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5번이나.
"쟤네 미쳤나 봐. 우리 집 문 앞에서 섹스해."
2016년 11월.
밤 12시 36분 퇴근하고 온 남편이 말한다. "어머, 진짜? 뭐야, 같이 보자."
우리 집 문 앞에 있는 엄지손톱만 한 구멍에 오른쪽 눈알을 들이민다.
"어머 미쳤나 봐. 진짜네."
"조용히 해. 다 들려."
나와 남편은 입틀막을 하고 공정하게 1분씩 돌아가며 우리 집 문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인간의 교미과정을 보고 있다. 캐나다에서 말이다. 20대 중반, 혹은 후반으로 보이는 동양 남녀 둘이 격렬하게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미친..."
어디 나라 사람일까? 중국인일까? 일본인일까? 설마. 에이 나는 오른쪽 눈알은 문구녕에 대고 머릿속으로는 아파트 복도에서 섹스를 하는 얘들은 도대체 어디 나라 애들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아.. 오빠...."
여자라고 해야 하나 암컷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여자애 입에서 익숙한 한국말이 흘러나온다.
"미쳤나 봐. 쟤네 한국인이야." 흥분한 내가 남편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말했다.
"아.. 아파.. 쟤네, 섹스할 때가 없나 봐. 우리 집으로 잠깐 들어오라고 할까?"
"미친놈 아니야. 이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남편을 3초간 째려보다 오른쪽 눈알은 다시 문 밖의 상황을 주시한다.
"미쳤어. 쟤 혀 좀봐. 도마뱀이야 뭐야. 아이고. UBC 후드티 입었네. 캐나다 유학 왔나 봐. 쟤 엄마가 이거 보면 기겁하겠네. 공부하라고 캐나다 보내놨더니. 넘의 집 아파트 복도에서 섹스하고 누워있네. 아이고야."
교미에 한 창 열중인 남자는 캐나다에서 공부를 꾀나 한다는 UBC 대학의 로고가 박힌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한껏 발정 난 둘은 가르랑 거리며 서로의 몸을 혓바닥으로, 손바닥으로 탐색을 하더니 본격적인 삽입과정에 들어갔다. 여자는 몸을 기억자로 숙였....
"어머 미쳤나 봐. 야. 콘돔 끼고 해 미친놈아."
마음의 소리가 뻗쳐 나오는 찰나 남편이 내 입을 막는다.
"들려, 조용히 해."
"알았어. 미안."
그사이 문 밖에서는 몇 번의 으쌰으쌰 과정이 끝났다.
"미친, 쟤 쌌나 봐. 산짐승이야 뭐야. 아니 왜 남의 집 앞에서 싸냐고."
남자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휴지를 꺼낸다. 그걸로 자기의 올챙이들을 닦는다. 그래 여기까진 괜찮았다. 근데 그걸 우리 집 문 앞에 버린다.
"저런 쌍놈의 새..."
"조용히 하라니까."
"아니 내가 어떻게 조용히 해. 저 놈이 지 싼걸 우리 집 앞에 버렸다니까. 오빠가 저거 치울 거야? 나는 절대 못 치워. 쟤네 저러고 또 오면 어떡해?"
"에이, 설마. 이제 안 오겠지."
남편은 간디 같은 사람이다. 평화주의자. 박애주의자. 모든 인류를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의 남편. 나는 아니다. 나는 그냥 다 받아버릴 수 있다. 받아주의자. 그게 나다.
놀랍게도 한국인 커플은 그 후로 4번이나 우리 집 대문 앞에서 격렬한 짝짓기를 했다. 한 번은 내가 문을 열고 나가기도 했는데 그걸 모르더라 얼마나 집중했으면. 지독한 사랑.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 컨시어지(경비 아저씨)가 포스트잇에 '복도에서 섹스하지 말 것.'이라고 붙여 놓던 날도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노란 포스트잇을 붙여 놓고 그걸 했다.
