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더듬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집 주변엔 간판도 없는 공장들이 많았다. 내가 일했던 박스공장도 그 중 한 곳이었다.
면접이랄 것도 없었다. 9시부터 6까지 일해요. 한 시간에 돈은 얼맙니다. 그게 다였다. 심플했다.
한겨울 박스공장은 정육정 냉동창고 같았다. 아무리 바지 안에 내복을 입었다 해도 발은 어찌나 시렸는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빠글거리는 한 여자들이거나 그 위에 손수건을 반으로 접어 두건을 쓴 여자들. 곁눈질로 봐도 우리 엄마뻘이거나 나이가 많은 여자들. 공장에서는 그들을 여사님들이라 불렀다. 손아귀가 빨간 목장갑을 끼고 납작해진 종이를 접어 박스를 만드는 일. 그게 내가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이었다. 장갑은 어디서 나눠주나요. 물을 새도 없이 사람들이 군말 없이 박스를 접는다. 한겨울 바다속처럼 차갑던 박스에 손가락을 밴다. 요령 없이 힘으로만 접다 생긴일. 시뻘건 피가 우당탕탕 달려 나온다. 행여 누가 볼세라 쓰린 손가락을 입에 넣는다. 여기서 아픔은 사치다.
다음날 공장일을 가기 전에 목장갑을 챙겼다. 아빠가 쓰던 거라 손가락 몇 개에 구멍이 뚫린 그것을 챙긴다. 오히려 좋네. 구멍이 난 쪽으로 박스를 접으면 밀리지 않고 접힐 테니.
양말을 보란 듯이 두 개를 신었다. 이렇게 신으면 발 안 시리겠지. 운동화에 구겨놓은 발이 바게트빵처럼 뭉툭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에도 불구하고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그런 기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잘 살려고 했었지. 그런 기억. 힘이되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