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에 가려면 걱정이 먼저 된다. 역률 때문이다.
“오늘 가면 또 역률을 개선하라고 어떻게 볶아칠까?”
전에는 부장만 볶아치고, 그 아래 직원들은 내 말을 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영호 부장이 내 대신 한 달을 다니고 나서는 달라졌다. 모든 직원들이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볶아치려고만 한다.
대성 사무실에 가면 내가 만나는 사람이 셋이다. 사무실에 가장 위에 부장과 부장 옆자리의 여직원과 팀장이라는 채경률씨다. 처음에는 부장만 막무가내였다.
“그런 건 모르고요, 역률을 잡으세요, 역률을....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들어도 몰라요.”
내 설명을 들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꿩 잡는 게 매라고, 부장은 역률만 개선하라고 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여직원도 내가 들어서자마자 책상 너머로 불평을 한다. 나한테 역률에 대한 설명을 한차례 들은 사람이다.
“어제 새벽에는 2~3시 사이에 진상역률이 30% 밖에 안돼요. 이게 어찌된 일이예요. 역률이 전혀 잡히지 않아요.”
“아니, 제 설명을 들어 보세요. 어떻게 되는 건지 알아야 이해가 갈 거 아닙니까?”
“들어 볼 것도 없어요. 당장 역률이 안 나오잖아요. 우리는 들어도 몰라요.”
야, 이건 바위를 실어다가 쇄석으로 만들어 쌓아 놓은 저 사무실 밖에 돌더미에다가 이야기 하는 것이 났겠다.
하는 수 없이 점검기록표에 사인을 하는 팀장에게 설명을 해 주는 수밖에 없다.
“메모지 가지고 와 보세요. 내가 다시 설명해 드릴게.
“이게 직각삼각형이에요. 빗면, 여기가 피상전력이에요. 밑변이 유효전력이에요. 역률이라는 것은 유효전력을 피상전력으로 나눈 값에 100을 곱해서 퍼센트로 계산한 것입니다. 역률이 좋다는 것은 직각삼각형의 높이가 낮다는 것입니다. 높이가 무효전력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지상역률이란 높이가 위로 올라간 값이에요. 이걸 내려야, 그래서 높이가 0이 되면 100%의 역률이 되는 것입니다. 지상역률의 높이를 낮추려고 콘덴서를 달아서 높이를 끌어 내리는 거예요. 내리는데, 0 아래, (–)이하로 내리는 작업이 콘덴서가 하는 일이에요.
“낮에는 작업을 할 때 지상역률이 난 걸, 밤에 기계가 돌아가지 않을 때 콘덴서가 돌아가서 (–)로 진상역률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밤에 진상역률이 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래서 그나마 현재 역률이 80%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당연한 걸 이상하다고 하니, 답답하지요.”
그제서야 채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번에는 달리 설명을 했었다.
“여기 싸인파가 있어요. 영점을 지나는 파동요. 전압과 전류의 파동이 같이 흐르면 두 파동의 곱인 전력이 이상적인 형태로 최상치가 나오는 겁니다. 역률 100%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전류의 파동이 전동기에서 사용하는 코일을 지나면서 늦어져요. 전류의 파동이 늦어지면 두 파동의 곱인 전력이 최대치가 나오지 않겠지요. 그래서 역률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콘덴서는 전류의 파동을 앞당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코일을 지나면서 늦어진 파동을 앞당겨서 전압의 파동과 같게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역률이 좋게 만드는 것이지요.”
“아, 그래서 콘덴서를 다는 거구나.”
이번에는 진상역률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설명을 해 주었다. 사무실에 사무원이 냉장고에서 시원한 과일 주스 한잔을 책상에 조심스레 놓는다.
“그래도 역률이 좋아지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지요?”
“봐요. 지금 역률자동제어기 사진을 보내 드렸지요? 여기에 Alarm이 떠요, Alarm에 A1, A2가 들어와 있잖아요. 이 제어기 설치 업체에 전화를 해서 이 Alarm을 해소하라고 그러세요. 무슨 사유가 있으니까, 알림이 뜰 것 아니에요. 또 지난번에 콘덴서가 다섯 개가 돌아가고 한 개가 돌아가지 않았어요. 마그넷이 고장이 나서요. 그런데도 콘덴서 기동상태를 알려주는 표시등은 다 들어 왔어요. 이것도 비정상이잖아요. 회사에서 제어기를 달아 놓고, 제대로 가동을 못하는데, 그래서 역률제어를 잘 못하고 있는데, 날 보고 역률을 잡으라니 말이 됩니까?”
