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개소리야.
밴쿠버 다운타운에는 한인마트가 두 개 있다. H마트와 한남마트.
어제 일이다. 저녁을 먹고 산책 겸 두부나 사러 한인마트에 가기로 했다.
중국인일까? 한국인일까? 20살 중반 후반? 젊은 여자 하나가 부산스럽게 영어로 퍼덕거린다. 옆에는 백인 여자하나도 서 있다. "이거는 한국의 오리지널 푸드고 블라블라." 아니 여기 한국마트에서 영어 쓰는 사람은 자기 혼자라도 된냥 시끄럽게 영어로 블라블라다. 나는 야채를 파는 쪽에서 새송이 버섯을 살지 팽이버섯을 살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다.
"익스큐즈 뭬."
그 동양여자가 똥 씹은 표정으로 버섯을 보고 있던 나와 배추는 엄청 크다는 말을 막 끝낸 나의 4살짜리 꼬마에게 화를 낸다. 길을 막고 있고 있던 것도 아닌데 오바 육바 칠바 호들갑을 떤다. 미칫나.
"오. 오케이 쏘리." 당황해서 뒷걸음질 치며 비켜준다. 흰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그 여자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어이없어. 뭐야. 재.'
두 개에 $4불, 한국돈 사천 원 하는 새송이 버섯을 들고 두부코너로 지나간다. 아까 봤던 그 재수 터진 여자랑 백인여자가 안 그래도 좁은 한국마트 골목을 자기네 쇼핑카트도 막아놨다. '뭐냐.'
"미안한데 이것 좀 치워줄래? 여기 사람 지나다니는 데야. 플리즈."
공손하지만 강하게 한국 아줌마의 코리안 된 소리를 팍팍 담아 길막을 하고 있는 걔들에게 15년 경력의 이민영어를 날린다.
당황한 얼굴로 그들이 돌아본다. "쏘리."
4살짜리 꼬마도 영어로 한마디 덧붙인다. "여기는 모두의 공간이야." 데이케어에서 뭘 배우긴 하는군. 엄마로서 괜히 감동이다.
한인마트에 있는 한국사람은 영어를 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 백인들에게는 관대하고 동양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동양사람들. 꼭 그런 애들이 있다. 영어가 뭐 벼슬이냐.
캐나다 호텔에서 일할 때 성깔 더러운 요리사 아저씨 밑에서 욕먹으면서 배웠던 영어였다. 캐나다에 와서 내 밥그릇 챙기고 내 새끼 챙기고 살려면 영어는 해야 된다. 부당하고 더러운 꼴을 당하기 싫으면 영어가 빨딱 빨 딱 나와야 돼.
억울하고 나발이고 영어가 돼야 한마디라도 쏘아붙일 수 있으니 영어는 해야 된다. 캐나다 오고 얼마 안 된 14년 전 한식당에서 디시워셔를 했었다. 나는야 인간 설거지 기계. 입 다물고 벽만 보고 하루 종일 서서 설거지만 했다. 내 허벅지 만한 냄비는 어찌나 무거운지. 뭔 놈의 소스는 이렇게 딱풀처럼 달라붙어 있는지. 그리고 접시 이가 나가거나 뭐 금이라도 가면 1불씩, 한국돈 천 원씩, 쥐꼬리 만한 월급에서 깠다. 그때. 내가 시발 더러운 거. 영어 배워야지. 영어 못하면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데. 그랬었다.
집에 와서 이불킥을 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놈의 영어 때문에.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와서 답답한 가슴만 맨주먹으로 퍽퍽 치던 날들. 그날들이 벌써 15년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는 업그레이드가 된다. 강해지고 똑 부러진....( 그러고 싶다.) 캐나다에서 영어는 생존이며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당당구리 파워다. 이민자로서 캐나다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도 계속 배우고 성장해 나갈 것임을 한인마트에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