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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10. 2022

인천, 제2의 고향

에피소드 2-나는 엄마였다

 2000년에 우리 가족은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나는 대학에 합격하고 서울에서 계속 살았기 때문에 서울을 벗어나 산다는 것에 자신이 없었다. 남편이 건설 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아파트를 공사하게 되어 아파트 분양을 받고 싶어 했다. 처음에 서울을 떠난다는 불안감에 반대하였지만 결국 남편에게 설득당해 아파트를 신청하게 되었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던 검단이란 곳이었는데 조금 큰 평수의 아파트를 분양받게 되었다. 아파트에 당첨되었지만 IMF가 터져 어려웠던 시절이다.      


 입주하기 전에 처음으로 분양받은 아파트를 보러 남편과 함께 가보았는데 너무 멀어 마음이 내키지 않아 계속 투덜거렸다. 가는 길에 묘지도 있고 너무 시골 같은 주변 환경에 거기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중간에 건축이 중단되기도 하였다. 시간이 더 걸려 2000년 3월에 무사히 아파트가 완공되어 우리 가족은 입주하였다. 좋은 것은 집이 넓어 방도 많았고, 새집이라 깨끗한 것뿐이었다.  

   

 입주하였지만 교통편이 너무 나빠 처음에는 아파트와 송정역을 오가는 버스를 아파트에서 운영하여 서울을 오가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서울로 출근을 하였고 아들들도 서울로 등교하여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검단이 막 개발되기 시작한 시절이라 대중교통이 별로 없어서 주로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였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에 갈 때면 몇 번을 갈아타야 하였고 노선도 계양으로 돌아가는 버스여서 시간도 많이 걸렸다.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잠들어 종점까지 가는 일도 있었고 버스에 신주머니 등 물건을 두고 내려 잃어버리기도 하였다.      


 그 아파트에 입주하여 지금까지 이사도 가지 않고 계속 살고 있다. 옆에 낮은 동산도 있고 평수도 꽤 큰 편이라 아파트값은 서울처럼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사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지금은 그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고 지하철도 들어서고 공항철도도 생겨서 서울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다닐 때 목동에 있는 학원에도 다녔는데 퇴근하며 학원에 가서 데려오고, 작은아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야자 때문에 밤 10시에 학교에 가서 데려오기도 하였다. 가끔 남편이 회식을 하게 되는 날에는 대리운전을 불러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데려오기도 하며 중․고등학교 6년 동안 고생이 많았는데 아이들이 그걸 알까 모르겠다.   

   

  인천에서 벌써 22년째 살고 있다. 지역 주민들과 운동도 같이 하며 모임도 있고 해서 이곳이 제2의 고향이 되었다. 지금은 신도시도 생겨 교통이 좋아졌지만 서울로 출근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그게 불편하다. 특히 검단 신도시 입주로 인해서인지 올림픽 도로가 많이 막혀 

“올림픽 도로를 지하로 만들면 안 되나.”

하고 출근할 때마다 남편에게 말한다.

이제 퇴직이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아 ‘이제 조금만 참자.’하고 오늘도 즐겁게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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