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작은 공장을 했다. 시골집 한편에서.
어떤 날은 일이 많았고 몇 달은 일이 없어 손가락을 빨았다. 일감이 많던 날은 중학생이던 나, 초등학생이던 동생도 불려 가 일손을 도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반복적인 노동을 우린 주말 내내 했다. 주말저녁 좋아하던 티브이프로그램이 할 시간이었다. 티브이보고 싶어. 한마디 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기억. 울면서 잠들었던 기억.
내 주변은 고만고만하게 살았고 어려서부턴 돈은 몸을 사과처럼 깎아야만 벌 수 있는 거라 눈치로 배웠다. 공부를 하겠다는 맘도 공부를 할 시간도 없었다. 아빠라, 가족이라, 큰딸이라 난 늘 헐값에 내 노동력을 제공했다.
영어 유치원에서 일하면서 만난 미국, 캐나다 친구들 덕분에 더 큰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아빨 원망하진 않는다. 잘살아보려고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쓴 아빠를 기억한다.
부자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돈은 어떻게 모으는 것인지 알려준 사람은 우리 주변에 없었다. 아빠는 한쪽다리를 절었고 나는 미래가 없다 선을 그었다.
심청이처럼 온몸을 던져 바다로 뛰어들어야 해. 그렇게 맘을 먹어야 돼. 인생을 갈아엎으려면.
비록 심청이처럼 아빠의 삶을 구하려 뛰어든 건 아니지만, 난 제대로 살고 싶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선택은 할 수 있으니까. 가난하게 태어난 건 내 선택이 아니었지만, 계속 가난하게 살진 않겠다고 나는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