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임자 김명섭 부장은 전기 점검을 하면 점검기록표 가장 끝에 자기 전화번호를 적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라는 의미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는데, 두세 달 후부터는 적지 않았다. 처음에 인사를 할 때 내 명함을 건네 줬고, 또 대부분의 수용가 연락책임자는 내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저장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굳이 번번이 적지 않아도 내게 전화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연주오피스텔 주인은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사장에게 전화를 한다. 점검을 갈 때마다 내가 전화를 해서, 내 번호가 입력되어 있을 텐데도, 내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자기는 사장하고 놀 급이지 일개 사원하고는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다. 하루는 출근을 하자마자 사장님이 찾았다.
“김부장님, 연주오피스텔에 말입니다.”
“예, 여주 오피스텔에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지하 멘홀에 수중 펌프가 있는데, 물이 다 빠졌는데도 모타가 계속 돌고 있답니다. 이게 전기적 원인인지 모르겠다고 와 달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출발해서 거기부터 들러 볼게요.”
사장님은 받은 문자를 내게 다시 전송해 주었다.
연주오피스텔은 여주대학교 뒷편에 5층짜리 오피스텔이다. 대학생을 상대로 방을 빌려주는 곳이다. 주인은 어디에 법무사사무실을 차려 놓고 일을 하고 있다. 오피스텔 건물 1층에 사는 건물주인 셈이다. 하기야 조물주보다 더 높다는 건물주가 날마다 고물차 하나 얻어 타고 달달거리고 이집 저집 떠돌면서 전기나 만지는 일꾼하고 상대가 되겠나? 사장을 만나 계약을 했으니 사장에게만 전화를 하면 제가 알아서 움직이겠지 하는 생각인 모양이다. 하기야 자기도 사무실에서 그렇게 부리고 있는 사무원이 있으니까, 자기가 말한 것이 바로 법인 줄 알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자동차를 세우기도 전에 문앞으로 나온다.
“안녕하세요? 모타가 이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 따라와 보세요. 물은 없는데 모타가 계속해서 돌아가요. 곧 탈 것 같아요.”
지하로 내려가 모타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고, 모타를 제어하는 판넬의 스위치 위치도 알려 준다. 수중 모터다. 건물 가장 아래에 물이 고이는 멘홀에 설치한 모터다. 모터를 작동하는 부레가 모터 위에 올라앉아서 정지 신호를 보내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 이 부레가 모터 아래로 내려가야 모터가 멈춰요. 이게 올라앉아서 정지신호를 주지 않은 겁니다.”
하면서 물에 뜬 이물질을 건지는 뜰채를 잡고 부레를 떨어트려 주었다. 금방 모터가 멈춘다.
“그래요? 금방 멈추네? 야, 모르니까, 이 간단한 걸 해결 못하네.”
“다음에 또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부레를 떨어트려 주면 됩니다.”
“알았어요. 오늘 또 한 가지 배웠네.”
그로부터 한 달은 지났다. 사장님이 연주오피스텔에서 또 연락이 왔단다.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연주오피스텔 주인의 전화번호를 보내 주면서 가서 만나 보란다. 멀리 양평으로 가서 여러 군데를 돌아와야 하는 일정인데 아침부터 들러 가란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는 무슨 일로 또 연락을 하셨습니까?”
“예, 여기 들어와 보세요. 계단 통로에 비상들이 켜졌습니다. 또 반대로 유도등은 꺼졌어요. 이쪽 통로로는 인터넷도 안 됩니다.”
“아, 그래요? 어디 볼게요.”
우선 판넬 뚜껑을 열었다. 차단기는 그대로 있다. 검전기를 대 보았다. 역시 2차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 어라? 1차에도 안 들어온다. 1차에도 안 들어오니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았는데도 2차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이 층에 다른 판넬은 어디에 있지요? 주 판넬은 여기에 있고, 또 다른 판넬도 있나요?”
주판넬은 건물 중심에 통상 위치한다. 지하 수변전실에서 층마다 올려서 전기를 분배하기 좋은 위치에 둔다. 2층에도, 3층에도, 건물 가장 위층까지 같은 위치에 둔다. 주판넬을 열어보았더니 차단기가 떨어진 곳이 없다. 다른 판넬은 건물주가 생활하는 공간에 쓰는 판넬이다. 거기에도 떨어진 차단기는 없다. 그렇다면 수배전실에서 직접 왔을 것이다. 저압 메인판넬 말이다.
“전기실이요, 전기실을 가 봐야 해요.”
