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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찰스 Jul 01. 2016

반하다, 첫 눈에.

사랑 편

- 반하다, 첫 눈에. -


당신은 내 곁에 머물러줄 건가요? 당신은 나의 사랑이 되어줄 건가요? 내가 지키지 못했던 약속들도 있지만, 난 쉽게 약속하는 사람은 아니랍니다. 맹세할게요. 우리, 이 생이 끝날 때까지, 금빛 들판을 함께 걸어요.

- 황경신, 『국경의 도서관』중.


K가 그녀를 처음 본 날 나눴던 대화는 단 두 마디였다. 감사합니다. 와 잘 먹었습니다. 그녀는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었고 K는 그녀가 비운 접시를 치워주던 서버였을 뿐, 대화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두 마디에는 그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었다.


그녀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 K의 세계는 흔들렸다. 그녀의 걸음걸이, 그녀의 젓가락질, 와인잔을 두 바퀴 돌리며 향을 음미하던 모습에 깃든 기품, 특히 그녀가 지인들과 나누던 대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음정과 손짓들은 그동안 K가 살았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도무지 이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던 그녀를 보며, K는 얼마 전에 읽은 책 한 구절이 떠올랐다. 줄리엣이 로미오를 처음 만난 날, 줄리엣은 그들의 만남이 그토록 기다려오던 운명임을 단 번에 알았다고,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고 적혀있던.


그러나 K는 줄리엣이 느꼈던 운명적 사랑이라거나 드라마틱한 끌림을 느끼는 게 아님을 확신한다. 그거야 물론 그녀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품과 품격을 보고 있자면, 제깟 게 다가설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K는, 그녀를 마주한 일이 생에 다시없을 법한 행운이었다고는 해도, 만약 운명의 바퀴가 구르고 구르다 또 한 번 그녀의 앞에 서게 된다면 마침내 그때엔, 그녀에게 의미 있는 한 마디를 건넬 수 있을만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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