“그럼 어떻게 해요. 사무실에서는 역률이 나쁘다고 야단인데....”
시원한 주스를 마셔도 답답한 마음에 달아 오른 열이 식지 않는다.
“여기서 저 기계를 달았잖아요. 그러니 여기서 기계를 단 사람에게 연락하세요. 저 기계를 정상 작동하도록 해 놓고 보자고요.
“그리고, 저기 부장님이 내가 지난번에 왔을 때는 역률이 80%만 되어도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지금 80%가 되잖아요. 점점 개선되고 있고, 그 80%대에 들어섰는데, 왜 이렇게 역률 타령을 해요.”
“그러게 말이에요. 전기만 보면 역률이 나쁘다고 추가요금을 물고 있다고 야단이에요.”
그 날은 언성이 좀 높았다. 내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도대체 설명을 하려해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뭘 덮어씌우려는 듯이 덤볐기 때문이다.
대성의 돌 깨는 공장은 두 구역이다. 두 구역 다 산을 깎아 먹거나 현지에서 재료를 조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 실어 와서 쇄석을 만들고, 다른 컨베이어밸트에서는 모래가 떨어진다. 내가 담당하는 곳 말고 다른 곳은 규모가 더 크다. 거기도 가 봤다. 거기 전기실은 깨끗하다. 콘크리트 건물로 전기실을 최근에 지었다. 문만 닫으면 먼지도 들어가지 않고, 안에서는 에어컨이 돌아가고, 규모가 크니까 전기안전관리자가 상주한다.
내가 담당하는 전기실은 한마디로 엉망이다. 위층으로는 사무실 겸 감시실이 있는 1층이다. 이 건물은 철골로 빼대만 세우고, 철판으로 주변만 둘러놓았다. 샌드위치판넬도 아니다. 홑 철판이다. 돌을 부수면서 나는 먼지란 먼지는 다 들어오고, 한여름 바깥의 온도에 변압기에서 나는 열기가 합해져 한증막이다. 안에서 나는 열기를 밖으로 뿜어내는 선풍기가 한 대 돌아간다. 밖에서 들어 온 먼지는 건물 안에서 가라앉고, 뜨거운 바람만 나가라고 했는지, 건물 안은 싸래기 눈이라도 온 것처럼 먼지가 소복소복 쌓여 있다.
건물 안은 큐비클(Cubicle)이 세 개가 있다. 하나는 변압기가 들어 있다. 비스듬히 기울어 있는 문을 열면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변압기는 문에서 30cm도 떨어져 있지 않다. 바로 앞이다. 변압기 큐비클 왼쪽에는 저압 메인판넬이 있다. 이것도 불도 들어오지 않는다. 후레쉬를 비춰보면 두꺼운 부스바 네 개가 무지개 폭포처럼 늘어져 있다. 흑 적 청 백. 이것도 문을 닫을 때 문짝에 닿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뒤로 돌아서면 판넬이 또 하나 있는데, 여기에 콘덴서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가 문제다. 올 때마다 여기 때문에 서로 신경을 곤두세운다.
콘덴서는 본래 전동기와 병렬로 연결해야 한다. 그러니까 전동기 하나에 콘덴서 하나를 병렬로 달아서, 전동기에서 발생하는 만큼의 지상역률을 콘덴서가 진상으로 돌아서 역률을 개선해야 한다. 금성에는 그렇게 하고 있다. 금성은 수직블럭을 만드는 공장인데, 전동기에서 쓰는 분전반 옆에 콘덴서 판넬도 하나씩 붙어서 역률을 잡고 있다. 그래도 모자라는 역률은 저압 메인판넬에 콘덴서를 하나 더 놓아서 잡고 있다. 여기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규모가 큰 1공장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여기만 콘덴서를 한군데 모아서 설치했다.
콘덴서는 모두 6개다. 아마도 바위를 실어다가 전동기에 넣고 깨어서 쇄석을 만들어 컨베이어 밸트로 분리를 하는 모양인데, 얼마나 큰 전동기를 달고, 바위를 으깨는 전동기에서 먹는 전기가 얼마나 큰데, 순간적으로 필요한 전력을 내는 전동기가 돌면서 발생하는 널 뛰 듯하는 역률을, 어떻게 잡는다는 말인가? 거기다가 판넬 문짝에 자동역률제어기를 달았다. 이것도 알람(Alarm)이 두 개나 뜬다. 콘덴서가 하나 마그넷이 고장이 나서 돌아가지 않는 데도 작동 표시등에는 전원이 다 들어온다. 이런 지경인데, 날 보고 역률을 잡으란다.
