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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 달려본 남자 Sep 18. 2024

내딸의 딸 (4)

두여자의 배신

1. 에르메스 백

이전에 딸이 아이를 낳으면 나는 돌봐줄 수 없다고 선언을 했었다. 이미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대부분의 노년을 자식들의 아이들을 돌봐주다가 어디가 아프느니? 여행을 못갔느니? 하는 고생하는 상황들에 대해 드라마에도 나올정도 다 알려져 있지만 그것때문이 아니다. 


나는 34년동안 회사를 다니다 은퇴했다. 내딸을 대학원까지 보낼때까지 돌봤다.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내딸이 자기 자식을 키워야지 내가 왜 키우나? 그래서 나는 내딸의 딸을 돌보는 것을 초기부터 거부했다. 

나도 은퇴후 내인생이 있고 이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일한만큼 이제는 쉬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보니 내딸의 딸 육아가 옆에 있었다.

"할아버지가 안으니 애가 더 좋아하네!" 칭찬에 자꾸 내딸의 딸을 안고 나도 모르게 돌보게  되었다.

어하다 보니 일주일에 두번가는 자문일을 제외에는주간일상의 80% 내딸의 딸을 돌보는 일이고,  좋아하는 '최강야구' 나 UFC경기를 한번도 못봤다.


어느날 아이를 나에게 맡기고 동네 아줌마 독서모임이 있다고 외출하는 아내가 얇은 가죽으로 된 조그만 가방을 들고 나간다. 사이즈도 작고 위도 오픈 되있는 ECO백 같은 것을 들고 나가는 아내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심상치 않다. 

동네 아줌마들 모임에 가는데... 뭔가 자랑하려는 느낌인데....

집안에 진한 주황색 쇼핑백이 어느날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다. 분리 수거를 하려고 했더니 냅두란다...?


뭐지? 나도 핸드폰이 있다 '구글렌즈'를 사용하고 쇼핑백과 아내가 들고 나갔던 백을 검색했다.

헉 저건 '에르메스 백'이다.....!

난 직장생활하면서 아내에게 명품백을 사준적이 없었고 은퇴이후 더욱더 그런 여력도 없다.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그게 뭐냐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내딸의 딸을 돌봐준다고 딸이 선물로 사준거란다...


아!...  아내의 내딸의 딸을 돌볼 때 잔소리가 다 이유가 있었나? 이거 배신이야!

딸이 임신하자 아내가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 양성과정'을 한달간 다닐때만 해도 딸의 집에 가서 아이를 돌보는 줄 알았다. 아내가 집을 비우면 고산지대 트레킹을 좀더 자주 갈 수 있다고 행복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내는 진짜로 내딸의 딸을 사랑하는 것을 안다.

아내가 충분히 선물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딸이 엄마에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도 기특하다. 나도 못 사준 명품백....!


내딸의 딸 할아버지는 그런 것 없어도 내딸의 딸을 잘 돌볼 수 있다.


내딸이 사위와 어제저녁에 와서 내딸의 딸과 같이 잔다. 

오늘 아침 아내와 아침에 일찍 나가 콩나물국밥을 먹고, 아침일찍 여는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셨다. 

짧은 시간에 자유가 달콤하긴 하다.

아내는 내딸이 사준 백을 들고 나갔다.


2. 자식은 부모를 알아본다

내 딸이 바쁘다. 

이전 러시아의 유튜브 인플로언서로 활약하면서 화장품 사업을 하던 것이 점차 주변 국가들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자기자식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다행히 아이를 우리집에 맡겨 놓은 후 안심이 되는지 사업에 좀더 신경쓰고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등에 출장과 새로운 화장품 바이어들을 만나고 다니느라 일주일 에 오는 날이 뜸하다.


나는 내딸의 딸을 기술자문으로 나가는 날이 아니면 새벽 부터 저녁까지 같이 있으면서 청소, 우유, 세탁기 돌리기, 기저기 갈기, 놀아주기 등 나름 내딸의 딸과 계속 붙어 있으면서 돌본다.


일주만에 내딸이 왔다. 자기 엄마는 귀신 같이 알아본다.

내품의 있던 내딸의 딸이 내딸 품으로 자동으로 옮겨 간다.


난 뭐야!  내딸의 딸의 배신을 보면서 그래도 흐믓하다. 일주일이 지나도 내딸을 알아보고 찾아가는게 좋다. 할아버지와 평생 살 것도 아닌데...  다 커서 할아버지를 기억이나 할까?


엄마가고 나면 두번 안아 줄 것 한번만 안아 줄거야! 그래도 서운한 할아버지는 소심한 복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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