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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모 Aug 01. 2023

한국에 오면 완전 애기가 되네

한국에 오면 완전 애기가 되네

-    얘들아 일어나 밥 먹어!!!

-    어....? 지금 몇 시인데?

-    벌써 7시야! 아침을 빨리 먹어야 하루가 길어.


한국 아침 7시는 유럽시간으로 밤 12시다. 시차적응이 안되어 맹한 머리를 부둥켜 안고 긴밤 잠을 설치다 이제 좀 지쳐 떨어지는 시간에 다시 일어나서 밥을 먹어야 한다. 아.... 즐거워라.


올초고관절 수술로 40일 동안 입원했고, 재활치료를 받으며 힘들게 다시 걸음걸이를 배운 77세의 우리 엄마는 갑자기 청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두 부부가 조용히 살던 아파트에 하루아침에 새끼 네 마리가 들이닥쳐 분주하기 짝이 없다. 새벽 다섯 시부터 부엌에 서성거리며 준비한 음식의 양과 종류를 보아하니, 아침 7시에 시작해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매 두 시간마다 밥을 투하하실 태세.


큰딸 혜린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입덧이 심했다. 고기를 버터로 굽고, 빵도 버터에 발라먹는 벨기에 음식은 냄새도 못 맡겠고,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겨우 오렌지 몇 개와 라면으로 연명을 하다시피 했는데, 그걸 먹고도 사이사이 구역질을 세게 할 때는 자주 눈가에 피멍이 들었다. 임신 7개월 때 임신 전 대비 8킬로가 빠지자 인상 좋은 여의사이며 생조세프 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파스칼 그랑쟝 선생님은, 한국에 가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어서 살을 찌울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5주 안에 꼭 돌아오라는 중대 미션을 줄 정도였다.


부랴부랴 한국에 (먹으러) 왔을 때 엄마는 나를 베트콩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뭐든지 잘 먹는다 해서 먹순이라고 불리며, 한 건강미 하던 나였는데, 인천공항 도착장에서 힘없이 빠져나오는 배뽈록에 삐쩍 마른 딸내미의 모습에 한 충격 먹으셨던 모양이다. 그날부로 나는 신생아로 돌아갔다. 낮은 물론이고 밤에도 두 시간마다 깨워서 밥을 먹이셨다. 4주 만에 7킬로가 늘어 그나마 볼만한 체구로 벨기에에 귀국했다.


오늘도 아빠는 연실 엄마가 주는 장보기 리스트를 받아 들고 들락날락 식거리를 날아온다. 배불러서 더는 못 먹겠다고 하소연하는 것도 잠시, 음식이 엄마 손에서 내 눈앞으로 전진하는 순간 새끼 제비가 된 듯 자동으로 입이 열리는 이 조건반응은 뭐지?


컴퓨터를 두들기는 지금도, 엄마는 뭐를 해줘야 딸과 세손주들을 살찌우나를 고민하고 있다. 친정에 한달 있는 동안 우리 다 7킬로가 찌면 막내아들 다린이 빼고는 큰일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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