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돈을 벌어야 돼. 돈이 있어야 돼. 목표는 돈. 꿈도 돈. 장래희망도 돈. 돈돈돈. 도온.
눈을 뒤집어까고 돈을 벌기로 했어. 그럼 돈이 날 지켜줄 거야. 돈은 배신 안 해. 사람이 배신하지. 돈을 벌기로 했어. 나를 지키려고 아는 사람하나 없는 뉴펀들랜드에서 캐나다에서.
빈병을 줍기로 했어. 캔 같은 거 우유병 같은 거. 그걸 모아서 재활용센터에 가져가는 거야. 그럼 돈을 주거든 캔 하나에 백 원인가? 술병은 이백 원도 주더라고. 눈에 불을 켜고 빈병을 줍는 거야. 출근하고 퇴근하고, 오며 가며 빈병을 주웠어. 운 좋은 날은 쓰레기통 옆에 박스채로 놓여있는 빈 술병들을 줍기도 했지.
짜릿해. 병 무더기를 보면 무슨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니까.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차곡차곡 빈병을 모았어. 검은 쓰레기봉지에 꽉 찰 때쯤 내가 그걸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서 낑낑거리고 들 수 있을 만큼 모았어. 그걸 재활용센터에 가져갔지. 이 정도면 얼마나 받을까 설레면서 설마 $100불은 넘지 않겠지? 기대하면서.
음료 단내가 풍기는 재활용센터에서 병과 캔을 분류하고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아. 그리고 기다렸지. 근데 분위기가 이상해. 뭔가 비비 꼬여가는 기분. 왜요? 또 제가 뭘 잘못한 건가요?
일하시는 분이 말을 걸어.
"이거는 재활용이 안되는데 캔을 이렇게 구겨서 가지고 오면 재활용이 안 돼요."
"네? 예? 쏘리?"
더 많이 줍고 싶어서 캔을 발로 꽉꽉 밟았거든. 비닐 봉지 안에 더 많은 캔이 들어갈 수 있도록. 아 이놈의 욕심. 나는 삽질을 한 거야. 아니 캔하나 줍는 건데도 나는 뭐 잘하는 일이 없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네. 허망해 마치 비행기를 눈앞에서 놓친 것처럼 핸드폰이 바다에 빠진 사람처럼 넋이 나갔어.
"오케이."
말은 오케인데 맘은 안오케이야. 바짝 말린 오징어처럼 구긴 캔은 놔두고 빈병값만 받고 돌아오는데 에라 오천 원도 안돼. 아니 삼천 원도 안돼. 나라는 사람이 그래. 삼천 원도 안 되는 사람.
터벅터벅 반지하에 돌아와. 짤랑거리는 동전을 신발장위에 올려놓고 땅이 꺼져라. 아니 더 꺼질 데도 없는 반지하에서 한숨을 퍽퍽 쉬어.
나는 이제 빈병조차도 못줍는 사람이야.
한동안 나를 원망하고 누워있어. 창밖은 아직 환한데 내 맘은 밤이야. 꺼매. 희망이 없어. 아니. 배고파. 배가 고프네. 부스럭부스럭 먹을 걸 찾아. 일터에서 남은 피자를 가져왔는데 그게 생각나. 어디있더라. 쿠킹포일에 쌓여있던 그걸 조심스럽게 손으로 까.
페페로니가 눌려있는 노란 기름이 배어 나온 피자를 한입 크게 물어.
와. 하루 지난 피자 맛있네. 피자가 맛있어. 자세를 고쳐 앉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그래. 그깟 캔 구겨져서 돈 못 받은 게 뭐라고. 내일부터 안 구기고 주우면 돼. 뭘 그런 것 때 매 상처받고 잉? 이렇게 울상이야. 잉? 혼자 말하고 혼자 웃어.
피자만 한 슬픔이네
피자만 한 기쁨이네
괜찮아. 그럼
배가 부르니까 또 뭐든 할 수 있는 기분.
배가 부르니까 또 뭐든 다 괜찮아지더라.
다시 캔을 줍기로 해. 이번에는 구기지 않아야지.
피자하나에 다시 희망이 생겨. 의욕이 생겨.
그래, 맘이 힘들 땐 뭘 먹어야 돼. 이렇게 또 하날 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