"나는 이제 절대 못 참아. 미친 거 아니야. 왜 남의 집 앞에서 그 짓거리를 하냐고. 이려러고 집 산 거 아니잖아." 첫 집이었다. 하루에 3~4시간 잠자면서 일한 돈으로 산 밴쿠버 첫 집. 피 같은 내 집 앞에서 섹스나 하고 누워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대담해진 커플은 아예 이불을 등에 두르고 등장을 했다. 어떤 날은 노트북 충전기를 복도에 있는 콘센트에 꼽았다. 그리고 섹스를 했다.
"개네 또 오는 거 아니야? 오기만 해 봐 진짜." 내가 툴툴거렸다.
"여기는 갈 데가 없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얼마나 하고 싶으면 그렇겠어." 남편이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 너 미친 사람이지? 뭐라는 거야. 쟤네 한 번만 더 우리 집 앞에서 그 짓거리하면 내가 부엌가위 들고나갈 거야. 장난하나."
그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 그들이 스멀스멀 나타났다.
"미친. 아니 어제도 했잖아. 야. 너네는 힘들지도 않냐. 진짜. 지겹다. 오빠. 내 말이 맞지? 쟤네 또 왔어. 나 더 이상은 못 참아."
남편은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아파트 사무실이며, 컨시어지 직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답장이 왔어. 걔네가 섹스할 때 사진을 찍어 보내래. 증거가 있어야 한데." 남편이 컨시어지에게 받은 이메일을 보여주며 말했다. 나는 잠복형사처럼 그들이 오길 기다렸다. 이틀밤이 지나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상하다. 걔네 슬슬 달구어질 때가 됐는데. 하고 싶을 텐데.
내가 잠복한 지 삼일째. 그들이 나타났다. 여자애는 우리 집 옆집에 살고 있었다. 남자애가 여자애를 집에 데려다준다. 서로 아쉬워하며 몇 번을 안고 뽀뽀에 키스를 한다.
"아. 왜 빨리 안 해 다리 아파 죽겠네." 나는 우리 집 문 앞에 누런 달고나처럼 붙어 있다. 십 분 정도 몸을 대문에 붙이고 서 있었더니 팔다리가 저려온다.
"오늘은 안 하나보지. 이제 안 하는 거 아니야?" 남편이 초를 친다.
그때였다. 몹시 흥분한 고릴... 아니 남자애가 자기가 입은 남색 바지의 갈색 벨트를 푸르기 시작했다. 여자애도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지 남자애가 벨트를 푸르는 걸 돕고 있었다.
"난리 났네.."
나는 아이폰으로 그 광경을 찍었다. 그날 메일에 증거사진 그리고 남자애가 싸고 버린 휴지도 같이 찍어 보냈다.
"너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문 열어."
내가 메일을 보낸 다음날이었다. 저녁 6시 5분. 중년의 백인여자와 백인남자가 화난 얼굴로 옆집 대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집주인이다. 한참을 두드려도 옆집문은 열리지 않았다. 전에 얼핏 열린 문틈 사이로 신발들이 햄버거처럼 두 겹 세 겹으로 쌓여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6시.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이나 한잔 마실까 하고 나왔다. 옆집에서 뭔가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이 새벽에."
나는 문틈으로 나의 오른쪽 눈알을 구겨 넣고 있었는데. 아이 C!!!!! 문 밖의 여자애도 구멍으로 우리 집 안을 들여보고 있었다. 소름.. 두 손에는 이민가방을 들고 등에는 백팩을 멘 채로 스멀스멀 기분 나쁘게 문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오른쪽. 왼쪽 천장을 확인했다. 아마도 CCTV 같은 것을 찾고 있는 모양이었다.
젊음이었다. 한창때였고 사랑이었다. 시간을 돌려 그 커플을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 나의 거실을 내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신, 대실 $30, 연장은 시간당 $5불. (이 트랜스퍼 가능, 한국돈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