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대한 기억
2005년 뽀삐는 1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처음 입양돼서 시댁에 왔다고 한다. 현재 나이는 18살 할아버지 노견이다. 강아지의 1년은 사람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6~7년 정도라고 한다. 그러니 뽀삐는 사람 나이로 100살이 넘었다.
뽀삐의 종은 요크셔테리어이며 체중은 2.3킬로그램 정도로 체구가 작은 소형견이다.
흔히 기억하는 요크셔테리어의 이미지는 머리부터 다리까지 털이 길게 뻗어 있는데 뽀삐는 털이 길게 자랄수록 곱슬처럼 되어 북실북실한 느낌이 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순종 요크셔테리어는 아닌 믹스견이지 않을까.
얼굴은 몸에 비해 작은 편이고 눈과 귀가 크며 갈색 속눈썹이 길게 나 있다. 핑크색 혀는 항상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운 이미지이다.
얼굴만 보면 18세 노견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동 안견이다.
요크셔테리어는 노견이 될 때까지 총 7번 털색이 변한다고 한다. 처음엔 진갈색 털과 검은색이 섞여 있다가 나이가 점점 들수록 갈색과 검은색 털이 지금은 점점 밝은 베이지 색으로 변화한다.
뽀삐의 현재 털은 거의 백발처럼 하얗고 몸 전체는 황금 털로 변하였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흰머리가 나고 백발로 변하는 것처럼 뽀삐도 18년을 살아오면서 털색이 하얗게 변화된 것 같다. 신기한 건 털에 윤기가 흘러 반짝반짝 빛나고 마치 외국인의 금발 머리 같기도 하다.
얼굴은 아기같이 동안이지만 걷는 모습을 보면 사실 노견임을 짐작할 수 있다
걸을 때 목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천천히 걷는 편이고 슬프게도 등이 조금 굽어 있다.
앞다리 슬개골이 둘 다 닳아서 오래 걷진 못하고 만지면 아픈지 싫어한다. 예전엔 소파에도 폴짝폴짝 뛰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고 엄청 활발했는데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느릿느릿 걷고 누워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100살이 넘은 노견이 되어버렸다.
시간을 더듬어 2012년 뽀삐와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해본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 시절 예비 시댁에 인사드리러 가게 되었다.
현관문이 열림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문틈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밀며 작고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킁킁 거리며 내 곁에서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면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발라당 배를 뒤집고 누워버렸다. 어머님이 뽀삐가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 하셔서 배도 만져주고 이름도 불러주었다.
낯설고 긴장되었던 어른들과의 첫 만남이 뽀삐 덕분에 다행히도 금방 풀리게 되었다. 또 나에게 경계심 없이 다가와준 뽀삐가 고마웠다.
결혼을 하고 난 후 시댁에 갈 때마다 뽀삐는 여전히 제일 먼저 현관으로 달려와 나를 반겨주었다.
평소에 강아지를 좋아했던 나는 시댁에 오면 뽀삐와 놀아주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를 기억하는지 졸졸 따라다니면서 내 옆에 와 주었다. 자기를 만지라고 발라당 누워 버리는 뽀삐의 애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작은 혀를 내민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모습에 난 매번 무장해제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집에 오면 뽀삐 생각이 문득문득 날 정도로 기억에 남았다. 어떤 날은 시댁에 부탁해서 며칠 동안 데리고 있어 볼까 하는 생각도 할 정도였다.
뽀삐는 아버님의 무한 사랑과
어머님의 돌봄 속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강아지였다.
그땐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 아버님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이뻐했던 게 이젠 충분히 이해가 간다.
가끔씩 봐도 생각이 날 정도로 예쁜 강아지인데 아기 때부터 10여 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가족과도 같을 것이다. 어쩌면 자식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아들 둘 모두 다 장가보내고 두 분이서만 사는 집에 뽀삐가 있어서 빈자리도 조금은 덜하고 웃을 일도 많았을 것이다.
항상 어른들이 뽀삐를 다정하게 부르며 아기처럼 안고 있고 안겨있는 모습이 많이 떠오른다.
. 뽀삐는 그 품에 안겨 잠에 들기도 하고 껌딱지처럼 항상 곁에 붙어 있었다. 웃는 강아지 표정으로 사랑을 엄청 받고 살고 있는 행복한 강아지로 기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