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 셋째 반전 소개 -

by 캄이브

셋째 아이의 학부모 참여수업.
이제는 좀 익숙해진 자리지만,
그날만큼은 마음이 또 다르더라.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한 지 몇 달 안 된 셋째 아들

학교에서 직접 마주하는 건
언제나 새롭고 뭉클한 일이니까.

기대와 설렘으로 휴가 내고 달려갔어.


카메라 배터리도 만땅,
누가 봐도 ‘준비된 학부모’ 모드였어.
“오늘은 꼭 멋진 모습을 남겨야지.”


드디어 아들의 발표 순서.
순간을 놓칠세라 렌즈에 초점을 맞추고
미리 녹화 버튼을 누른고 있는 그때,
우리 아들은 씩씩하게 일어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쳤어.


“저는 튼튼한 메돼지가 되고 싶은 김*준입니다!”

삐융~~~~

응?

뭐라고?

...

어른들은 웃음바다.

아이들은 박장대소.


덩달아 주인공이 된 나는

어지럼증이 밀려오면서 초점이 흐려졌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싶었지.

정지 버튼도 누르지 못한 채

그 장면을 그대로 남길 수밖에 없었어.


멧돼지도 아니고,
메.돼.지.

실망 반, 민망함 반.


내가 기대했던 멋진 자기소개는커녕
아들은 반 친구들 앞에서
‘개그 캐릭터’가 되어 있었고

모두가 웃고 있는 모습에 어깨가 으쓱해서

낄낄 웃고 있었어.


그 순간엔 창피하고 허탈했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주니는 그 순간,
엄마에게 웃음을 주고 싶었던 걸까?’

아이의 그 엉뚱한 한마디 속엔
유쾌함, 자신감, 그리고 어쩌면
엄마를 웃게 하고 싶은 작은 마음이 있었을지도.


그 밤 다시 동영상을 보며 깨달았다.
‘이것도 주니다.
참 유쾌하고, 자유롭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아이.’

그리고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줬지.
주니야, 웃기고 싶었던 마음도 이해해.
하지만 발표 시간엔 조금 더 진지해보자.

그게 네 매력을 더 잘 보여주는 방법이야."


다가올 2학기 참여수업.
몸도 마음도 한 뼘은 더 자랐을
우리 집 셋째, 장남.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까?


그래도 뭐,
그날의 ‘튼튼한 메돼지’는
우리 가족의 영원한 레전드로
남게 되겠지.


- 캄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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