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딸의 딸 (9)

우리 집과 우리 집

by 좀 달려본 남자

우리 집과 우리 집 사이


딸은 시집을 갔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아들도 약 4년 동안 일본에 공부하러 갔었다.


아들방과 딸의 방은 그대로 두었었다.

집에 방이 3개였지만 아내와 둘이서 방하나와 거실만 사용해도 충분하기 때문이었고, 아들은 일본에서 다시 돌아올 것이고 시집간 딸이 집에 왔을 때 자기 방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방 2개를 그대로 두었다.


지난해 아들은 일본에서 돌아와 취직을 하여 자기 방으로 들어와 산다.

딸과 사위는 서울에 임대아파트에 들어가 결혼하고 내 딸의 딸을 낳기까지는 거기가 생활의 터전이었고 한 달에 한두 번 간헐적으로 집에 왔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지난 8월 초에 내 딸의 딸이 수원에 있는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거실을 점령하고 주간에는 암막커튼이 있는 안방에서 낮잠을 자기 때문에 나의 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거실에 있는 TV로 최강야구도 보지도 못하고, 안마의자는 사용해 본 지 몇 개월 됐고, 아기이불 말리는 장소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딸의 딸이 수원 우리 집에 있다 보니 내 딸의 출입이 점차 잦아지더니 사위와 함께 거의 일주일의 반이상을 시집가기 전 자기 방에 머무르면서 손님처럼 다녀 간다.

자기 새끼는 보고 싶은가 보다!


하지만 아이 보는 것도 힘든데 아내는 내 딸과 사위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그것도 한두 번, 힘들다고 뭐라고 했더니 이제는 주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데, 가고 나면 배달음식을 담았던 일회용품 쓰레기가 한가득 식탁을 뒹군다.

또 청소를 내가 해야 한다.

수원에 있는 집이 다시 내 딸과 내 딸의 딸 '우리 집'이 되었다. 내 딸은 서울에 있는 임대아파트 자기 집도 또 '우리 집' 이란다.

이제는 필요한 택배도 주소를 수원 우리 집으로 써서 받는다. 박스등 분리수거양이 만만치 않게 많아졌다.


내 딸이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도 '우리 집으로 택배 보내' 라며 수원이 있는 집을 우리 집이라 부르며 수다를 떤다. 서울에 있는 딸의 집은 거의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아 냉장고 음식들이 상할 정도가 되어 가고 있단다.


아기를 보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 "내 딸의 딸을 볼래 아니면 집안일할래" 할 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집안일을 선택했다. 덕분에 집안 청소, 설거지, 빨래 세탁기에 넣기, 아기용품 소독하기, 보리차 끓이기 등 가사노동에 시달리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은 없어졌다. 내 딸이 수원집에 와서 내 딸의 딸을 돌볼 때 이제는 슬며시 나와서 근처에 있는 이디야커피로 향한다.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그나마 한숨을 돌리며 쉴 곳 거기뿐 이다.

아내도 내 딸이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면 외출해서 뽕을 뽑을 정도로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들어온다.

집에서 타이밍을 놓쳐 어정쩡하게 머물러 있으면 내 딸이 내 딸의 딸을 우리에게 슬쩍 맡기고는 방으로 들어가 핸드폰 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육아 및 가사에 시달리고 거실을 점령당해서 쉴 곳이 없어진 우리 집이 되었지만, 이제는 며칠 동안 출장으로 떨어져 있다 와도 잘 알아보고 반겨주는 '내 딸의 딸'이 있기 때문에 좋기는 한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동차 엔지니어(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