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에 퇴직하고 두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려고 했다. 그래서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쉬는 동안 브런치에 글 쓰고 운동하고 요리하며 너무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며 가끔
"주님, 퇴직 후에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자리를 예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를 했다.
초등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아주 가까운 학교다.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이럴 땐 집이 서울이 아닌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은 내가 교장으로 퇴직한 것을 다 알기에 시간 강사를 한다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인데 집이 여기라 나를 아는 교직원이 없기에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이것도 봉사지. 하나님께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인 걸 아시고 일자리를 예비해주신 걸 거야.'
이런 마음이었다.
1주일 정도 수업을 하며 느낀 점은 나는 가르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는 거였다. 교사 시절 학교 업무 하느라 수업에 집중 못 할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철저한 수업 준비와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만 바라보고 수업에 올인하니까 수업이 너무 재밌고 왠지 참 교사가 된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된 시간 강사는 12월 말까지 꽉 채워서 하게 되었다.
퇴직하며 그냥 놀지 않았다. 아이들도 가르치고 브런치에 글도 쓰며 바쁘게 지냈다. 주야간 보호센터에 다니시는 친정엄마도 돌보고 주말에는 쌍둥이 손자들을 돌보며 지냈다. 하지만 힘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을 했고 친정엄마도 손자도 모두 소중한 가족이니까. 새해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된다.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새롭고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
늘 긍정적으로 살았다. 긍정적으로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힘든 일도 이길 수 있다. 퇴직 후 4개월은 글을 쓰며 지루한 줄 몰랐다. 요리도 글이 되고 여행도 육아도 글이 되었다. 주일날 목사님 설교 중에 단어 하나도, 길 가다가 들려오는 말 한마디, 수업 에피소드, 주변 풍경 한 자락도 글로 태어났다.
이제 책 한 권을 퇴고한다. 너무 뿌듯하다.퇴직을 앞둔 분이나 퇴직하시고 무료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브런치 글벗님들의 라이킷과 따뜻한 댓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