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티나무 아래서

나의 싱그러운 친구들

by 도요

나는 주로 홀로 생활한다. 그러나 외로울 틈은 없다. 오후 햇살을 받아 따뜻하게 빛나는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시를 읽는 낭만, 공강 시간에 늦봄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유록색 은행나무를 스케치하는 낭만이 내게는 있다. 나는 매일 나의 싱그러운 나무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눈을 뜨면 아카시아 나무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기숙사를 나와 삼거리까지 올라가는 길엔 벚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준다. 중앙도서관 통로 앞을 지키는 백합나무 두 그루의 연둣빛은 특히 예쁘다. 수리과학관 앞 은사시나무는 바람이 불면 보석처럼 빛나고 농생대 앞 칠엽수는 거대한 잎을 코끼리 귀처럼 펄럭인다. 길목마다 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여름이 되어갈수록 학교는 울창하고 푸르게 빛난다. 매일 달라지는 신비로운 풍경 속에서 사는 것은 즐겁다.


한 나무를 매일 관찰하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 때가 되면 꽃이 피었다 지고 잎과 줄기가 자란다. 나무와 함께 호흡하면 자연의 속도에 나의 맥박을 포갤 수 있다. 나무는 그 자체로 심오한 예술 작품이다. 찰나의 아름다움에 몸과 마음을 완전히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살면서 길고 지루한 싸움을 할 때마다 굳건한 나무들이 힘이 되었다. 중학생 때 대학 병원에 장기 입원을 했는데, 내 자리 창 밖으로 미루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초여름을 지나 한여름이 되었고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졌다. 나는 그 나무의 생명력을 나누어 받았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바람에 선선히 흔들리는 나무의 존재에서 위로를 받았다.


입시 지옥을 헤매던 고등학교 때도 교실 창가에는 항상 나무가 가까이 있었다. 1학년 때는 세콰이어가, 2학년 때는 독일가문비나무가, 3학년 때는 낙우송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무와 나무 너머의 머나먼 세상을 바라보며 공상에 잠기는 것이 수도원 같던 고등학교 생활 속 큰 재미였다. 자유, 결실, 성공, 해방을 꿈꾸었다. 유독 나무와 풀이 많았던 나의 고등학교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내게 싱그럽고 푸른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서울대학교의 교목은 느티나무이다. 그래서인지 학교에는 느티나무가 참 많다. ‘느티나무’라는 교내 카페도 있는데, 딸기 라떼가 정말 맛있다. 최근에는 복숭아 라떼도 나왔다. 맑은 날 느티나무 아래서 느티나무 딸기 라떼를 마시는 게 대학 생활의 소소하면서 큰 행복이다. 그토록 원하던 자유의 맛이 난다.


나무는 항상 신비로운 패턴과 색으로 내게 말을 걸고, 나는 그 이미지에 매료된다. 나무는 가장 다정하고 믿음직스러운 친구이다. 버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볼 때 나뭇잎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살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면, 나무가 당신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나는 초여름 은행나무 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가장 좋아한다. 작은 틈새에서 반짝이는 빛들이 마치 은하수 같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