 김건희 여사가 받았다는 그 파우치를 주겠다고요?”

  “하하, 예, 파우치요.”

나는 금방 좋다고 하면 속 보이는 것 같아서 망설였다.   

  “고객님, 생각해 보시고 마음에 있으시면 전화 주세요.”

  “알았어요.”

다시 판매점에서 전화가 온 것은 한 두 시간 후다. 결정했느냐고 묻는다. 못 이기는 척하고 보내라고 했다. 


  일주일 만에 열화상 카메라를 다시 받았다. 어깨에 메는 파우치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점검을 다녔다. 이번에는 새현테크에 갔다. 새현테크는 하루 전에 몇시에 갈 것이라고 알려야 한다. 정한 시간에 가면 홍과장이 나와 있다. H전주에 가서 먼저 수배전 력설비를 점검하고, 계량기에서 최대전력과 역률을 살핀다. 그러면 홍과장은 공장 안에 있는 판넬을 일일이 안내한다. 나는 복잡한 공장을 뒤따라가며 판넬을 연다. 그전 같으면 탄화나 열화를 눈으로만 확인했다. 이번에는 열화상 카메라가 있으니 그보다 쉽다. 문을 열고 전체를 비추면 화면에 온도가 바로 뜬다. 사진을 찍으면 실화상과 열화상이 한꺼번에 찍힌다. 


  보통 차단기와 전기선은 40˚C에서 50˚C 정도다. 한 기계 옆에 있는 판넬을 열고 찍으니까 차단기 하나가 121˚C나 된다. 뒤에서 지켜보던 홍과장을 불렀다.

  “과장님, 여기 좀 보세요. 판넬의 온도를 찍으니까, 120˚C가 넘어요. 이러다가 불붙겠어요. 이거 얼른 교체해야 합니다.”

  “예, 왜 그런데요?”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어요. 첫째 의심해 볼 것은, 여기 연결된 기계가 전기를 많이 쓰는 기계인가요?”

  “아니요. 별로 많이 쓰는 것은 아니에요. 아파트 층간 소음을 방지하는 매트제료 둘을 붙이는데 쓰는 기계에요.”

  “둘째는 이 차단기 자체가 불량입니다. 차단기를 오래 사용하거나, 그리 오래 쓰지 않아도 고장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전류가 잘 통하지 않아서 열이 나요. 그러면 갈아야 해요.”

  “그런가보네요. 오래 쓰기는 했어요. 갈도록 해 볼게요.”


  저녁에 돌아와서는 조부장과 또 열화상 카메라로 열화를 잡은 이야기를 했다. 조부장도 열이 90˚C가 넘는 단자를 발견하고는 들고 다니던 드라이버로 조였단다. 이튿날 오전에는 내가 새현테크 홍과장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차단기를 갈았는지, 갈았다면 지금 온도는 어떠냐고 물었다.

  “예, 갈았습니다. 갈았더니 온도가 그리 높지 않아요. 적외선 측정이로 쟀는데 50˚C 정도 나와요. 부장님, 지나가는 일이 있으면 점검 전이라도 들러서 열화상 카메라로 좀 재어 주세요.”

  “예, 그럴게요. 지나가는 길에 들러 볼게요.”

  “감사합니다. 일찍 발견해 주셔서요.”


  며칠 후에 파우치가 왔다. 이걸 메고 사무실에 갔다. 조부장이 자기 것과 같은 것을 보고는 한마디 한다.

  “부장님에게 반품 된 것을 보낸 것이 맞네. 이렇게 좋은 것을 공짜로 준 걸 보니까.”

  “어? 그래요? 아닌데....”

나는 얼버무렸다.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떼를 썼더니, 상표스티커가 조금 떨어진 것을 다시 보내면서, 달래느라고 파우치를 덤으로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이걸로 안전관리나 잘 하면 된다. 꼬리를 감추고 돌아다니는 전기를 보면 된다. 인간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고, 그냥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기만 하지 않고, 이젠 사용하지 않고 산다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게 된 전기를, 꼬리를 밟아가며 관리를 해야 한다. 공룡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공룡이 존재했다는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기는 그보다는 낫다.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전기를 모두 볼 수는 없지만 열화상카메라로 지나가는 흔적은 조금 볼 수 있다. 


  연 이틀 비가 많이 내리더니, 하루 만에 날씨가 가을이 되었다. 그 길던 여름이 드디어 지나간다. 여름의 발자국이 남았고, 가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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