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천천히 다가와도 돼
괜찮아! 나도 그랬으니까. 천천히 다가와도 돼. 기다려줄게.’
내가 강아지를 키우게 될 거라곤 한 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 강아지를 좋아하긴 했지만 겁이 많아서 만지지도 못했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예뻐하는 정도가 다였으니. 내가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정말 내 인생에선 엄청난 사건(?)이다.
그래서 더욱더 나는 준비가 되지 않은 반려인. 강아지 보호자였다.
갑작스럽게 강아지를 키우게 되다 보니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특히 노견의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두렵기도 했고 부담스러웠던 건 사실이었다.
평소에 즐겨보던 강아지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강아지 대통령 강형욱 님이 준비가 되지 않으면 절대 키우지도 말라고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충분히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매일 밤 인터넷으로 강아지 키우기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검색해보는 단어들. ' 노견 키우기. 노견 일상, 요크셔테리어' '이라는 단어. 생소하고 낯설었다. 강아지에 관한 정보들은 인터넷에 자세히 나와 있었다.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수가 많다는 건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동물과 함께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와 정보가 담긴 카페에도 가입을 했다.
뽀삐의 종은 요크셔테리어이다. 작은 체구에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며 영리한 종이하고 한다. 경계심이 강하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에게 공격적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나에게 짖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겁이 많다고 한다. 보호자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라 오랫동안 집을 비우거나 주인이 바뀌면 풀이 죽거나 신경질적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뭔가 지금의 뽀삐의 상황과 굉장히 비슷했다. 조금은 뽀삐가 이해가 되기도 했다.
특히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오랫동안 혼자 두어야 하는 환경에는 적합하지 않고 집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키우기에 적합하다고 한다,
이점이 사실 좀 신경이 많이 쓰였다. . 시댁어른들;’은 은퇴를 하셔서 집에서 머무리는 시간이 많으셔서 뽀삐와 늘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결혼 기간동안 본 뽀삐의 모습근 항상 아버님 품속에 있었던 모습이니까. 반면 남편과 나는 둘 다 개인 사업을 하고 있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평소에 많지 않았다.
남편은 직업 특성상 외부 출장이 많고 일이 늦게 끝날 때가 많고 상대적으로 시간 조정이 좀 더 유연한 내가 뽀삐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뽀삐의 주 보호자는 자연스럽게 내가 되어버렸다.
이제 현실은 당장 둘 다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집에 온지도 얼마 되지 않은 노견을 혼자 8~9시간 두는 게 걱정이다. 지금은 분리불안도 심한 상태이고 잘 먹지도 않아서 우리 부부는 서로의 스케줄을 매일 확인을 했다.
내가 일찍 나가는 날은 남편이 조금 늦게 출근을 하거나 시간을 조정해서 뽀삐를 안심시키려 시간을 함께했다. 오랜 시간 혼자 두게 되는 날엔 일을 하다가도 중간중간 걱정이 되어 집에 들르기도 했다. 낯선 집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혼자서 잘못되진 않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다행히도 일터가 집에서 차로 3분 거리라 점심시간을 틈 타 집에 와서 들여다보면 뽀삐는 꽁꽁 숨어 있었다. 뽀삐야 뽀삐야 이름을 부르면 움직이는 소리로 뽀삐를 찾을 수 있었다. 침대 밑에 들어가 숨어 있기. 옷장 속 바지걸이 밑에 공간에 숨기, 책장과 책상 사이의 아주 비좁은 공간에 머리만 집어넣고 있기.
주로 어두운 곳에 숨어 있었고 내가 와도 나오진 않고 인기척만 조금 내다 다시 숨을 죽여 더 깊숙이 숨어 버렸다,
그중 가장 많이 숨어 있는 곳은 남편의 서재 방 옷장 속이었다. 남편의 체취가 나서인지 옷 사이에 숨어서 눈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어둠 속 옷 사이로 보이는 뽀삐의 큰 눈은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한 눈빛으로 가득했다.
뽀삐는 퇴근한 남편이 오면 귀신같이 알고 현관에 나와 남편에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다.
남편이 안아주니 애교를 부리며 온몸을 비비며 남편을 반겼다. 어머, 둘이 있을 땐 숨어만 있던 낮에 본 뽀삐가 맞나? 두 얼굴의 강아지 같았다. 잠시라도 떨어지지 않고 남편만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남편 근처에만 가도 미친 듯이 짖었다. 내가 움직이는 쪽으로 마크를 하고 남편 옆에 딱 붙어 눈은 나를 감시했다. 내 맘도 몰라주고 나를 경계하는 뽀삐에게 서운했다.
뽀삐는 어디서 자야 하지? 강아지는 집에 들어가서 자는 거겠지? 티브이에서 보는 것과 현실은 많이 달랐다. 뽀삐를 위해 준비한 강아지 집은 쳐다도 보지 않고 낮에 자주 숨어 있는 옷장 안 컴컴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어두운 곳과 몸이 완벽히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야 잠이 오는 듯했다. 그래서 뽀삐가 들어가 숨는 곳에 폭신한 남편의 옷을 깔아주었더니 그제야 맘에 들었는지 그곳이 아예 잠자는 곳, 뽀삐만의 집으로 지정이 되어 버렸다.
16년간 살던 집은 바뀌었고 평생 곁에서 지켜주던 보호자는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은 이유 없이 다가오니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모두 낯선 환경일 테니까.
사람도 누구나 낯선 환경에 다가서면 불안과 걱정에 휩싸이기 마련이며 당연한 일이다.
내가 시골에서 19살에 서울로 처음 상경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도 정말 불안했었으니까. 친구, 가족,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곳에서 마치 무인도에 떨어진 느낌과 같았으니. 낯선 환경에 매일이 불안하고 두려웠었고 밤이 오는 게 무서웠으니 너도 나처럼 그런 거겠지?
나도 적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으니 어쩌면 뽀삐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거다.
지금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만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뽀삐가 마음의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려봐야지. 이제 가족이 되었으니 우리 서로 잘 적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