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너비미 Feb 29. 2024

잠들지 못하는 밤은 그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단편 소설

[어디예요? 지각이에요! 이거~] 그녀는 그가 일하다 늦었다는 것을 알지만 장난치듯 문자를 보냈다.


[다 왔어. 금방 가] 그는 늘 그렇듯 투박하게 답을 보내왔다. 메시지를 받고 지하철 출입구를 확인하자 그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엔 얼굴이 그다음엔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에게 웃어 보였고 오랜만에 만난 그녀가 과연 나를 향해 웃어줄까 두려워 얼어버렸던 그의 마음도 녹아내렸다. 그렇게 둘은 인사를 생략한 채 한 뼘 간격을 두고 식당으로 향했다.


“오, 많이 발전했는데~식당도 찾아보고.” 그녀가 슬슬 분위기를 띄웠다.


“사람이 발전을 해야지~”그는 매번 똑같은 말을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했다. 그녀와 그의 대화패턴이 기시적이라는 것은 그들의 관계가 꽤 익숙하다는 사실의 방증이었다.


그녀는 그가 찾은 식당의 외관보다 그가 하지 않던 노력을 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그들은 식당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에 앉았고 음식을 주문했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이 서로의 얼굴을 더 돋보이게 했다.


“결혼생활은 어때?”


그녀의 물음에 그는 역시 그녀 다운 첫마디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워밍업 따위는 없었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동그란 눈을 가진 소녀 같다고나 할까.’ 그는 생각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어?’라는 것이 그녀가 묻고 싶었던 진짜 질문이었다. 그녀는 진짜 이게 궁금했다. 도피처로 선택한 곳에 정말 낙원이 있을 수도 있는 확률말이다. 예외가 있다면 그에겐 허용되기를 빌었다.


“좋아…” 그가 말했다. 그는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걱정되었다. 열심히 인생을 살면서도 마치 숙제를 하는 듯한 그가, 버진로드를 걸어가기 전에 천장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던 그가 말이다. 그를 보며 그리고 그를 생각하는 자신을 보며 그녀는 흔들리지 않기 위한 몸짓들은 얼마나 애가 닳는가 생각했다.


“있잖아, 나는 늘 네게 말할 때 고민을 해. 너와 나는 참 다른 사람이면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어. 속력이 다르기 때문이지. 그래서 내가 말할 때 네게 어떤 세계를 열어줄까 봐 겁이 나. 그 세계는 네가 한 선택들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난 네가 슬퍼지는 걸 원하지 않거든.”


그녀는 망울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눈빛이 그에게 단 한 가지 답변만을 꺼낸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말해…” 어차피 그녀는 말을 하고 싶었고 그녀의 말이 자신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는 늘 듣고 있었다.


“잠 못 드는 밤은 너와 나만의 전유물은 아닐 거야. 그러나 너와 나의 밤은 여전히 특별해. 그것은 우리 둘만이 이 모든 이야기의 주체이기 때문이야.” 그녀의 말을 경청하던 그는 그녀가 또 그녀만의 시간에 말을 예리하게 갈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든 뒤돌아서서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은 알 거야. 모든 선택에 최선인 사람이었으니까. 우리가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 그럼에도 너의 내딛는 걸음을 멈추게 할 생각은 없어. 그건 네가 내린 최선의 선택이니까. 너란 사람의 자율성에 맡겼고 그걸 해치고 싶지 않아. 그러나 네가 내디딘 걸음의 끝이 설령 고통이라면, 그 시간은 오직 너 자신만을 깨우는 시간이 되어야 해.”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여전히 예민하네. 힘들지 않아? 좀 내려놔…”


그가 말했다. 그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그 생각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예민하다는 말, 옛날엔 싫었는데.. 받아들이니까 편해졌어. 혹시 그거 알아? 더 많이 볼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고 더 슬플 수 있어. 온연히 삶을 살아낸다는 거야.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하지 마. 나 너한테 그런 말 한 적 없잖아. 네 마음만 받는다 해도 그 말은 여전히 아파.”


그녀는 결국 마지막에 툴툴거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왠지 모를 슬픈 눈빛을 띄고 있었다.


“요즘은 출근길에 사람을 관찰해 봤어.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고 일을 하잖아. 사람들을 관찰하다 보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지 못했어. 점심 때는 구내식당에서 나는 먹기 싫은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고 건너편에 앉은 사람들은 내가 일어서려는 움직임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더라고. 마치 야생에서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초식동물처럼 민감하게 말이야. 혼자 먹는 밥을 어색해하고 웃기지 않은 팀원의 말에 웃어주면서 말이야. 과연 그곳을 벗어나면 그들은 자유할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지치거나 힘들거나 서로를 이용하고 있어 보이는데 말이야. 해가 갈수록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인지, 내가 나이를 먹고 있는지는 모르겠더라. 그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 해방되었나? 결국 수단이 그들을 잡아먹지 않았나 생각했어. 인간은 언제 해방이 되는 걸까. 나는 진정 해방되었나라는 생각 말이야.”


그녀는 잠시 말을 쉰 채로 그를 응시했다. 고요하게. 그리고 다시 말했다.


“요즘 많이 힘들지? 그러니 잡아 먹히지 말라고, 너만은.” 그녀는 거기서 말을 마치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남은 술을 그녀의 잔에 따랐고 그와 그녀는 마지막 술잔에 든 술을 넘기며 잠시 생각에 잠겼고 이후 식당을 나왔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계단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