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던 아기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품에 폭 안겨 옹알이조차 못 하던 그 작은 존재가 이제는 내게 안부를 묻는 카톡을 보낸다. 키가 벌써 160cm를 넘었다는 말에, 아이의 성장 속도만큼이나 지나간 나의 시간이 실감 났다. 내 기억 속 아이는 여전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쥐고 있는데, 세상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설을 앞둔 집안 분위기는 온통 새 가족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친척 오빠와 동생이 각자 결혼할 사람을 데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3월의 신랑과 4월의 신부가 될 두 사람을 떠올리니 묘한 기분이 든다. 축하하는 마음 한편으로,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해 나보다 먼저 '진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그들을 보며 괜한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 반에서 가장 예뻤던 친구와 공부를 제일 잘했던, 전교생이 다 알던 커플이 성인이 되고 다시 만나 내년에 결혼한다는 소식이었다. “우리 사진 좀 있어? 네가 실장이었으니까 왠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서 “ 친구의 부탁에 외장 하드를 탈탈 뒤졌다. 먼지를 털어내듯 찾아낸 단체 사진 속에서 앳된 얼굴로 붙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사진 속 우리는 영원히 열여섯 살일 것 같았는데, 우리는 어느덧 생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딸기 농사를 짓는 친척 오빠네 집에 들렀다. 오빠는 내게 “네가 지금 스물여섯이지?”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오빠. 나 벌써 서른하나야.” 내 대답에 오빠는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내가 마흔이구나. 나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었어.”
오빠의 그 말이 머리를 쿵 치는 것 같았다. 나만 시간이 멈춘 듯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속도로 공평하게 나이를 먹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시간의 흔적은 곳곳에 선명했다. 할머니의 흐릿해지는 기억, 부모님의 깊어진 무릎 통증. 아직 젊다고만 생각했던 부모님은 어느새 환갑을 넘겼다. 지금 내 나이에 우리 부모님은 이미 언니를 품에 안은 단단한 보호자였는데, 나는 왜 아직도 가끔 내가 덜 자란 어린애처럼 느껴지는 걸까.
어딜 가나 막내였던 내가 이제 교회 청년부에서는 최고참 맏이다. 그러나 정치권에 들어서면 나는 여전히 '어려도 한참 어린' 취급을 받는다. 처음 정치를 시작한 26살로부터 5년이 흘렀다.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 참 '애기'였다 싶으면서도, 원내 제1당을 이끄는 자리에 앉아 참 모질게도 견뎠구나 싶어 가여운 마음이 든다.
그 시절은 몸과 마음이 모두 고단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를 이야기했지만, 날 선 정치적 수사 속에서 숱한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공격의 화살은 나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주변인들에게까지 향했다. 이제야 고백하건대, 지금의 나라면 그때처럼 무모하게 덤비지 못했을 것 같다. 당시의 나는 서툴렀지만, 정치의 비정함을 몰랐기에 오히려 용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치 생태계의 흐름을 어느 정도 깨우쳐버려, 그때만큼의 순수한 용기를 낼 수 있을지 스스로 묻게 된다.
내가 꿈꾸는 것은 '자리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변화를 위한 정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들이 정치를 시작하려면 소위 당의 ‘어른들’에게 줄을 서야 하는 구조가 견고하다. 시민의 삶을 살피기보다 누구의 눈에 띄느냐에 따라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생존이 결정되는 이 구조는 분명 기이하다.
얼마 전 시의원에 도전하고 싶다는 청년을 만났다. 지역 행사를 쫓아다니며 얼굴 도장을 찍으라는 조언을 듣고 있다고 했다. 물론 필요한 일일 테지만, 그것이 과연 '시민을 위한 정치'의 본질일까? 정치의 본령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구조하고 삶을 나아지게 하는 일인데, 그들만의 리그에서 간택받아야만 기회가 주어지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다.
주변에서는 공부를 더 해라, 밑바닥부터 굴러라, 혹은 정치를 접으라는 조언들이 쏟아진다. 서른하나. 한국 나이로는 어엿한 삼십 대지만, 만 나이로는 여전히 이십 대라고 우길 수 있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어린 게 뭘 아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 얼른 나이를 먹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오늘이라는 시간을 처음 살아보는 초보자들이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의 예민한 고민을 온전히 알 수 없듯, 마흔 살 친척 오빠의 책임감이나 환갑 넘은 부모님의 무게를 다 알 순 없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정치에 비어있는, 더 많은 '청년'과 '청소년'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정치는 결국 자기가 발 딛고 있는 세대의 고통을 대변하고, 그 집단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세대라고 해서 고민이 모두 같지는 않겠지만, 동시대를 관통하며 쌓아온 공통의 경험은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더 많은 청년이 정치의 장으로 들어와야 한다. 지금의 정치권에는 여전히 '나'를 대변해 줄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나 자신이 나의 삶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다.
“나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구나”라는 친척 오빠의 말은 내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처음 살아보는 오늘을 견디며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동료들이다. 앳된 친구들이 부부가 되는 경이로운 변화 속에 나의 서른하나도 흐르고 있다. 비록 지금 당장 완벽한 답을 찾지는 못했더라도, 나는 나의 속도로 묵묵히 나아가려 한다. 누군가의 삶을 지키는 정치라는 오랜 꿈을 향해, 한 뼘 더 자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