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삶
나는 여름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동식물과 빵을 좋아하는 성향에 당첨되었다. 나는 살이 안 찌는 체질, 악성 곱슬, 튼튼한 장, 약한 발목, 넷째 발가락 단지증에 당첨되었다. 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틱 장애에 당첨되었다.
법적으로는 지적 장애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발달 장애라 하고, 의학적으로는 여기애 더해 ADHD와 틱 장애 등도 포괄하여 발달 장애로 본다. 발달 장애는 누가 잘못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뇌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데, 이는 조금 가볍게 말하면 어디까지나 ’ 당첨‘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이런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발달 장애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서울대를 갔지?’
‘이렇게 멀쩡하게 글도 쓰고; 대학도 다니면 발달 장애가 아닌 거 아니야?‘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나는 지적 장애를 동반하지 않은 자폐인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고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나 지능이 정상이라고 해서 자폐가 아닌 건 아니다. 나는 아주 친밀한 관계를 제외하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말투로 대화하게 된다. 눈 맞춤은 정말 어렵다. 애초에 대화를 할 때 눈빛과 표정 등 비언어적 요소에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처음 배웠다. 그리고 그걸 알았다고 해서 비언어적 요소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기지는 않았다. 손과 발을 움직이는 상동 행동, 시각 자극과 청각 자극에 대한 감각 과민은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또 묻는다.
‘너는 인지 능력이 되니까 말투나 행동도 조절할 수 있지 않아?’
‘어려운 문제는 잘 풀면서 왜 사람들 대화 내용은 못 알아들어?’
물론 학습을 통해 어느 정도는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 이를 ‘마스킹‘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계 또한 명백하다. 어떤 경증 자폐인들은 먼저 장애를 말하기 전에는 누구도 모를 만큼 행동 조절을 잘하기도 하지만, 이는 모두 본래 자신을 숨기고 학습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가 따른다. 노력한다고 모두가 완벽하게 자폐적 특성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에 있다. 법적으로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은 아니지만, 학교에서는 특별 심의 위원회를 통해 장애 학생으로 등록되어 학업이나 교내 프로그램에서 소소한 지원을 받고 있다. 계속 도움을 받으려면 국가에 장애인 등록을 시도한 이력이 필요해서, 올해 여름에는 관련 서류 준비로 바쁠 것 같다.
과거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분류된, 나와 같은 고기능 자폐인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완전한 비장애인처럼 사회생활을 할 수는 없는데, 장애인으로 판정받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나 또한 부족한 사회성과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린 갖가지 문제들을 안고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은 내가 할 일(공부)에 집중하고, 남는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내 세계를 넓힐 계획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급 친구들, 선생님들이 내게 다른 삶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들의 삶을 간접 체험하며 세상을 배워 나갔다. 대학에서 홀로 생활하는 지금, 나에게는 더 이상 다른 삶을 보여줄 이들이 없다. 자꾸만 세계가 좁아졌다. 타인과의 교류가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에 나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세계를 탐구하기로 결정했다.
글을 쓰는 것 또한 내가 세계와 연결되려는 노력 중 하나이다. 글을 쓸 때 나는 방해받지 않고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상동 행동이 있어도, 다음에 쓸 말을 생각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도 괜찮다. 나는 자유로울 수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달 장애에 당첨되었지만,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어도 인생을 즐길 수 있듯이 나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추어 살기로 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내 자리가 없다 해도 나 자신은 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