한 달에 두 번을 가는데, 갈 때마다 콘덴서를 점검한다. 여기는 콘덴서 점검이 주요 점검이다. 콘덴서 하나에 연결된 선이 모두 네 선이다. 이 중에 세 선에 전류를 먼저 측정한다. 그래도 콘덴서가 모두 6개이까 24개의 선을 후크메타로 전류를 측정한다. 전압도 일일이 잰다. 이것도 스물 네 번이다. 판넬을 활짝 열 수도 없이 복잡한데다가, 문을 열어도 불이 들어오는 곳도 없다. 헬멧에 장착한 후레쉬를 비춰가면서, 허벅지로 닫히려는 문짝을 밀치면서, 먼지는 켜켜이 쌓인데다가, 기기들에서 나오는 열기가 선풍기 바람에 빨려 나가지도 않고, 머리 위에서는 바위 부수는 소리가 터널 뚫는 소리같이 들린다. 거기다가 손 한번 까딱 잘 못 짚으면 끝이 아닌가? 바깥 한여름 눅눅한 더위가 다시 들어와 땀과 먼지와 긴장과 쾅쾅 소리를 섞어서 지옥을 연출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표현한 지옥의 한 장면이 여기 같다.
지옥에서 살아나온 이튿날이다. 내가 또 물어 볼 사람은 조부장이다.
“오늘은 또 물어 볼 것이 없습니까?”
라고 출발하기 전에 으레 하는 말에 내가 서둘러 나섰다.
“자, 커피 먹으러 갑시다. 내가 또 살게요.”
“어? 물어 보실 말씀이 있는 것 같네요.”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서 야외 밴치에 앉았다. 대성이야기를 꺼냈다. 조부장이 간단하게 진단을 한다.
“대성 말이에요. 역률자동제어기를 달았는데, 이게 정상적으로 작동을 안 해요. 그럼에도 날 보고 역률을 잡으라고, 갈 때마다 닦달을 하는데, 어쩌면 좋지요?”
“부장님, 지난번에도 이야기 했었지요? 대성 이야기....”
“맞아요. 이야기 했어요.”
“부장님, 그런데 문제는 자동역률제어기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대성에서 역률이 나쁘니까, 그걸 제대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희생양을 찾고 있어요. ”
“희생양을 찾아요? 어디에 제사를 드립니까?”
“회사에서 가장 약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입니다.”
“그럼, 내가 거기에 드나드는 사람 중에 가장 약자라는 말입니까?”
“그럼요. 아무리 억지를 써도 부장님은 화를 낼 수가 없지 않습니까? 잘못했다가는 사장에게 전화해서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부장님은 벌벌 떨지 않습니까? 조직이고 사람이고 약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 가장 비열한 짓이잖아요.”
“안 그래요. 난....”
“아닌데, 뭘. 부장님은 수용가 끊어진다고 하면 다 들어 줄 것 같아요.”
“안 들어 주면 어쩔 건데....”
“원하는 대로 다 안 해 줘도 돼요. 부장님은 그래서 저와 이야기를 많이 하셔야 해요. 앞으로 커피 많이 사세요. 내가 다 가르쳐 드릴게요.”
조부장은 ‘커피’라는 자기 말에 앞에 있는 커피를 치켜들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시간은 벌써 8시 40분을 지나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방향을 모르고 일찍 출발하는 것보다, 늦어도 방향을 알고 바르게 출발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앉았다.
“우선, 전기안전관리자의 책임 한계입니다. 기계 설치나 장비의 종류를 따지지 마세요. 안전관리자는 그것이 안전한지 아닌지만 따지면 됩니다. 대성의 자동역률제어기는 부장님이 상관하지 마세요. 단지 콘덴서가 전압이 얼만지, 전류는 잘 흐르는지, 마그넷은 잘 작동하는지만 알려주면 됩니다.
“역률을 잡으라고요? 아니에요. 부장님은 ‘역률이 나쁘다, 그러니 개선할 필요가 있다’를 알려 주기만 하면 됩니다. 누가 부장님 보고 역률을 개선하라고 합니까? 부장님은 역률을 개선할 의무가 없어요.
