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오면 완전 애기가 되네
- 얘들아 일어나 밥 먹어!!!
- 어....? 지금 몇 시인데?
- 벌써 7시야! 아침을 빨리 먹어야 하루가 길어.
한국 아침 7시는 유럽시간으로 밤 12시다. 시차적응이 안되어 맹한 머리를 부둥켜 안고 긴밤 잠을 설치다 이제 좀 지쳐 떨어지는 시간에 다시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 한다. 아.... 즐거워라.
올초에 고관절 수술로 40일 동안 입원했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힘들게 다시 걸음걸이를 배운 77세의 우리 엄마는 갑자기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두 부부가 조용히 살던 아파트에 하루아침에 새끼 네 마리가 들이닥쳐 분주하기 짝이 없다. 새벽 다섯 시부터 부엌에 서성거리며 준비한 음식의 양과 종류를 보아하니, 아침 7시에 시작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매 두 시간마다 밥을 투하하실 태세.
큰딸 혜린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입덧이 심했다. 고기를 버터로 굽고, 빵도 버터에 발라먹는 벨기에 음식은 냄새도 못 맡겠고,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겨우 오렌지 몇 개와 라면으로 연명을 하다시피 했는데, 그걸 먹고도 사이사이 구역질을 세게 할 때는 자주 눈가에 피멍이 들었다. 임신 7개월 때 임신 전 대비 8킬로가 빠지자 인상 좋은 여의사이며 생조세프 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파스칼 그랑쟝 선생님은, 한국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어서 살을 찌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5주 안에 꼭 돌아오라는 중대 미션을 줄 정도였다.
부랴부랴 한국에 (먹으러) 왔을 때 엄마는 나를 베트콩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 먹는다 해서 먹순이라고 불리며, 한 건강미 하던 나였는데, 인천공항 도착장에서 힘없이 빠져나오는 배뽈록에 삐쩍 마른 딸내미의 모습에 한 충격 먹으셨던 모양이다. 그날부로 나는 신생아로 돌아갔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두 시간마다 깨워서 밥을 먹이셨다. 4주 만에 7킬로가 늘어 그나마 볼만한 체구로 벨기에에 귀국했다.
오늘도 아빠는 연실 엄마가 주는 장보기 리스트를 받아 들고 들락날락 식거리를 날아온다.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잠시, 음식이 엄마 손에서 내 눈앞으로 전진하는 순간 새끼 제비가 된 듯 자동으로 입이 열리는 이 조건반응은 뭐지?
컴퓨터를 두들기는 지금도, 엄마는 뭐를 해줘야 딸과 세손주들을 살찌우나를 고민하고 있다. 친정에 한달 있는 동안 우리 다 7킬로가 찌면 막내아들 다린이 빼고는 큰일 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