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경상도 어느 시골에 있습니다.

어느 시골마을에서 빵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by 또또

대학교 졸업 후 바로 취직을 했다. 누구보다 빨리 일자리를 가져 경제적인 안정감을 갖고 싶었기에 무작정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전주 토박이가 광주광역시로 내려가 살게 되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서울도, 세종도 아닌 남쪽 도시로 가게 될 줄이야.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 3년을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투자금 마련이었다. 내일체움공제로 3년을 버티면 3천만 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오직 그 돈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회사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고,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건지, 일 할 때 행복한지 생각할 틈도 없이 1년, 2년, 그리고 3년이 지나갔다.


2021년 11월, 3천만 원이 내 통장에 찍혔다. 여기에 내가 악착같이 모은 3천만 원이 더해져 총 6천만 원이 내 손에 들어왔다. 지방 소도시 투자를 위한 자금이 모아진 것이다. 운이 좋게 고향인 전주로 인사이동을 하게 되어 몸테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3년 만에 다시 전주로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다. 블로그를 통해 투자 방법을 분석했고, 강의와 유튜브로 부동산 투자를 알아갔다. 하루 종일 출장을 다녀와도, 야근으로 밤 10시에 돌아와도, 주말이 돼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들어갈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았다.


첫 번째 임장, 부모님과의 동행

공인중개사에 전화해 무작정 약속을 잡았다. "내가 지금 뭘 한 걸까?", "취소할까? 아니야, 극복해야 해!" 미치도록 무서웠다. 그리고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같이 가자고, 같이 가달라고... 부모님은 투자를 해보신 적이 없는 분들이셨기에 나의 이런 행동에 화가 나셨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고 결국 부모님 동행 하에 공인중개사를 만났다. 그렇게 아무런 성과 없이 기름값과 밥값만 나간 채 아파트 구경만 하고 왔다.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과 함께...


두 번째 임장, 그냥 아는 사람과의 동행

임장이라고 할 수 없는 첫 번째 임장 이후, 자신감은 바닥을 쳤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부모님 몰래 경제독서 모임을 하고 있었고, 모임 멤버 중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분과 약속을 잡았다. 갖고 싶었던 그 아파트를 또 보러 갔다. 낯선 남자분과의 동행은 숨 막... 아니, 어색했다. 극강의 I(mbti)를 자랑하는 나는 차 속에서 말을 지어내느라 힘을 다 쏟았다. 이 날도 역시 아파트 구경만 잘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임장, 나 홀로 떠난 거래를 위한 임장

네이버 알림 설정(해당 아파트 매매 알림)을 했다. 네가(대상 없는 그 누구)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계속 지켜보았다. 그리고 급매의 냄새가 나는 매물을 잡았다. 바로 공인중개사에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았다. 이번에는 정말 나 혼자였으나,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일을 추진했다. 부모님 몰래 나 홀로 임장을 떠났고, 어쩌다 보니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첫 투자이다.


2022년 6월 17일, 잔금을 치르기 위해 연차를 썼다. 부모님 모르게 가는 이 길이 어찌나 불편하던지, 아침에 눈을 제대로 못 마주쳤다. 그렇게 나의 첫 계약은 거창할 것 없이,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아 허탈했던 것일까, 계약서를 들고 돌아오는 길이 허무했다. 기뻐서 난리 쳐야 하는데, 행복해서 낮술이라도 해야 하는데, 공허했다.


이 집을 위해 달려온 지난날들이 맞는 길이었을까? 옳다고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왜 기쁘지 않은 걸까? 내 나이 27살, 앞으로도 이렇게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고 회사를 나가는 길이 지옥이었다. 투자를 위해 버텼던 하루하루였기에, 또 다른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맞지 않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물 밀듯이 몰려왔다.


나는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행복해하는 일,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 좋아하는 취미를 모르고 있었다. 돈만 쫓다가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를 정말 잃어버릴 것 같아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고, 2022년 8월 백수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는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투자를 위한 인생은, 돈이 목적인 인생은 공허하다. 돈은 인생의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대가로 백수가 되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2022년 10월 현재 나는 경상북도 의성군 어느 시골에 살며,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빵을 만들면서 말이다.


앞으로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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