“어허. 이거. 내가 들어서자마자, ‘새벽 세시에 진상역률이 30%대라’고, ‘이걸 잡으라’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하세요. 부장님, 말이 안 통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성질내면 안 됩니다. 그런 말은 개나 주워 먹으라고 하세요. 부장님은 단지,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입니다.’하고 마세요. 맘에 안 들면 사장에게 전화 하겠지요. 사장에게 전화해서 부장님에 대하여 불평을 해도 그걸 두려워하지 마세요. 부장님이 할 일만 하시면 됩니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 이런 상황을 전기점검기록표에 쓰세요.”
“우리가 기록하고 싸인을 받는 거에다가...?”
“예, 이게 법적인 문서입니다. 사문서나 공문서 보다 더 강력한 법적인 문서입니다. 이게 보통 문서가 아니에요. 만일 불이 나잖아요? 이걸 2년 치를 가지고 오라고 해요. 여기에 기록된 대로 사법기관에서 판단해요. 문구 하나 들어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법적 처벌을 달리하게 되요.
“여기 콘센트에 문어발식 사용을 지적하고 그 기록이 쓰여 있으면, 안전관리자는 책임이 없어요. 지난번 같은 두리축산에 돼지 농장에 전등선을 설치하는데, 부장님이 ‘전기업자에게 맡기세요’하고 안내한 기록이 있으면 무죄지만, ‘직원이 공사해도 됩니다’했으면 부장님 책임이에요. 만일 불이 나서 5억의 손해를 입었다고 하면 부장님이 여기에 책임이 있는 겁니다. 형사책임. 우리가 기록하는 것이 공문서보다 더 강력한 법적인 문서예요.
“지적한 것을 자세히 기록하세요. 전압이나 전류를 제는 것보다 안전한지를 먼저 보세요. 우리는 검침하는 한전직원이 아니에요. 그거 안 적어도 돼요.”
강의도 일대일 강의다. 재미있고, 실질적이고, 유익하다. 이런 강의를 어디에서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오, 그래요. 알겠어요.”
“두 번째에요. 우리가 하는 일은 공직자의 일이에요. 우리는 준공무원이에요. 다 법령으로 움직이잖아요. ‘전기안전관리법’같은 거요. 본래는 이걸 한전이 다 했어요. 전기 시설이 늘어나고 안전이 더 중요해지니까 전기안전공사를 만들었어요. 이것도 공사잖아요. 이제는 전기안전공사의 업무도 많아졌어요. 다 소화를 못 하는 거예요. 전기안전시행규칙을 만들어서 안전관리 대행을 하도록 해서 우리 같은 사람에게 일을 시켰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법령에 나와 있는 겁니다.
“우리가 하는 직무고시 말이에요. 안전공사가 똑같이 하는 일이에요. 이 도시에 전시시설 보세요. 건물마다 전기 시설이 다 있잖아요. 이걸 안전공사가 다 점검하고 직무고시를 할 수 없으니까, 우리 보고 같이 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러니까 한전의 업무예요. 공직이에요. 그러니까 떠돌이 점검자라고 하지 말고, 중차대한 임무를 맡았다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그리고 우리가 가진 자격증이 어디 쉬운 자격증입니까? 시험이 엄청 어렵잖아요. 그걸 합격한 사람들이에요.
“나는 수용가에 가면 가장 좋은 자리에 주차를 해요. 요즘 엄청 덥잖아요. 나는 그늘나무 아래를 찾아서 주차해요. 회사에도 가장 좋은 자리를 찾아요. 그리고 점검할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데에다가 주차해요. 왜냐구요?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사람이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이듯이, 회사를 운영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에요. 웬만한 공장에 가면 가장 두드러진 장소에 ‘안 전 제 일’이라고 큼직하게 붙여 놓았어요. 우리는 공장이 안전한지를 점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데, 공장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 구석에 받쳐놓고 걸어서 들어가요? 가장 가운데로, 가장 중앙에, 가장 가까운 데로 가서, 확실하게 점검을 해야 합니다.”
“와, 그래요? 떠돌이가 왔다고 눈치 안 봐요? 지적질이나 하고 한 달에 점검비나 뜯어가는 양아치라고 안 봐요? 내가 한번은 강남주유소에 갔더니, ‘소켓이 고장 났는데 고쳐 줘요, 안 고쳐 줘요?’하고 묻더라고요. 안 고쳐 준다면 당장에라도 재계약을 안 하겠다고 나올 것 같았어요. 우리를 삥이나 뜯어가는 똥파리 취급 하는 사람도 있어요.”
