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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자는 부끄러운 게 없지.

by 캐나다 부자엄마

난 이제 창피한 것도 없어.


일터에서 남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담다가 생각했다. 이젠 난 부끄러운 것도 없어.


일하는 곳에서 남는 음식을 싸가는 애는 나뿐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유치원인데 오전 오후 간식 그리고 점심도 준다. 사실 준다라기보다 아이들이 먹을 때 나도 옆에서 같이 먹는다.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진 않았다. 캐나다 와서 영어보다 느는 건 눈치다. 눈치를 보니 다른 선생들도 먹길래 나도 먹는다.


먹은 지는 두 달이 넘어간다. 두 달 동안 내가 유치원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럼 괜찮은 거다. 유치원 아침 간식은 늘 뻥튀기 같은 라이스 케이크에 딸기잼 혹은 땅콩버터 그것도 아니면 치즈 위즈라는 가공된 치즈를 발라먹는다. 난 한쪽엔 딸기잼 한쪽은 땅콩버터를 바른다. 아주 두껍게 바른다음 그걸 양손에 다 묻히고 먹는다.


그럼 꿀맛.


한국에서 가져온 바지가 맞지 않는다. 하긴 티셔츠도 쫄티가 돼버린 지 오래. 괜찮다. 난 이제 부끄러운 게 없다. 점심으로는 간 소고기가 들어간 토마토 스파게티나 라자냐 혹은 맥 앤 치즈가 나온다. 쌀밥이 나오는 날은 거의 없다. 그래도 괜찮아. 배만 부르면 된다.


음식이 남으면 항상 날 싸준다. 땡큐 쏘 머치. 정말 땡큐가 쏘 머치다. 이거 덕분에 식비니 음식을 만드는 에너지를 많이도 아꼈다. 당연한 건 없다. 날 챙겨주는 게 고마워서 팀홀튼에 들려 도넛도 사갔다. 바라고 준건 아니지만 역시 돌아오는 게 더 많다.


퇴근할 때는 길가에 버려진 캔을 줍는다. 병을 담기 위해 비닐봉지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닌다. 부스럭거릴 때도 있지만 괜찮아. 난 이제 정말 부끄러운 게 없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돈 없고 배고프면 아무짝에도 상관없다.


하긴 뉴펀들랜드에서 아직까진 한국인을 본 적이 없다. 그게 또 다행이다. 만약 한국이었으면 누가 나에게 또 거지근성이니 거지새끼니라고 손가락질을 했을 거다. 분명.


처음에 캔을 주울 때는 조금 쪽팔렸다. 사실. 그냥 뭐 죄지은 거 같았다. 길바닥에서 바지 내리고 쉬하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너무 급하게 줍는 바람에 캔 따게에 손을 베기도 했는데 지금은 뭐 괜찮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체면을 버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체면을 버리면 돈 되는 일들이 많다.


저번주는 재활용센터에 그동안 야금야금 모든 캔들을 가져다주었다. $30불 정도 받았다. 그걸로 일주일치 식량을 샀다. 땅 파봐라 돈이 나오나. 아니 그 말은 틀렸다. 땅을 파지 않아도 돈이 나온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펩시를 그렇게 좋아한다. 다 마시고 그 페트병은 나한테 버려달라고 했다. 그게 벌써 20개도 넘었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난 정말 이제 부끄러운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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