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만났어요?
- 사문이 아빠!!!!! 이것 좀 내려놔요.
- 사문이 아빠!!!!! 빨리 와서 이 통을 열어줘요.
- 아, 지금 하고 있는 거 딱 내려놓고 빨리 와서 이거 해 주고 다시 가서 해요, 사문이 아빠아아아!!!!
오빠가 하늘나라로 간 지가 30년이 돼었는데, 아직도 엄마는 아빠를 사문이 아빠라고 부른다. 어릴 때 몇 번 좀 섭섭하다는 생각이 슬쩍 머릿결을 스쳐 지나간 적도 있으나, 내게도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서 그냥 넘어갔다. 지금은, 이렇게나마 오빠의 이름을 들을 수 있어 기쁘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바로 놓지 못해 수 분간 뜸을 들이긴 하지만, 결국 엄마의 요청을 들어주고 나서야 아빠는 다시 아빠의 동굴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떻게 만났어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키위를 먹는 중, 9월이면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수린이가 대뜸 묻는다. 친구들이 모여 남학생에 대한 잡담을 하는 것은 은근히 무시하면서, 어제저녁 함께 만난 창훈대 교회 후배가 “근데, 남편하고 처음에 어떻게 만났어요?” 하고 나에게 묻자, 올 것이 왔다는 듯 나를 보며 활짝 웃었더랬다.
- 고구마 한 가마니 덕분에 할머니를 만났지.
홀 어머니 밑에 4남매의 막내아들이었던 아빠는 공부하는 머리가 꽤 좋았다. 졸업 후 철도 공무원으로 취업이 보장되어 그 당시 4수 5수를 해서 들어갔다던 교통고등학교를 한 번에 들어가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한양대 공대에 합격하여 진학하고자 했으나, 호주였던 큰형이 등록금을 대 주지 않겠다고 하자 해병대를 지원해 복무를 마치고 수원으로 돌아와 광교산에서 양을 키우고 있었다. 양을 키우며 돌아다니던 산자락 옆에, 펑퍼짐한 땅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의 첫 수확이 한가마니나 되었다. 신통방통 신기하고 감사하여 이를 전부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님인 한명수 목사님 사택의 광안에 갖다 놓았다. 이름도 없이 ‘맛있게 드세요’라는 메모와 함께.
목사님은 이 고구마 한 가마니를 누가 갖다 놓았는지 이전 청년부 회지를 만들때 받았던 수기 원고들과 필사대조까지 해서 젊은 홍건유 집사라는 것을 알아냈다. 하루는 목사님이 홍건유 집사를 불러 청년부 단체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 이 사람은 어때?
- 뭐….. 이래서 좀….
- 여기 이 사람은?
- 저래서 좀…..
- 이 사람은 어떤가?
- 어이구, 이런 사람이 저에게 오겠어요?
- 마음이 있다 그건가?
- 너무 과분하죠……..
이렇게 우리 아빠엄마의 변화무쌍 인생역정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체구가 또래보다 한참 작았다. 경찰이었던 외할아버지가 6.25때 전사 하여 스믈 넷의 나이로 과부가 된 외할머니는 우리 엄마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 엄마를 춘양에 있는 친정에 맡기고, 피난 중에 태어났던 어린 삼촌을 키우며 고아원 보육교사 일을 계속했다. 외갓집에 장기체류를 한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얹혀 산다는 미안함으로 연결이 되었는지, 어린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네 밥을 잘 안 먹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엄마의 총명함은 아주 어릴 적부터 돋보였다. 그 시골 춘양에서 추수철이 되면 온 마을이 북적거리고 일꾼이 많아진다. 긴 하루의 노고를 위로하는 ‘위안의 밤’이 열리곤 했는데, 중학생이었던 엄마가 주동하여 외할머니네 이불보를 빨랫줄에 걸어 무대를 만들고, 동네 아이들을 동원해 노래와 춤을 연습시켜 성황리에 공연을 하고, 마을사람들로부터 찬조금을 받아 그 돈으로 학용품을 사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훈훈하게 행사를 마무리했다.
창훈대 교회에서 엄마가 유년부장과 성가대 지휘자를 할 때 아빠는 평교사에 성가대원이었다. 당시 고등기술학교 교사였던 엄마와, 산에서 양키우는 목자의 중매를 아빠는 고구마 한 가마니로 큰 점수를 딴 덕분이라고 설명하는데, 도대체 똑똑한 권옥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양치기 홍건유를 만나 보겠다고 했을까.
엄마가 워낙 언변에 능해서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엄마한테 들어오는 중매상대는 국어선생님이 많았다. 엄마는 마이크를 대지 않는 한, 사석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싫어했고, 국어 선생님들은 말이 많을까 봐 보기도 전에 정이 똑 떨어졌다고 한다.
- 너네 아빠가 말이 없지. 공부는 내가 뒷바라지하면서 시키면 되고.
결혼하고 나서, 아빠는 철도 공무원이 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다. 잘 다니던 철도청에 마흔 중반 갑자기 사표를 내고, 이번엔 목자가 아니고 목사가 되겠다고 총신대학원에 진학하여 목사 안수를 받기까지 그 공부 뒷바라지를 엄마가 했다.
말이 씨가 되는 것인지, 운명을 미리 알고 말하는 것인지, 아빠는 목사가 되어서도 말이 없고, 원로목사로 은퇴한 지금도 공부가 천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