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리 Oct 30. 2022

누군가의 보호자가 되다

내 생에 첫 동물 병원



뽀삐가 우리 집으로 온 후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나에게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매 순간 나의 눈이 항상 뽀삐를 향하고 있었다.

작은 움직임부터 행동, 표정까지 하나하나 세심히 관찰하며 눈, 코 귀가 뽀삐에게 제일 먼저  집중하며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로 어디에 멈추어 어느  방에 들어갔는지, 어디서 자고 있는지 확인을 하고 냄새로 소변을 눴는지 응가를 했는지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마치  스토커처럼 뽀삐를 실시간으로 꿰뚫게 되었다.  뽀삐가 움직일 때마다 자동적으로 바라보게 되니  우린 서로 눈이 자주 마주쳤다. 뽀삐도 내가 자기를 쳐다보는 걸  의식하는지 슬쩍슬쩍  숨어서 뻬꼼 고개를 내밀어 쳐다보곤 했다. 몰래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사실 귀여워서 일부러 뽀삐를 더 빤히 쳐다보는 날도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매번 뽀삐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숨어서 나를 빼꼼히 쳐다보는 귀여운 뽀삐.




날씨가 추워진 겨울 아침 여느 때처럼 일찍 밥을 먹이고  소파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항상 밥을 먹고 나면 집안을 한 바퀴 순찰을 하며 돌아다니다  뽀삐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자는 루틴인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다른 행동을 했다.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방으로 자러 들어간 뽀삐는 다시 나와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왔다가 반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뽀삐의 모든 배변 활동은  안방 화장실에서만 해결을 하기 때문에 안방으로 들어가 볼일을 보고 나오면 다시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응? 왜 그러지? 나는 뽀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몇 번을 왔다 갔다 반복하더니 소파에 있는 나에게로 와 몸을 들썩이며 왈왈왈 짖었다.  아침 많이 먹었는데 고구마를 달라고? 왜 그러는 거야-?

뽀삐와 함께하는 지난 시간 동안 나를 향해 짖는 모습이 익숙해져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계속 나를 빤히 쳐다보며 짖고 다음날도 화장실을 다녀온 후  여러 번 짖어댔다. 냄새가 나서 뽀삐의 뒤처리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방금 일처리를 한 소변에서 혈뇨가 섞여 있었다.  건강에 분명  이상이 생긴 거 같아서 강아지 혈뇨를 검색해보니 방광염, 요로결석일 경우 그런 경우가 있다고 했다.  화장실 다녀올 때마다 아파서 며칠간 예민하게 나에게 알리려고 계속 짖었구나. 엄마로서의 서투름이 많아서 조금 더 일찍 알지 못해서 뽀삐에게 굉장히 미안함이 컸다.


서둘러  병원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남편은 학교 강의를 나가서  당장 함께 할 수 없었다.  저녁까지 기다리기엔 뽀삐가 너무 힘들 것 같아 어떻게든 혼자 데리고 가보기로 했다. 음. 내가 뽀삐를 혼자 안을 수 있을까. 사실 혼자서는 뽀삐를 안아 본적이 그때까진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만지려 손을 뻗으면 몇 개 남지 않은 두세 개의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거렸고 도망을 쳤다. 사실  으르렁거리면  무섭기도 했다.  

용기를 내어 뽀삐에게 다가가 뒤에서 뽀삐의 몸통을 잡았다. 웬일인지 으르렁거리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었다. 뽀삐를 들어 처음 안아보니 무척이나 가벼웠고 작았다. 아직은 내가 무서운지 심장이 굉장히 빠르게 뛰었다. 감싸 안은 뽀삐의 몸은 참 따뜻했다.

뽀삐를 안심시키기 위해 두 손으로 몸을 포근히 감싸주며 괜찮다며 다독여주었다. 순간 내 마음이 전달되었을까.  뽀삐는 온전히 얼굴을 내 팔에 가만히 기대었다. 나를  믿고 안겨있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이 순간은 오롯이 뽀삐와 나 , 우리 둘 만이 느낄 수 있는 교감을 하는 것만 같았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동안은 밥 주는 사람. 주인으로 역할을 했다면  뽀삐를 가슴에 안고 느껴보니  이제야  진정한  뽀삐의 보호자가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병원을 가는 동안 뽀삐는 나의 품 안에서 얌전히 곁을 내어주었다.






-처음으로 동물병원을 가다.



뽀삐의 보호자로 간  동물병원  대기실.


내 인생의 첫 동물병원. 잔뜩 긴장한 뽀삐와 더더욱 긴장한 나의  첫 동물 병원의 풍경은  굉장히 낯설었다.  

접수창고의   간호사들은 바쁘게 일을 하고 대기실엔 수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들을 안고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너무 많이 있어서 놀라웠다.

모든 보호자들이 강아지를 꼭 안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진료를 기다리 모습이었다. 아파서 소리를 끙끙 내는 강아지, 눈물을 흘리는 보호자, 보호자 품에 안겨 얌전히 기다리는 강아지. 처음 보는 광경들은 낯설기도 하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수많은 감정들이 교차했다. 그 안에 있는 모두의 마음이 하나의 울타리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모두가  똑같은 마음이라 생각되었다.