“부장님, 부장님, 왜 이러십니까? 우리는 귀신을 다루는 사람들이에요.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형체도 없지만, 확실히 있는, 무형의 존재를 다루는 사람들요. 그러니까 제발 휘둘리지 마세요. 사장님에게 전화가 간다고 쳐요. 당당하게 이야기를 해도 돼요. ‘역률을 나보고 잡아 달라고 한다. 나 이런 사람들에게 점검 못해 주겠다’ 그러세요.”
“나 때문에 떨어지면, 회사에 손해가 나는데, 그래도 괜잖아요?”
“여주에도 건물이 몇 개나 돼요. 그 중에 우리가 관리하는 건물이 또 몇 개예요. 엄청 많은 업체가 난립해 있고, 수용가들은 또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세 번째요. 저는 수용가를 다니면서 담당자들을 안전교육을 해요. ‘콘센트에 너무 많이 꼽으면 안 된다’. ‘콘센트를 몇 개를 연결해서 릴레이식으로 가면 한번 꼽을 때마다 0.8로 전압이 줄어듭니다’. ‘분전반 뚜껑을 닫지 않으면 먼지가 끼여 화재의 위험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점검기록표에 안전교육을 했다고 써요. 그러면 두 배의 효과가 있습니다. 직원안전교육도 안전관리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안전교육을 하면 직원들이 살면서 안전하게 사용할 거 아닙니까?”
“안전교육을 하면 직원들이 듣고 있어요?”
“뭐, 칠판 놓고, 교단에 올라서, 강의하듯이 하는 게 아니고, 점검한 사실에 대하여 지적을 하면서 안전하게 사용하라고 안내하는 거지요. 전기에 대하여 궁금한 것도 대답해 주고요. 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안전교육인 거지요. 여기 점검표에 있잖아요. 여기에 그냥 싸인만 하라고 들여 미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설명을 해 주면 그것이 안전교육인 셈이지요. 그러면 싸인하는 책임감도 느끼고요.”
“나도 점검기록표를 전해 주면, 그냥 파일에 철하는 것으로 끝인 사람도 있고, 한번쯤 내려다보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어떤 사람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사인을 해 주면 내가 파일을 찾아 꿰어까지 줘요. 그런 사람은 관심도 없다는 얘기지요. 내가 적은 것이 뭔지도 알려 주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그럼요. 며칠 전에도 말씀드렸지요. 이건 법적인 문서예요. 싸인을 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민사는 물론 형사적인 책임도 있어요. 전기공사업을 신고하지 않은 사람이 전기공사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요. 전기안전관리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조부장은 자주 만나잖다.
“김부장님의 생각을 바꾸셔야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이 단순히 직장생활해서 돈 버는 일이 아니에요. 국민들이 전기 사용을 안전하게 하는 일이에요. 전기로 인한 화재를 없애서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에요.”
그렇다. 먼저 이 말을 들은 후로 나는 우선 차를 수용가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댔다. 길 가에 대 놓고 걸어 들어가지 않는다. 금성에도 그렇게 대 놓고 콘덴서를 갈았다. 한볕나노의료기에도 본 건물 앞에다 차를 댔다. 코자코연수원에는 건물 가장 가까이 차를 댔다. 결선아파트에서는 건물로 만들어진 그늘에 차를 댔다.
조부장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조끼를 입기 시작했었다.
“조끼를 입는다는 것은 작업할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물론 조끼에는 주머니가 많아서 여러 가지 장비를 몸에 지닐 수가 있어서 좋다. 그래도 나는 한참 동안은 조끼를 입지 않았다. 청바지 주머니에 뺑뺑 둘러가면서 후크메타 꼽고, 검전기 꼽고, 후레쉬 꼽고, 핸드폰에 열쇠까지 두겹세겹으로 꼽느라고 힘들었었다. 그래도 조끼를 입기가 석연찮아서 입지 않았었다. 조부장의 이 말을 듣고는 바로 조끼를 입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긍지를 가져야겠다.
“우리는 역률을 개선하지 못하는데 대한 희생양이 아니에요. 수용가들이 안전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을 집행하는 최전선의 용사들이에요. 위로는 아직 인간이 점령하지 못한 전기에 대한 활용을 안전하게 해야 하고, 아래로는 전기사용자들이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계도를 잘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법이 정해 놓은 거예요.”
조부장과 헤어져 각자 차를 타고 출발할 때는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자부심이 생겼다. 운전대를 잡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우리는 희생양일 수 없다. 이 땅을 더 안전하게 만들어야 할 뿐이다. 잠시 비 그친 여주의 하늘이 막힘없이 넓게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