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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부자엄마 Nov 07. 2024

어디까지 가난해봤어?

땅에 떨어진 음식 먹어본 사람?

어디까지 가난해봤어?

가난 어디까지 해봤니?


인스타그램이니, 블로그에 사람들이 자랑한다. 비싼 것. 좋은 곳. 에르메스인지 헤르메스인지 그 가방이 나는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아니 가방주제에 뭐가 그렇게 비싸. 나도 그래서 자랑 한번 해보려고 한다. 이름하여. 가난, 어디까지 해봤니.


나는 나의 가난을 자랑한다. 가난이 흠이냐? 흠 아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가난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냥저냥 살았을 거니까.


가난하다는 건. 스타벅스를 갈 수 없다는 거다. 가난하다는 건. 먹고 싶은 걸 사 먹지 못하는 것. 그래서 스타벅스에서 일을 했고 호텔에서 일을 했다. 스타벅스 커피를 공짜로 먹고 호텔 음식을 (정확히는) 남긴 음식을 공짜로 먹었다.


2009년.


캐나다 취업사기를 당하고 $20불이 남았다. 한국돈 이만 원 정도. 나는 그 돈으로 삼겹살과 베이컨 중간쯤의 돼지고기를 샀다. 고기가 7줄인가 6줄 들어있었다. 나는 그걸 하루에 한 줄씩 구워 먹었다.


그때 먹은 고기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전기세를 아끼려고 달라라마. 캐나다의 다이소 같은 곳에서 촛불을 사다 켰다. 나중에는 촛불 사는 돈도 아까워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한 낮의 햇빛을 락앤락 통에 담아다가 저녁에 다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혼자 낄낄거렸다. 가난해도 낭만은 있었다.


호텔에서 일할 때 나는 손님이 다 먹은 접시를 나르는 애였다. 다리를 꼬고 앉은 백인이 손으로 까딱까딱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기가 다 먹은 접시를 치우라고 손짓을 보낸 거다. 내 얼굴만 한 하얀 접시에 먹지 않은 새끼손가락 만한 미니 초콜릿케이크 한 조각이 있었다. 생리를 하려고 그랬는지 뭔진 모르지만 단 게 당겼다. 아니 그냥 먹고 싶었다.


손님에게 접시를 받아 들고 돌아서면서 내 딴에는 최대한 날렵하고 재빠르게 초콜릿케이크를 입에 넣었다. 넣었는데 앞에 매니저가 있었다. 아뿔싸. 코뿔사. 매니저는 그날 나에게 말했다.


"여기는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야. 푸드코트가 아니라고."


기분 나쁜 것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끄러움을 넘어선 쪽이 팔린 상태. 아. 더 빨리 먹을걸. 치밀하지 못했다.


캔도 주워 봤다. 캐나다에서 캔, 우유통 같은 것을 모아가면 십 센트, 한국돈으로 백 원을 줬다. 캐나다를 위해, 환경보호를 위해, 나는 길거리에서 캔을 주웠다. 한 달이면 이만 원, 삼만 원 돈이 모였다. 그걸로 쌀 한 포대 샀다. 간장에도 비벼먹고 물에도 말아먹었다.


휴지가 아까워 손으로 코풀로 물로 씻기도 했다. 물론 집에 있을 때만.


캐나다는 도서관이 잘되어 있었다. 잘 되어 있다는 게 공짜로 영어도 알려주고 공짜 커피에 공짜 쿠키도 줬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이었는데 나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쿠키가 먹고 싶어서. 1월 1일 새해에는 한인 마트에서 유학생을 대상으로 떡국을 나눠주었다. 나는 따뜻한 떡국을 먹고 몇 달간 속이 든든했다. 고마웠다. 모든 것들이. 가난한 나에게. 없는 나에게.


가난했던 덕분에 잘 살고 싶었다. 잘 산다는 게 상추쌈에 삼겹살을 두 개 세 개. 아끼지 않고 싸 먹는 것. 돈이 없어서 사람들이 불러도 몸이 좋지 않아 다음에 보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캐나다까지 왔는데 영화구경도 하고 팝콘도 먹고 뭐 그런 것들을 해보는 거.


가난한 덕에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많은 사람도 만났다.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만난 직장동료는 직업이 5개가 있었다. 우와. 너 정말 열심히 산다. 나도 더 열심히 살고 싶어. 너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가난했었다.


가난 덕분에. 그 덕분에 캐나다에 왔다. 나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지만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눈부신 햇살. 시원한 비. 좋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커피 한잔. 매콤 달콤한 떡볶이의 맛. 모두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많은 걸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난하다고 느꼈을 때도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잊지 않으려 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 말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내가고 싶다. 기대된다. 나의 45살. 그리고 나의 50대는 어떨지. 열심히 총총거리며 내 발자국을 캐나다 여기저기 꾹꾹 찍으며 살아야지.


잘될 거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고 지나간 나의 20대. 30대. 그리고 나의 글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온 마음을 보내 응원을 보낸다.


가난아 고마워.

땡쓰 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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