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
오월의 숲은 눈부시다. 나는 여름 냄새를 좋아한다. 특히 초여름 냄새는 더 좋다. 달콤한 아카시아 향기가 햇빛 냄새, 풀 냄새에 섞여 있다. 학생회관 토스트 냄새, 교보문고의 상쾌한 냄새도 이때쯤에는 더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나는 매일같이 교보문고에 간다. 책을 구경하며 가능성의 바다에 빠져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삶, 내가 선택한 삶의 무수한 가능성들을 즐겁게 상상한다.
최근 내가 교보문고 창밖을 바라보며 가장 많이 한 생각은, ’그래서 무슨 글을 쓸 것인지’에 관한 고민이었다. 단순한 일기를 넘어 좀 더 잘 구성된 글을 지속적으로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글을 남기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인생을 그냥 흘러가게 놔두고 싶지 않아서이다. 나의 일상은 너무나 단조로워서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바람처럼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밋밋하기는 해도 그렇게 보내기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일상이 가진 가치를 보관하고 싶었다.
어떤 형태로 기록을 남길지 수많은 고민을 했다. 결론은 에세이였다. 내가 나로 사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으니까. 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서술하고 싶었으니까.
이 글들에는 과정만 있고 결과는 없을 것이다. 사실 삶이란 건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삶이 결과를 맞이하는 순간은 죽음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모든 삶이 죽음으로 귀결된다면, 결국 우리에게 고유성을 부여하고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건 과정이다. 나는 내 삶의 과정 중 일부를 엮어 글로 만든다. 방황하고 떠돌아다니는 시간에 대해 쓴다.
저녁 무렵 수업을 마치고 공대에서 나오면 먼저 짙은 숲의 냄새가 난다. 내리막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면 버거 가게의 열린 문에서 구운 고기 냄새가 나고, 배가 고파진다.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기숙사에 도착한다. 내 방 창문을 열면 코앞의 아카시아 나무에서 또다시 달콤한 향기가 흘러온다. 그리고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이만하면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괜찮은 하루에 대해서, 때때로 괜찮지 않은 하루에 대해서 기록할 것이다. 적어도 다음 아카시아 꽃이 필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