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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un 09. 2022

세상을 다 얻었다

에피소드 2-나는 엄마였다

 남편이 중동에 파견 나가 있는 3년 동안 두 번의 휴가가 있었다. 한번 휴가를 나오면 약 한 달 정도 국내에 있다가 들어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아기가 생기지 않아 친정어머니께서 걱정을 무척 많이 하셨다. 그 추운 겨울에 강에서 흑염소를 잡아 한약을 넣고 푹 고아서 가져다주셨다. 그 흑염소 삶은 물은 먹기가 너무 힘들어 지금도 흑염소 하면 속이 다 이상하다. 그 당시에는 시험관 아기 시술 같은 것도 없었던 시절이라 친정엄마 생각에 흑염소가 좋다고 하니 딸을 위해 그렇게 한 것 같다.    

  

 3년 후에 남편이 귀국한 후 유명한 산부인과에 가서 불임 검사를 하였으나 이상이 없음을 알고 한약을 먹고 매일 새벽에 기초체온을 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 날 기초체온이 올라간 후 내려오지 않아 산부인과에 갔더니 임신이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은 임신 테스트기가 있어서 간편하게 검사를 할 수 있지만 그때는 병원에 가야만 알 수 있었다. 소식을 들은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셨다.    

 

 결혼하고 4년이 넘은 1987년 11월 1일에 큰아들이 태어났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친정어머니께서는 강릉에 있는 집도 세를 주고 서울로 손자를 돌봐주시러 올라오셨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께서 덩실덩실 춤을 추시며 좋아하셨고 친정어머니께서는 아기가 깰까 봐 두세 시간씩 아기를 안고 잠을 재웠다. 지금은 출산휴가도 90일이고 육아휴직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는 그런 제도가 없었다. 아기를 낳고 두 달 출산휴가가 끝나고 학교를 다시 나갔고 2월 말에 세 번째 학교로 전근 가게 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여서 매일 걸어서 출근하였다.   

  

 큰아들이 태어난 지 1년이 되어 집에서 돌잔치를 하였는데 초대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거의 1주일 동안 매일 잔치를 한 것 같다. 물론 그만큼 축하도 많이 받았다. 지금은 돌잔치해주는 곳이 있어서 편하지만 그때는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던 때여서 음식 준비도 힘들었지만 끝나고 치우는 일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힘든 일은 친정어머니가 계셨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큰아들을 낳고 16개월 뒤인 1989년 2월 20일에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둘째는 아기였을 때 배고픈 것을 못 참았다. 배가 고프면 아파트가 떠나갈 듯 울다가도 우유병을 입에 쏙 넣어주면 뚝 그쳤다. 사랑스러운 두 아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두 아들과 함께 우리 가족은 너무나 행복하였다. 내가 학교에 가면 친정어머니께서 아기를 봐주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척 힘드셨을 것 같다. 집안일까지 하시며 두 아이를 양육하셨으니까. 친정어머니 은혜는 죽을 때까지 갚아도 다 못 갚을 것 같다.     


 큰 아들이 다섯 살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아기를 늦게 낳아서 빨리 유치원에 보내고 싶었다. 만 3세가 지난 다음에 주변 유치원을 알아보다가 조금 규모가 큰 애동 유치원 몬테소리 반에 입학시켰다. 유치원에서 울기도 하고 오줌도 옷에 싸기도 하였지만 유치원에 잘 다녔다. 그러던 중 가을에 갑자기 다리가 아파 구부리지 못하여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오래되어 병명이 잘 생각나진 않지만 결핵성 ○○염 그런 거일 수 있다고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러웠던 것은 성장통이었다. 큰아들은 평소에도 겁이 많아서 주사 맞는 것을 무척 무서워하였다. 수액을 맞을 때마다 전쟁을 치르는 듯하였고 그럴 때마다 안되면 줄로 몸을 묶어놓고 이마에 주사를 놓기도 하였는데 그런 아이를 보며 엄마인 나도 같이 울었다. 다행스럽게 치료가 잘되어 퇴원하였고 동생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학습을 많이 다녔던 것 같다. 아빠가 사진 동우회 회원으로 활동을 하여 사진을 찍으러 함께 다니며 아이들이 모델을 해 주곤 하였다.

 어느 날 과천 경마장에 아이들은 그리기 대회에 참가하고 아빠들은 사진 촬영을 하러 갔다. 아빠 중 한 분이 자전거를 빌려준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갔는데 나중에 보니 작은아들이 없었다. 모두 놀라서 찾으러 다녔는데 찾지 못해 밞만 동동 거리다가 방송도 하였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 함께 간 외할머니가 출구 쪽에서 아이를 찾아서 데리고 오셨다. 아이는 돌아보니 친구들이 없어 우리가 집에 갈 때 아빠 차 있는 주차장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 울지도 않고 이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기특하지만 아빠한테 혼나고 내 등 뒤에 숨었다.


‘휴우, 그때 둘째를 잃어버렸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무사히 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 후에도 둘째는 호기심이 많아서인지 두 번 정도 더 잃어버렸다가 찾았지만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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