집 주인이 앞장서서 전기실 번호열쇠를 열었다. 저압판넬 문을 열었다. 요즘에 전기공사를 하면 아크릴로 정전기는 막지만 안은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옛날에 시공한 것으로 판넬과 재질과 색깔이 똑같은 철판으로 된, 겨우 차단기 손잡이만 밖으로 나온 판넬 속 뚜껑이 하나 더 닫혀 있다. 틀림없이 메인 판넬에 떨어진 차단기가 있을 텐데, 빨간색으로 된 통전표시에서 녹색으로 된 차단표시가 뜨는 것은 없다.
여기도 떨어진 차단기는 없다. 이상하다. 다른 전기 판넬이 있는가? 틀림없이 2층 이상에서 전기가 1층으로 다시 내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하에 다른 판넬이 있을까?
“여기 말고, 지난번에 모타가 계속 돌아간다고 했을 때의 그 전기실이 어디지요? 거기에도 전기시설이 있는 것 같았는데....”
“아, 거기요. 따라 오세요. 지하에 전기판넬이 있어요.”
거기도 판넬이 하나 있기는 한데, 보일러를 돌리는 전기와 주차장에 필요한 전기를 배전한 곳이다. 이상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소방 전기가 나갔으니 소방을 담당하는 소방관리사에게 전화를 해야할 것 같다. 뭔가 내가 모르는 전기설비가 있을 것 같다.
“관리사님, 소방판넬인데, 인터넷도 여기서 선을 땄는가 봐요. 그런데 소방 판넬의 차단기는 내려가지 않았는데, 1차가 안 들어와요.”
“1차가 안 들어와요? 그러면 저압 메인판넬에서 차단기가 내려간 것이 있는가 보세요.”
“봤어요. 가봤는데, 내려간 차단기는 없었어요.”
“아니예요. 있을 거예요. 잘 찾아보세요.”
“차단기가 떨어졌으면 빨간 표지가 없어지고, 녹색표시가 나타나야 하잖아요. 그런 게 없었어요.”
“아니예요, 지금 나오는 거야 확실하게 보이지만, 옛날에 나온 차단기는 겉으로 봐서는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 구분도 안 될 만큼 미세하게 떨어지는 것도 있어요.”
“그래요? 알았어요. 찾아보고 다시 전화 드릴게요.”
다시 전기실로 갔다. 과연 그렇다. 판넬을 열고 속 뚜껑을 열어보니, 표시는 빨간색이 그대로인데, 5mm정도 틈이 벌어진 차단기 손잡이가 하나 있다. 이걸 녹색이 나타나도록 아래로 힘껏 내렸다가 다시 올려붙였다. 척 붙는다.
“됐어요. 이게예요. 소방판넬에 가 봐요.”
따라다니던 주인이 먼저 나간다.
역시 소방판넬에 가기도 전에 1층 로비에 켜졌던 비상등이 꺼졌다. 출입구 머릿맏에 붙은 유도등에 불이 들어왔다. 검전기를 1차 측에 대 보았다. 전기가 온다. 2차 측에도 대 보았다. 2차측에도 불이 들어온다.
“사장님, 전기가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인터넷이 안 되게 되었어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위층에 세들어 사는 사람이 인터넷이 안 된다고 그러더라고요.”
“여기는 소방판넬이거든요. 소방전기판넬에는 다른 용도로 쓰는 전기는 연결하지 못하게 되어 있어요. 소방에 관련한 전기만 연결해야 해요. 인터넷을 다른 곳에 연결해야 합니다.”
“예, 뒤 늦게 인터넷을 설치하느라고 여기서 뽑은 모양이에요. 기회가 되면 고치도록 할게요. 오늘도 하나 배웠네요. ”
“고치셔야 합니다.”
“알았어요. 소방에 전기가 내려가면 전기실 판넬 가장 아래 차단기를 올리면 되는군요. 그것도 배웠습니다.”
배우다니. 전기를 그렇게 하나하나 배워 나가야 하는가? 어느 세월에 전기를 그렇게 배워야 하는가? 내가 얼른 생각해도 판넬 1차 측에 전기가 오지 않으면, 틀림없이 전기실 저압 주 판넬에서 차단기가 내려갔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갔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 투입인지 차단인지를 알려주는 차단기의 색깔이 틀림없이 빨간색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차단이 됐다고 알아 채겠냐 말이다. 거기다가 판넬 차단기에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은데 말이다.
오피스텔 사장은 전기 말고 다른 것부터 배워야할 것이 하나 있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사장에게 전화를 하지 말고 나한테 직접 전화를 하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 우리 회사의 조직체계는 다른 곳과는 좀 다르다.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근무했던 시설관리에서는 모든 책임이 관리소장에게 있었다. 사무원이 맡은 회계와 전기선임자가 맡는 전기 외에는 모든 것이 소장의 책임이었다. 아마도 법무사 사무실에서도 나갈 서류의 도장을 법무사가 찍으니 모든 책임이 법무사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전관리의 책임은 점검 기록표에 싸인을 하는 내 책임이다. 그 현장에 매달 들르는 것이 나고, 그래서 그 현장을 가장 잘 아는 것이 나고, 앞으로도 계속 관리할 사람이 나다. 그러니 내게 직접 전화를 하시라. 떠돌리라고 사람 무시해서 위에다가 이야기 하지 말고, 말이다.