‘ 뽀삐 보호자님! ‘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호칭에 흠칫 놀라 미어캣처럼 고개를 들었다. 다시 한번 뽀삐 보호자님을 찾는 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뽀삐를 안고 검사 방으로 향했다. 의사와 마주한 뽀삐는 잔뜩 긴장한 듯 꼬리를 웅크리고 있었다. 복부 초음파와 방사선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예상대로  요도에 결석이 생겨있었다.  결석의 크기도 크고 요도를  막고 있어서  그동안 많이 불편하고 아팠을 거라고 했다. 되도록 빨리 요로를 절개하는 방법으로 수술을 해서 제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견디기 굉장히 고통스럽고  그대로 방치하면 방광 파열이나 신부전으로 생명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급하게  그날 바로 입원하기로 했다. 큰 수술은 아니지만 뽀삐는  노견이라 마취 문제부터 절개 후  회복 문제  때문에 사실  걱정을 많이 되었다.

입원 수속을 밟고  담당 수술  선생님  손으로 뽀삐를 넘기는 순간, 뽀삐는 나를 쳐다보았다. 겁먹은 뽀삐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께 잘 부탁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입원실 문이 닫히고 뒤돌아섰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보호자가 맘이 이리도 약하다니.

어찌 된 일인지 40살 넘어 뽀삐를 만난 후 왜 이렇게도 눈물이 많아졌을까.

뽀삐가 수술을  잘 견뎌줄까. 나처럼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데 잘 있으려나. 이빨이 없어서 습식사료를 줘야 하는데 밥을 잘 먹여주는 걸까.

6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밀어내고  결코 자리를 내어주지 않던 뽀삐였지만 알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애틋함 감정이 생겼다.  

 나는 어릴 적부터 평소에 자주 아픈 편이었다. 그래서 병원을 자주 갔다. 대학생이 되어 결혼하기 전까지 서울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  여전히 여기저기 자주 아팠다. 혼자서  병원을 가게 되면 누군가  내 곁에 보호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당장 올 수도 없었고 걱정을 안겨 드리고 싶지도 않아서 다 나은 후에야 말씀을 드렸다. 응급실 병원 침대에 누워 혼자 아픔을 견디는 시간들은 가끔은 쓸쓸하고 서글프기도 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뽀삐가 눈에 밟혀서 혼자 두는 게  순간 마음이 아팠던 것 같다.



걱정스러운 맘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집안이  휑한  적막감이 들었다. 덩그러니 놓인 밥그릇. 뽀삐의 애착 이불. 이곳저곳 집안 곳곳엔 뽀삐의 흔적들이 있었다. 이젠 뽀삐가 없는 일상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보다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들을 즐겨하고 외출을 좋아했던 나의 삶이 이렇게 뽀삐에게 집중하며 집순이로 완전히 바뀌어 버릴지 몰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뽀삐와 집에서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니.

삶의 감정과 태도가 뽀삐로 인해 달라지게 되었다.




엄마, 난 괜찮아요-! 걱정마요.



늦은 오후가 되어서 동물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회복실로 옮겨져서 수액을 맞으면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뒤이어  2장의  사진도 함께  보내주셨다.

사진 속 뽀삐는 수술 부위에 붕대를 감고 목에는 넥 카라를 하고 있었다. 팔에는 링거 주사가 꽂혀 있었다.

뽀삐는 큰 두 눈으로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엄마,  나 괜찮아요. 걱정마요 '

사진을 보자마자 또다시 눈물이 났다.  잘 버텨줘서 고마웠다. 어서 집에 가자.


3일간 입원을 하고 퇴원하는 날. 남편과 뽀삐를 데리러 병원으로 갔다. 아직 실밥을 뽑지 않는 상태라 혀로 수술 부위를 핥을 수 있어서 며칠간 넥 카라를  해야 했다.   뽀삐는 우리를 보자마자 귀를 쫑긋 세웠고 작은 소리로 월! 하고 짖었다. 힘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넥 카라 위로 손을 슬쩍 내밀어 놀라지 않게 냄새를 맡게 했다. 어쩐 일인지 혀로  나의 손을 핥아주었다.


수술 후 주의 사항을 듣고  앞으로는 강아지 결석 사료만  먹이고 물을 자주 먹이라고 하셨다

뽀삐와 친해지기 위해 가끔은 유혹할만한  음식을 주기도 했는데 이젠 먹는 음식도  철저히 지키기로 했다.

집으로 와서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불편한 몸으로 제일 먼저  밥그릇 앞으로 달려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밥 달라고 하는 거 보니 괜찮은 거 맞는구나.   뽀삐는 당시 16살의 노견임에도 불구하고 걱정과는 달리 하루하루  회복도 굉장히 빠른 편이었다. 관리만 잘한다면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뽀삐를 챙기며 돌보는 일이 처음에는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변화시키며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 봄이 오는 따뜻한 계절이 되면 네가 좋아하는 꽃냄새 맡으러 가자!  



꽃을 좋아하는 뽀삐. 매년  우리 함께하자.



이전 08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해 줘서 고마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