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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이별편지

단편소설

작별하는 일은 너무 슬픈데 말이야. 그럼에도 우리가 작별하지 않는다면 무엇을 사랑했다고 말할까.


고통을 느끼면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 쇼펜하우어를 생각하며 고통의 점도를 1부터 10이라고 한다면 나는 5 이상의 삶에 대해 고민해보곤 했어. 태어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쓰레기통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아이. 상상할 수 없는 범죄의 피해를 당하여 쓰러져가는 사람들. 전쟁 속 가족을 잃고 터덜터덜 국경을 넘는 피난민 등등. 그들을 생각할 때면 달마의 말을 생각해 보곤 해. 그들이 쇼펜하우어의 말을 옳다고 한다면 겸허히 들어줄 수밖에. 나는 감히 그들의 삶을 살아보지도 않았으니깐 말이야.


그들의 세계와 조금 다른 나의 세계에선 말이야. 우리가 이별하지 않는다면 그건 무엇이 될까 생각해 보았어. 만남과 사랑이 고통 없이 영속할 수 있다면 말이야. 드라마 속 주인공의 가슴 아픈 이별에 감정이 덜컥 내려앉을 수 있을까. 이별 노래들을 들으며 눈물이 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날까 불안해하는 날이 한순간도 없어진다면 말이야. 우린 슬프지만 찬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슬픔이란 감정도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만 한다면 말이야.


나는 많은 순간을 작별하는 마음으로 살아. 순간에 몰입하기도 질문하기도 그리고 나태한 마음조차 최선을 다하지. 가끔 지나쳐서 상대의 오해를 사기도 해. 내가 쉽게 마음의 문을 연 것처럼 착각하더라. 난 더 높은 내 마음의 장벽은 중요하지 않을 그들의 반응을 관찰하지.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다다른 순간과 당신과 끝이 다가온 순간이 느껴지더라고.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헤어지는 일에 익숙해지나 봐. 처음엔 가족, 친구, 연인 그 어떤 이별도 아프기만 했는데 말이야.


나는 그날 사실 삶에 지쳐있었고 아무런 말도 없이 네가 사는 곳으로 향했어. 그리고 너에게 만나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지. 넌 늦은 시간임에도 나를 만나러 나왔어. 그리고 우린 우리가 만났던 소셜모임에서 얘기하듯 자연스레 삶과 죽음이라는 심오한 단어들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어. 


너는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세상이 살아가고 있는 주체인 자신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가상현실일 수도 있다고 말했어. 그리고 과학계에선 이러한 이론이 주장되고 있다고 말했지. 타자는 나라는 사람의 생이 존재할 때만 유의미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지. 나는 과학적 지식이 부족함에도 당당히 너에게 맞섰어. 그렇다면 지금 너에게 말을 거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주체인 세상에서 살고 있을 테니 두 세계는 충돌할 수 있다고 그러므로 자신과 타인 모두 살아있는 주체라고 말이야. 


네가 두려워하는 거라고 말했던 ‘죽으면 영원히 소멸하는 거라고 아무것도 아닌 「무」라고 그 이상 이하도 없는 거라며 그게 과학’이라고 말했잖아. 곰곰이 생각해 보다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온 어느 날 날씨가 선선해 꽃이 흔들리는데 깨달음이 오는 거야. 우린 소멸하는 게 아니야. 죽으면 우린 흙으로 돌아갈 테지만 그 흙은 꽃이 되고 풀이되고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어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거야. 수십억 년이 흘러야 다시 만날 그 사람들은 선선한 여름날의 바람 속에서 존재하는 거야. 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그날 내가 너에게 말했지. 네가 죽어도 내 세계에 너란 흔적은 남을 테니 각자의 세계가 끝나는 순간이 와도 기억될 거라고. 너는 나의 말이 어렵다 했어. 대충 느낌은 오는데 의미심장하다고. 이건 나의 세계의 언어니까 너의 행성 언어와는 다를 테지. 난 자주 너 자신조차 덮어두었던 마음을 알아차리고자 노력했던 것 같아. 우린 그때 나의 할머니, 너의 할아버지를 보내는 과정이 지난하게 슬펐던 모양이야. 서로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이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카페서 일어나지 않았지. 나는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은 모습을 너는 네가 할아버지를 기억하고 싶은 모습을 서로에게 설득시키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이것은 소리치지 않는 사랑 해라고 말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어. 서로에게 그리고 서로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이야.


그리고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지 못한 것 같아. 


아마 내가 바라는 건 수십억 년이 지나서라도 만나는 일보단 다시 만났을 땐 네가 휴머노이드이든 클론이든 인간이든 나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나길. 네 자신도 휴머노이드일 수 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날에 우리 다시 만나길 바라. 그땐 내 세상이 가상현실이라도 네가 형체 없이 데이터만 백업된 상태라도 기꺼이 기다리고 있을게. 이게 내가 헤어질 결심을 한 이유니까.


만약 작별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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