전기에 대하여 더 배워가야 할 사람은 나다. 시험에 합격은 해서 자격은 갖추었는데, 하나하나 몸으로 배워나가기에는 너무 더디다. 전기시험을 볼 때 책은 여섯 권을 봤다. 회로이론, 제어공학 이런 것 말이다. 2차를 볼 때는 기출문제집을 베게만한 두께의 책을 봤다. 그것도 모두 한번은 다 훑어 봤는데, 이런 차단기 트립에 대한 이야기를 없다. 어려운 문제는 대여섯 번씩 봤다. 그런데 없다. 어느 세월에 각개전투 하듯이 이렇게 트립된 차단기 하나 찾아내는 어려움을 격어야 한단 말인가? 차단기가 투입됐어도 5mm 차이가 나도록 딱 물리지 않은 것은 비일비재하다. 그걸 판별해 내는 것도 옛날 판넬 속에 장착된 옛날 차단기를 한번은 다뤄 봐야 알 수 있다. 순전히 경험에서 쌓아 가야 하는 것이다. 마그넷에 대한 것도 어떻게 점검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를 찾아 봐도 나오지 않는다. 실무에서 다뤄봐야 안다. 변압기 절연저항 측정이나 MOF 고장여부를 측정하는 방법도 실무에서 다뤄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 뭔가 총론이 필요하겠다. 철학을 공부한다면 철학개론 같은 것 말이다. 인문학이라면 인문학개론처럼, 건축을 한다면 건축학개론이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전기학개론이라든지, 전기 총론같은 것 말이다.
한번은 전기를 고등학교, 대학교에서도 전공했다는 조부장에게 물었다.
“아니, 조부장님. 전기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책 한권을 읽어서 파악할 수 있는 개론서는 없습니까? ”
“부장님. 없습니다. 전기는 아직 인간이 정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정복을 해야 앞에서 뒤까지 테두리를 정해서 한 손에 잡도록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전기는 아직도 인간이 다 몰라요. 그래서 개론이나 총론이 없습니다.”
“그래요?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다. 그런데 있다. 있어도 아주 강력하게 있다. 천둥이 한번 칠 때마다 10억 볼트가 흐른단다. 10억 볼트라면 100만개의 전구를 동시에 켤 수 있는 에너지다. 번쩍 하면 10억 볼트가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다. 어디에서 만들어졌다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 도대체 대형 원자력발전소 하나에서 만들 만한 에너지를 허공 그 어디에서 만드는 것일까? 어디에 숨었다가 ‘꽝’ 하고 나타나 ‘있다’고 존재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일까?
지난 주간에는 페럴림픽이 파리에서 열렸다. 우리나라 트라이에슬론 김황태 선수가 참가했다. 11명 중에 10위를 했단다. 처음에는 수영을 하고, 두 번째는 싸이클을 타고, 세 번째는 마라톤을 하는 경주다. 그런데 이 선수 두 팔이 없다. 파리 쎈강을 팔 없이 두 발과 허리로 수영을 해서 거슬러 올라갔단다. 싸이클은 의수를 하고 운전을 해서 달렸단다. 이 선수가 우리나라 최초의 페럴림픽 트라이에슬론 출전 선수란다.
“늘 뒷바라지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장애인 여러분들도 세상에 나오십시오.”
하고 인터뷰를 했다. 이 선수가 24년 전에 전기가설을 하다가 고압전선에 감전되어서 두 팔을 잃었단다.
오늘은 장마가 지났지만 아침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차를 타고 각자 출발하기 전에 조부장이 커피를 마시잔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내가 커피를 두 잔 사가지고 나왔다. ‘나의 자판기’ 조부장이 들려주는 전기 이야기가 고마워서 음료수는 매번 내가 산다.
“부장님, 오늘 비가 오잖아요. 고압 판넬을 열어요, 안 열어요?”
“안 열어요.”
“저압 판넬은 열어요, 안 열어요?”
“저압은 가끔 열어요.”
“‘땡’, 아니에요. 저압도 열지 마세요.”
“저압도 열지 말아요? 저압은 그래도 괜찮지 않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요. 열지 마세요. 보통 고압이 위험하고 저압은 괜찮은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고압은 전압이 높아서 고압이지만, 저압은 전압이 낮은 만큼 전류가 커요. 전력이 뭐예요. 전압 곱하지 전류잖아요. 어차피 곱하면 같은 전력이 나오는 거니까, 전압이 높든 전류가 크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예요. 똑같이 위험해요.”
