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다운타운 렌트비는 얼마예요?
"밴쿠버 다운타운에 사람이 살아요? 아니 내 말은 거기 노숙자랑 마약쟁이들이 사는데 아니에요?"
주말마다 가는 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이 물었다. 어디 사냐고 물어서 밴쿠버에 산다고 했고 또 어디 사냐고 물어서 다운타운이라고 답한 게 다였다. 나는 그녀를 본 지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는 처음 만난 사이었고 나는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지구에 사는지 달나라에 사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다운타운이요?
거기도 사람이 살아요? 아니 내 말은 거기 노숙자랑 마약쟁이들이 사는데 아니에요?"
그녀가 말한다. 쉴 새 없이 터진 입에서 말 같지 않은 것들이 나불거리고 부대낀다.
"엇 그럼 제가 노숙자가 마약쟁이라서 다운타운에 산다는 말씀이실까요?"라고 되물어 볼걸.
다운타운에 산지 10년이 넘었다. 다운타운에서 아기도 낳고 아기도 기르고 일도 하고 살기도 한다. 아이를 낳고 주말마다 가는 한국인 부모교육 시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운타운에서 살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타운타운에는 나 말고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유모차를 밀고 걸어서 갈 수 있는 밴쿠버 수족관, 밴쿠버 도서관도 두 개나 있다. 사이언스 월드, 코스트코, 유명한 커피숍까지 나는 비 오는 날에도 우비하나 뒤집어쓰고 유모차에 방수커버를 씌우고 걸어 다녔었다.
"네 맞아요. 다운타운에도 사람이 살아요. 하하하"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무리에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이 끼면 신기하게 생각한다. 부모교육시간에 다운타운 사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거기 렌트비가 얼마예요? 다운타운 비싸지 않아요?" 마치 생선가게에서 고등어 한 마리가 얼마냐고 묻는 사람 같다. 아니 그리고 왜 렌트비라고 묻는 걸까? 내가 산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거울에 비친 내 몰골이 답한다. 월마트에서 오래전에 오십 센트였나 주고받은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내가 입은 쥐색 운동복 바지에는 보풀이 나있고 무릎은 내 똥배처럼 툭 튀어나왔다. 그날 비가 온다고 해서 신은 검은색 구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신발 중에 유일하게 비에 젖지 않는 신발이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없는 불알이 탁 쳐진다. 무릎이 튀어나온 쥐색 운동복 바지에 검정 구두를 신은 사람은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우리 집이라서요. 렌트비는 모르겠는데요."라고 재수 없게 말할까? "렌트비는 3000불 가까이 내고 있어요." 뻥 칠까 한동안 고민한다.
"저희 집이라서 렌트비는 안내요." 아뿔싸 코뿔사. 눈알들이 다닥다닥 나에게 달려온다. "밴쿠버 다운타운에 집을 샀다고요? 거기 비싸지 않아요? 얼마예요?" 얼마예요? 가 메아리가 되어 돌아온다. 방은 몇 개예요?
관심을 즐긴다. 다운타운에 아이를 낳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주목을 받은 일이라니. 그동안 쓰리잡, 포잡 뛰면서 돈에 들러붙어 벌었던 날들이 빛을 발한다.
다운타운에 집을 처음 사전날. 내 나이가 캐나다 나이로 33이었다. 한국인 리얼터 그러니까 복덕방 사장님이 나를 보고 '사모님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아니에요. 제가 무슨 사모님이에요.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식덩어리 나는 속으로 춤을 췄다. 격렬하게.
집 이야기를 하면 나는 당당해진다. 숭구리 당당. 엄마 아빠한테 그리고 시부모님한테 손 안 벌리고 나랑 남편이랑 둘이서 모은 돈으로 산 집이다. 비록 작고 은행 빚이 있고 그래도 뭐 우리 힘으로 산 집이니까. 캐나다 이민 15년 동안 너 뭐 했어?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 집 샀는데요.라고 어깨뽕 10개는 넣은 사람처럼 말할 수 있는 내 자신감 근원. 우리 집.
아무튼 식초도 없는데 초를 친다.
"다운타운 나는 못살아. 시끄럽고 노숙자도 많고 마약쟁이도 많고."
만약에 그럼 정말 만에 하나 누가 공짜로 다운타운에 있는 집을 줄까? 해도 안 살 거예요? 묻고 싶었다.
"저는 그쪽은 못살겠던데요? 완전 한국 아니에요. 온통 한글 글자에다가 영어 배우러 왔다 한국말만 늘어서 간다는데 아니에요?"라고 쏘아 붙지 지는 않았다. 나는 지적인 사람이기로 했으니까.
"아... 네." 그냥 그렇게 답했다. 다운타운에서 10년 넘게 산 내가 다운타운에서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당신보다는 더 많이 알고 있으니 그냥 말을 만다. 내가 썼지만 난 참 재수없게 글 쓰는 능력이 있다. 쏴리.
나는 밴쿠버 다운타운이 정말 정말 좋다. 자주 가는 커피숍에 사람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다운타운에서 차 없이 아이 유치원 보내고 직장에 가고 한인마트에 가고 코스트코를 간다는 게 얼마나 편하고 시간도 아끼고 돈을 아끼는 것인지 아주메요. 당신은 모를 거야.
내가 다운타운에서 이사를 가는 날은 다운타운에서 평수를 넓혀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그러니까 비싸서 이사를 가는 것이지 다운타운이 싫다거나 마음이 바뀐다거나 그건 아니다.
나는 밴쿠버 다운타운이 정말이지 너무 좋다. 이 글을 이렇게 끝내도 될까? 되겠죠?
아무튼 밴쿠버 다운타운에 사람이 살고 있냐고 물으시면 네. 살고 있어요. 노숙자 아니고 마약쟁이가 아닌 사람도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