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이 변호사면 저는 마술사.
"이거 딱딱해서 못 먹어. 환불해." 중년의 여자가 페이스트리 백을 툭 던진다. 마치 까마귀가 나뭇가지 위에서 똥을 싸지르는 것처럼. 툭.
"내가 이거 먹고 이가 나갈 뻔했어. 어찌나 딱딱한지." 여자 팔짱을 끼고 카운터에 기대서서 계속 불평이다. 민자, 그 여자가 던진 페이스트리 백을 집어 든다. 조심스레 페이스트리 백을 열어본다. "그거, 열어볼 필요도 없어. 딱 만지면 몰라? 그거 딱딱해서 못 먹어." 여자 계속 궁시렁이다.
여자가 던진 페이스트리 백 안에는 바나나 빵이 들어있었다. 아마도 일주일은 된 듯한. 벽돌처럼 딱딱해져 버린 빵. 민자는 그 바나나 빵을 손가락으로 집어 들면서 한마디 한다. "오, 이거 저희꺼 아닌데요. 저희 바나나빵에는 호두가 들어있지 않아요. 그런데 이 바나나빵에는 호두가 아주 많이 들어있네요." 민자 친절하게 바나나빵을 들어 여자에게 보여준다. 상업 미소와 함께.
여자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가 지금 거짓말한다는 거야? 나 변호사야. 미국에서 변호사를 한다고 아. 메. 리. 카. 에. 서." 여자. 아메리카를 강조해서 말한다. 뭐야. 웃겨.
아니 미국 사는 게 벼슬인가? 트럼프야 뭐야. 빵 환불하는데 자기가 변호사인 거랑 미국이랑 무슨 상관이야. 어이가 없다.
"저희 바나나빵은 이렇게 생겼어요. 호두가 없어요. 그런데 손님이 가지고 오신 거는 호두가 박혀있고 빵 모양도 다르잖아요." 민자 솟구쳐 오르는 화를 누르고 차근차근 여자에게 말한다.
"너 지금 내 영어 알아듣는 거야? 여기서 샀다니까? 나는 변호 사고 내 남편도 변호사야. 변호사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여자가 미친 황소처럼 길길이 널을 뛴다.
"네, 손님이 하시는 영어 잘 알아듣고 있어요. 그럼, 혹시 영수증이나 스타벅스 앱으로 결제하셨으면 제가 찾아드릴게요." 민자 물러서지 않는다. 꼭 이런 것들이 영어를 물고 늘어진다. '뭐야. 영어만 하는 주제에. 나는 한국어도 한다고.' 민자 속으로 꿍얼거린다.
"아니, 너네가 영수증 안 줬어. 나는 현금으로 했어. 그냥 환불해 줘. 나 시간 없어." 여자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아니 변호사라면서 미국 산다면서요. 환불해 봤자 5천 원도 안 되는 돈에 왜 이리 목을 맬까. 쯧쯧 민자. 여자가 안쓰러워진다.
5천 원을 쥐어 주고 먹고 떨어지라고 해야 하나. 천장에 떡하니 달려있는 4개의 cctv를 확인해야 한다고 해야 하나. 민자 잠깐 고민한다.
"급하시다고 하니 이번에는 환불해 드릴게요. 다음에는 영수증 꼭 가지고 오세요." 대인배 민자 똥뭍은 개와 싸우지 않기로 결심한다.
"진작 그럴 것이지. 여기서 샀다고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여자 고맙다는 말 대신 퉁명스럽게 말을 뱉는다.
"민자, 너 왜 저 여자 환불해 줬어? 딱 봐도 우리 바나나빵 아니잖아. 그리고 말투가 왜 저래. 변호사는 미친. 미국으로 가라고 해. 왜 여기 와서 난리야." 같이 일하는 직원 하나가 말을 한다.
"엮이기 싫어서 그냥 돈 먹고 떨어지라고 환불해 줬어. 우리가 변호사보다 낫다. 그렇지? 우리가 통이 더 커. 아이고, 미국 어디서 변호사 하냐고 물어나 볼걸. 변호사가 무슨 벼슬이야. 스타벅스에서는 다 손님이고 다 그런 거지. 아이고 의미 없다."
"어디서 뭐 하든, 얼마를 가졌든. 스타벅스에서 그게 뭐 대수라고 그냥 커피 주문하고 빵주문하고 그러고 받아가는 거지. 변호사니 뭐 그런 게 무슨 힘이 있어 스타벅스에서." 직원이 말을 덧붙였다.
"인정받고 싶었나 보지." 민자가 아까 여자가 내동댕이 친 바나나빵을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진짜 미국 어디서 변호사 하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다음에 오면 우리 물어보자."
"그래그래."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15분이다. 민자 퇴근까지 15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