조부장은 금방 피운 담배를 연이어 꺼내 불을 붙이면서 말한다.
보통 전력(kw)은 전압(V) 곱하기 전류(A)다. 이것이 변압기를 사이에 두고 1차측을 고압이라고 하고, 2차측을 저압이라고 한다. 1차나 변압기나 2차나 같은 선으로 흐르는 전기가 같은 전력으로 흐르고 있다. V₁ X A₁ = P(kw) = V₂ X A₂ 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그런데 V₁는 22,900V고, 변압기를 통과한 V₂는 380V다. 그러면 A₂는 A₁보다 몇 배가 더 크다는 것인가? 60배다. 어마어마하다. 1,000kw의 전기를 쓰는 수용가라면 60,000A의 전기가 흐른다는 말이다.
그럼 1암페어는 얼마나 될까? 가늠해 보자. 지금 우리 집에 쓰는 전기 분전반에는 30mA짜리 누전차단기다. 30mA라면 0.03A라는 말이다. 집에서 전기를 잘 못 건드려 0.03A의 전기에 감전이 되어도 깜짝 놀라는데, 변압기에서 막 나온 2차측에 200만 배의 전류는 상상이나 될까? 지금 조부장은 이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전기는 물과는 상극이잖아요. 그런데 본래 순수한 물은 절연체예요. 그런데 물 속에 불순물이 들어가 있어서 도체가 되는 것입니다. 빗물은 불순물이 많이 함유되어서 강력한 도체입니다. 비가 올 때는 판넬 앞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습기가 가득 차 있어요. 판넬을 여는 순간 이 물을 타고 전기가 흘러요. 사고가 나는 겁니다.”
“그렇구나. 저압도 열지 말아야 겠구나.”
“며칠 전에 전기총론을 물어 보셨지요? 전기 총론, 개론을 제가 말씀 드릴게요. 이것 배우고 저것 배우고, 이런 걸 경험하고 저런 걸 경험하고, 다 합해서 한 말씀으로 드릴게요. 전기는 될 수 있는 대로 만지지 마세요. 이게 총론입니다. 이게 개론입니다. 이것이 전기의 결론입니다. 부장님.”
“만지지 말라고? 그럼 전기는 누가 다뤄요?”
“전 어디에서도 전기 이야기 안 해요. 더군다나 부장님을 만나서 고압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고압 이야기는 더더군다나 안 해요. 전기 자랑하는 사람은 바보예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전기는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말로라도 피하는 거예요. 부장님에게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은 부장님도 조심하시라는 거예요.”
조부장은 담배를 뻑뻑 빨아서 세게 내 품으면서 말을 이어간다.
“여기에 다른 부장님이나 과장님들이 물어봐도 이야기 자세히 안 해 주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안 가르쳐주려고 일부러 괴롭히는 거 아니에요. 고압을 이야기 했다가 사고가 나면 그 사고에 공범이 될까봐 그래요. ‘과장님이 이야기 한 대로 했는데 사고가 났다’고 하면, 물론 법적인 책임은 없겠지만, 도의적으로, ‘내 말 듣고 했다가 사고 났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죄인이 되잖아요. 위험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난 왜 부장님에게 자꾸 이야기 하느냐고요? 부장님 사고날까봐, 겁 좀 먹으라고 하는 소리예요.
“부장님, 지금 비 오지요? 오늘 나가서 판넬 열지 마세요. 비오는 날은 전기는 무조건 쉬는 날이에요. 비오면 노가다만 쉬는 날이 아니에요. 전기도 공치는 날이에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사장님이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내가 하고 있어요, 건방지게....”
조부장은 다 피운 담배를 손가락으로 튀겨 끄면서 말을 마친다.
그래 맞다. 전기는 위험하니까 될 수 있으면 만지지 않는 것이 총론이다. 진리다. 사실 현대 사회에 전기만큼 쓸모 있는 것이 무엇인가? 미래 사회도 전기를 대체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전기를 만들어 내는 원료의 변화는 있어도 전기 자체를 대체할 에너지는 없다. 화석연료를 벗어나서 원자력으로 전기를 생산한다고 해도, 원자력도 청정에너지는 아니어서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대체한다고 해도, 결국은 전기라는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유용한 전기의 뒷모습은 이만큼 위험하고 치명적이다. 김황태 선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 값이다. 아직 정복하지 못한 전기 앞에서 겸손하자. 두려워하자.
내리는 비는 소곤소곤 살풋하지만, 그 속을 강력하게 타고 흐르는 전기를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