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사랑의 포옹
첫눈 / 이삭빛
가을이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소리에 그대여, 슬퍼하지 마라.
가을이 깊어져 겨울이 되어서야
네가 내게로 올 수 있나니
그대여!
겨울은 어쩌면 내 생에 가장 빛나는 봄날,
그리움의 주머니에 네 눈빛을 넣고
네가 좋아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에
눈송이 같은 미소로 마중 나가 있을 테니,
사랑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청춘으로 내게 와라.
이 시는 읽을수록 아픔을 가진이를 위로하는 시로 읽혀진다. 총 4연으로 이루어진 시에서 1연의 비중은 다른 연들에 비해 1행이 길다. 2, 4연은 감정의 고조가 느껴지는 배열을 지니고 있다. 3연은 1연에서의 대상이 화자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것을 볼 수 있다.
1연은 가을의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속절없이 속세의 시간이 흘러감을 슬퍼하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당부하는 화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속세의 시간은 단지 시간일 뿐 낙엽을 다 던져버린 나무의 본질을 보여주는 겨울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정하게 일러준다. 그리고 겨울 속의 본질이 바로 너와 네가 만날 수 있는 진실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2연에서 바로 겨울이 오히려 생애에서 가장 빛나는 날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본질만이 남는 시간. 그 시간에 인간과 인간, 한 여자와 한 여자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봄날의 푸르름이 아름답다고 아는 사람은 이어지는 모든 계절이 소중함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모든 계절이 사명을 다 한 겨울이 되면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 이유를 묻게 되는 시간이 된다.
3연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다독이듯 화자가 말을 건넨다. 여름철에 녹색으로 예쁘게 잎이 만발하고 가을에 노란 색으로 변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에서 상대방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마중길에는 눈송이 같은 차갑지만 흰 백색의 순수함을 가진 미소를 가지고 마중을 나갈 것이라고 화자는 상대방에게 부드럽게 말을 건넨다. 그리움을 한 가득 담아서 그 마중길에 순백의 미소를 띄고 서성거릴 것이라고 말한다.
4연에서 사랑의 아픔을 벗어던지라고 말하면서 순수한 모습 그대로, 청춘의 그 모습 그대로 오라고 손짓한다. 사랑의 아픔을 알고 나면 시니컬해지거나 현실 타협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아픔이 있어도 아픔을 겨울 나무처럼 훌훌 다 털어버리고 나면 아픔을 앓는 사람의 본질, 존재의 본질이 그 안에 있게 된다.
결코 말과 언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한다. 말로 위로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마중나가서, 그것도 그(녀)가 좋아하는 메타세콰이어 길 어귀에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렇게 아픔이 있는 혹은 있을 법한 이를 마음으로 감싸안으려는 따뜻함이 녹여있는 4연의 화자는 1연의 상대방을, 그(녀)의 아픔을, 그 아픔을 가진 존재를 완전히 끌어안는다.
그래서 이 시는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공감과 연민의 시이다.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긴다는 뜻의 연민이라고 하면 비이성적인 감정이라고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연민은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 compassion[컴패션]이라는 뜻으로 되어 이 시의 아픔을 나누려는 공감적인 마음을 이해하기 쉽다. compassion[컴패션]에서 com컴은 "함께"이고 passion[패션]은 "아픔"이다. passion[패션]이 보통은 "정열, 열정"이라는 뜻이지만 가끔 아픔을 나타내는 단어로도 쓰인다. 그래서 compassion[컴패션]은 "남의 고통을 함께 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삭빛 시인의 시는 상처받고 아픈 영혼을 위해 자신의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자 하는 화자의 이미지를 아름답게 구사한다.
#시이야기 #이삭빛시인 #첫눈 #연민 #공감 #마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