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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Oct 22. 2023

그녀와 참다랑어

단편소설

고민을 들은 동수는 그녀의 팔목을 잡아챈 후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생각이 막힐수록 속이 든든해야 머리도 잘 돌아가는 법이라고. 내심 그 말이 맞길 바라며 그녀는 마지못한 척 그를 따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한 일식집이었다. 


일식집 초입에는 [오늘의 해체쇼-참다랑어]라고 적힌 조그만 판넬이 높게 솟아 도열한 대나무 사이에 세워져 있었다. 


“참다랑어면 참치? 난 글이 안 써진다고 했지. 무슨 참치야.” 그녀가 말했다. 


“일단, 들어가. 보여줄 게 있어서 그래. ” 동수는 대답했다. 


둘은 오픈되어있는 주방과 가장 가까운 바 자리에 착석했다. 이내 식당 내의 조명이 차분히 가라앉더니 주방 쪽에 있는 도마로 옮겨갔다. 건장한 직원 대여섯 명이 냉장고 크기의 거대한 황색 박스를 들고 와 도마 위에 올렸다. 그리고 박스를 뜯으니 은박 스티로폼 재질의 비닐. 그것마저 벗겨내니 110kg의 무게감을 여실히 드러낸 생선이 나왔다. 


직원들이 세팅을 마치자 메인 셰프(chef)가 등장해 목례를 했고 식당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셰프는 날이 바짝 선 식칼을 집어 들고 참치의 아가미를 왼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칼을 아가미 사이 벌어진 틈으로 깊숙이 넣었다. 먼저 아가미 모양을 따라 머리를 동그랗게 도려내었고 꼬리는 수월하다는 듯이 댕강 잘라냈다. 그다음 가로로 누워있는 참다랑어 배 중앙에 15센티미터 정도의 칼집을 만든 다음 장칼을 칼집에 넣어 꼬리를 향해 갔다.  


동수는 이제 참 다랑어가 크게 네 덩이로 잘려 나갈 거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증명하듯 셰프는 제일 먼저 오른쪽 하단을 자르고 등뼈를 기준으로 남은 윗부분을 마저 도려냈다. 그러자 참치뼈가 온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참치 뼈에 붙은 살을 수저로 박박 긁어내기 시작했다. 아주 적은 살이지만 저것만큼 맛있는 부위는 없다고 동수가 말했다. 


여기까지 해체가 이루어졌을 무렵, 셰프가 남은 부분을 처리하지 않고 해동지로 덮어놓은 채 말했다. 


“오늘은 기존 루틴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해체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아마 어디서도 보지 못한 해체의 방식일 것입니다. 아까 수저로 긁어낸 등뼈 살을 해체하는 과정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해체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부위를 해체하는 이유는 해체쇼에 새로움을 더하면서도 손님의 니즈를 충족하기 위함입니다.”


쉐프는 긁어낸 등살에 얇은 칼집을 내어 꽃 모양을 만들기도, 얼핏 봐선 구별이 안 가는 미세한 지방과 살코기를 분리해 우리 접시 앞에 내려놓기도 했다. 


동수는 자기 앞에 놓인 한 점을 집어먹으며 말했다. 


“내가 요청한 거야. 아까 네가 털어놓은 고민 중에 첫 번째 내용과 닮아 있지 않아? 네가 좋아하면서도 소위 잘 나가는 작가들을 설명할 때 이런 느낌인 것 같았어. 장황한 네 말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특징은 바로 이거지.”


그녀는 자기 접시 앞에 놓인 생선 조각을 먹지 않고 집은 채로 이리저리 훑어보기도 펼쳐보기도 동수가 먹는 걸 지켜보기도 했다. 그리곤 나지막이 읊조렸다.


“생소하지만 섬세한 것. 그리고 할 필요 없는 부위를 건드려 새로움을 내는 일. ”


그러고는 갑자기 젓가락을 탁 내던졌다. 


“그래. 그들은 이렇게 주인공의 감정을 이렇게까지 섬세하게 해체해서 드러내 버리지. 일상에선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그 감정들 말이야. 그걸 해부하듯이 낱낱이 드러내고 그것은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라고 말하지. 


그 사이에서 나는 써야 하는 사람으로 답답한 거야. 질투, 권태로움이 불러일으키는 유혹, 돈을 향한 무지성 욕망, 양가감정, 자기애, 회피와 같은 현실에서 말을 꺼냈다간 복잡하거나 생각이 너무 많은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제들. 


그들의 소설에선 이런 주제들이 그냥 당연하고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지. 그러니까 세밀하게 조각될 수 있는 거야. 그렇기에 아마 그런 주제들은 이미 유명해진 사람들이 쓸 수 있는 특권 같은 게 아닐까. 뭐가 유명하냐고 하겠지만, 그들만의 세계에선 이미 그들은 데뷔를 한 아이돌 같아. 연습생에겐 그마저도 유명세인 거지.


알아. 나도. 흔들리지 않고 써야 한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단 사람들의 혹평이 두려워. 마치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이 가끔 틀렸다고 생생하게 속삭이는 것 같아.”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셰프는 해동지를 걷고 남은 조각들로 가마살, 대뱃살, 배꼽살 그리고 뽈살까지 자신 스타일을 담은 반듯한 모양으로 조각하고 있었다.


이마에서 소매로 떨어질 뻔한 땀을 닦아낸 셰프는 마침내 뾰족하면서도 앙상한 하얀 뼈만 남긴 채 말했다. 


“드디어 완성입니다. 참다랑어 해체쇼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을 추억하기 위하여 남은 것을 가장 필요한 분께 드리겠습니다.”


그는 110KG였던 것이 무색해진 만큼 가벼워진 생선 뼈를 양손으로 든 다음 그녀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놀란 눈을 하고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셰프는 으쓱하며 그녀 앞에 놓인 그것을 보라는 듯 양손을 모아 내밀어 보였다. 그녀가 시선을 내렸을 때 참치는 뼈만 남은 것이 아니라 전혀 해체되지 않은 웅장한 처음 모습 그대로 그녀의 식탁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손님, 해체쇼 중 친구분과 나눈 대화 속에서 손님이 느낀 '신 해체주의'라는 것이 이렇지는 않았나요? 실컷 공을 들여서 사건과 주인공을 해체하고 이야기를 조각내기 시작하죠. 그리고 결말에 다다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야기를 뒤틀어버려요. 마치 다시 원래의 모습이 된 것과 같은 이 참다랑어처럼 말이죠.


그러니 독자들은 압도되는 것이고요. 오늘의 쇼를 닮은 이런 문학들이 높이 평가가 되는 것이죠. 이것은 손님께 드리는 저의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체할 건지는 손님의 몫이 될 겁니다.” 


식당 직원들은 그녀 앞에 놓인 참다랑어를 옮겨서 아이스 팩으로 가득 찬 스티로폼에 담았고, 냉동 탑차를 이용해 집까지 배송해 준다고 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도 모른 채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동수와 함께 차를 탄 그녀가 말했다. 


“동수야, 나 이제 저거 어떻게 하지?” 그녀가 얼떨떨한 표정을 하며 동수에게 물었다.


동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했다. 


“계속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유명한 셰프들이 어떻게 저 커다란 생선을 해체하는지 관찰하면서 배우고 너 스스로 직접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지. 새로움이란 건 무無에서 탄생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유有를 시도해 보다 나오는 거지 않을까. 그게 참다랑어든 너의 글이든.”


“오늘 신 해체주의 같은 날이네. 어렵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내 숨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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