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책을 읽는 동안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Sport is Dangerous”라고 얘기 한 것을 핑계로, 솔직히 내가 좋아하지 않으니 운동을 따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끊임없이 움직인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할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프린트 한 장 뽑을 때마다 일어나서 서류철에 넣고, 잠깐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다, 다시 일어나 움직인다. 이상하게도 이러한 짧고 경쾌한 리듬을 유지해야 몰입이 오래간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어주 어렸을 때부터 왼손으로 칫솔질을 했다. 오른손잡이로서 당연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왼손으로는 젓가락질이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며 왼손의 어눌함을 느꼈을 때, 몸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래서 피아노를 좋아했나? 양손을 균형적으로 쓰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제 내년이면 50이 되는 나는, 악기로 운동을 대체한다. 바이올린 연습을 하다 보면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왼팔이 뻐근해진다. 첼로연습을 하면 활을 수평방향으로 쭉 뻗으면서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오른팔 운동이 된다. 그다음에 양쪽 팔에 힘을 빼고 피아노를 친다. 그럼 다리운동은? 얼마 전 최고의 다리운동을 찾았는데, 바로 파이프 오르간으로 하는 양발의 페달 연습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기는 하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는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갱년기 초기증상인 나는 이제 점점 아침잠이 없어지고, 밤에 잠을 자도 자주 깨고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점점 빠르게 지나가는 하루 시간에서 잠시라도 여유가 생기면, 좋아하는 악기 연습으로 운동까지 한다는 일석 이조의 뿌듯함으로 나만의 행복을 누려 왔는데, 내가 조용히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고 새벽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물론 전자피아노로 연습을 할 수 있지만, 김치맛을 알아 버린 나는 기무치로 만족할 수 없다. 잠이 안 올 때, 또는 새벽 다섯 시에 깨서 할 것을 찾지 못해 몇 달간 K-drama에 정진해 이준호, 박보검 등의 성실한 미남 배우를 흠모하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다른 이가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많이 어설프더라도 내가 무언가를 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서, K-drama를 제작하는 입장이 아닐 바에야 내게 오래갈 수 있는 활동은 아니다.
“엄마 책은 왜 써?” 나의 베프, 수린이가 묻는다.
잠이 없어진, 그래서 만성 피로감에 시달리는 내가 새벽시간에 할 수 있는 ‘뇌’ 운동이라고나 할까? 지극히 계산적이고 효율성 따지는 나 다운 해명이다.
책 쓴다고 떠벌려 놔야, 아이들에게 쪽팔리지 않게 꾸준히 뭔가를 하겠지. 휴일에 혼자 집에 있을 때 한참 푹 빠져 드라마를 보며 허송세월을 보내다가도, 아이들이 들어오는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 아까부터 쭈욱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던 것 마냥 후다닥 피아노를 치다 들킨 적이 몇번 있다.
나는 나의 꾸준함을 못 믿는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꾸준하게 생산적으로 열심히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