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p.180~192
『손자병법』, 글항아리, 손자 지음, 김원중 옮김
세상은 점점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요즘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와 인공지능으로 인해 나타날 변화들에 대한 다양한 전망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놀랍다. 때로는 너무 빨라서 당혹스럽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와 사람들이 더 빠른 결과, 더 빠른 성장, 더 빠른 성취를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가 옛날에는 성장에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이 유일하게 후진국에서 선진국이 된 유일한 사례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빨리빨리’ 문화로 인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외형은 선진적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구시대적 발상, 편법, 부정부패, 비리, 부조리와 모순, 구습과 악·폐습 등이 잔존하고 있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부지불식간에 지체되거나 잘못된 인식을 답습하고 있거나 심지어는 당당하게 그런 인식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최근에 일어난 정치적 사태도 이러한 공허한 성장의 대가 중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장기 저성장 시대와 정치적 격변기를 맞은 상황에서 기존의 행보를 살펴 지체된 부분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 중에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있는지, 우리 스스로가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수백 년 동안 이뤄낸 것을 몇십 년 만에 따라잡았지만, 급속한 성장의 비용을 계속 지불하고 있다. 손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속도만이 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군쟁(軍爭)은 너무 성급하면 아군을 전멸시킬 수 있기에 후방과 적군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고, 이상적인 용병(用兵)은 풍림화산음뢰(風林火山陰雷)의 형태여야 즉, “(기동의) 빠르기가 광풍과 같고, 그 느린 것이 숲 속과 같고, (적을) 공격하고 약탈하는 것이 불과 같고 미동하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알기 어려운 것이 어둠에 있는 것 같고 움직이는 것이 우레와 천둥이 치는 것과 같아야 한다”라고 했다. 참고로 만화 <테니스의 왕자>의 등장인물 사나다가 쓰는 기술의 이름도 이것과 같다. 이름은 풍림화산음뢰(風林火山陰雷). 그는 매우 잘한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자연의 변화와 양태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자연이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하게 움직이듯 군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람들과 사회는 그동안 앞만 보고 돌진하는 황소 같았다. 예전에는 그게 먹혔지만 지금은 한계에 부딪혔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손자는 때로는 느리게 움직이고, 가만히 있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움직일 때는 바람과 같이 민첩하게, 기회를 포착할 때는 불처럼 뜨겁고 우레와 천둥처럼 강하게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건 우리의 주특기이다. 내가 볼 때 우리나라는 쉼과 느림을 보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명확하게 진단하고, 우리 사회의 암적 측면이 무엇인지 예리하게 통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가 거세게 말을 몰아 앞으로 나가야 하는지, 숨을 고르고 전열을 정비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국의 상황은 어떠한지, 그로 인한 우리의 외교의 방향은 어때야 하는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떼’와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합리적으로 판단할 리더가 필요하다. 개인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 모두가 진퇴, 완급, 방향을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다면 개인은 훨씬 더 행복할 것이고 사회는 더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급변하는 세상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유연함과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손자도 “먼 길로 돌아가면서도 곧바로 가는 것처럼 하고, 근심거리를 (오히려) 이로움으로 삼는”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아는 장수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군쟁(軍爭)을 하기 전 제후들의 모략, 지형지물, 지리에 능통한 길잡이를 반드시 활용하라고 했으며, 용병은 “적을 기만함으로써 성립하고 이로움을 보여줌으로써 적을 움직이고 (병력을) 분산하거나 집중시켜 변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 역시 '무대포' 정신이 아닌 전략적 우회, 다양한 변수들의 고려,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계책의 활용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이자, 언젠가 리더가 될 수도 있는, 각자 삶의 주인이자 경영자인 우리들이 충분히 고민해 볼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