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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Apr 14. 2023

교장을 졸업하고 계약직 교사로 사는 요즘


2022년 8월 말에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였다. 퇴직하면 여행 다니고 도서관 다니며 책 읽고 그냥 편하게 지낼 줄 알았다. 그리고 새로 시작할 제2의 인생은 그동안 했던 일과 다른 일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2022년 9월 1일부터 집 근처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되었다. 3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코로나에 확진되어 시간 강사가 필요하다고 교감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교감 선생님께서 연락을 주셨을 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하겠다고 했다.

‘내가 교장이었는데 어떻게 시간 강사를 할 수 있겠어.’

하는 마음도 갖지 않았다.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좋아했다. 퇴직하고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할 것 같았다. 일주일을 담임하면서 수업에만 집중하며 학생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오고 예뻐 보였다.


이렇게 시작된 시간 강사는 다른 학교로 이어지고 2023년 1월에 끝났다. 특히 한 학교에서는 5, 6학년 과학 교과와 도덕 수업을 3개월 동안 담당하게 되었다. 요즘 5, 6학년 수업은 큰 용기가 필요한 학년이라 여러 번 거절하다가 교감 선생님께서 사람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여 그냥 한 달만 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학교는 선생님께서 출근 못 할 때는 시간 강사를 채용하여 수업을 맡긴다. 시간 강사는 초등학교 교원 자격증이 있으면 가능하다. 시간 강사를 못 구할 때는 교과 선생님이나 동학년 선생님께서 교과 시간으로 수업이 없을 때 보결수업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결을 오래 하다 보면 선생님들의 피로도가 커져서 너무 힘들다. 강사 구하는 일은 주로 교감 선생님께서 하지만 못 구할 때는 교장도 알아보며 강사 구하는 일에 학교가 집중한다.


교사가 한 달 이내로 결근을 하면 시간 강사를 채용하지만 한 달이 넘으면 공고를 통해 기간제 교사를 채용해야 한다. 시간 강사는 수업만 끝내고 교실 정리하고 퇴근하면 되는데 기간제 교사는 정규교사와 마찬가지로 퇴근할 때까지 근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 강사가 부담이 적다.


시간 강사나 기간제 교사도 코로나 이전에는 만 62세까지만 할 수 있었다. 퇴직한 교원은 할 수 없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강사 수요가 많아지면서 강사 인력풀이 부족하여 교육청에서 한시적으로 나이 제한을 풀어주어 퇴직 후에도 가능하게 되었다.      


나는 교사를 31년 6개월, 교감으로 5년 6개월, 교장으로 5년 6개월 전체 42년 6개월을 교직에 몸담고 있다가 2022년 8월 말에 퇴직하였다. 퇴직하며 시원 섭섭하였다. 아니 정말 홀가분한 마음이어서 시원하다는 쪽이 더 컸다. 교사는 교사 나름대로 보람도 있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담임은 1년 동안 한 학급을 책임져야 한다. 중간에 바꿀 수 없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담임을 교체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담임하며 유난히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2005년 근무하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로 발령 났을 때이다. 처음 가는 학교라서 6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다. 주변에 임대아파트가 많아 저소득층 학생이 많았다. 특히 한 부모 가정 학생들도 많았다. 왠지 내가 학교 엄마로서 잘 돌봐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땐 격주로 토요일에 등교하던 때였는데 토요일에는 급식이 없기에 우유와 같이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 초코파이 등을 사 가지고 가서 우유 급식 시간에 우유와 같이 먹게 하였다. 정말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든 학생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가 찾아온 학생들이 있었고 ADHD 학생들도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웃에 있는 민영아파트 학생들과 비교되어 아이들을 힘들게 했을 것 같다. 학교에서는 그나마 어찌어찌하여 수업을 마칠 수 있었지만 방과 후엔 정말 녹초가 된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특히 전세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대중교통으로 현장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면 다른 손님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몇 번씩 드리며 이동하였다. 그땐 정말 내가 선생님으로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명예퇴직을 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그래도 잘 참고 견딘 것이 기적인 것 같았다.


그렇게 힘들게 했던 학생들이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가며 가끔 찾아오기도 했다. 그때 왜 그렇게 선생님 말씀을 안 들었는지 죄송하다고 했다. 고마웠다. 늦었지만 철이 든 것 같아서다. 지금은 그 제자들이 사회에서 자리매김하고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학생들만 바라보고 집중했더라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6학년 부장이었고 교육 복지 학교라 학교 업무도 많았다. 승진할 욕심으로 교육대학원에 전문상담교사 양성과정까지 이수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좀 더 따뜻하게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시간 강사로 나가면서 아이들만 바라본다. 수업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장난꾸러기도 이해가 되고 예쁘다. 내 마음이 여유가 있으니 모든 게 긍정적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관리직으로 퇴직했기에 학교의 세밀한 부분도 살필 수가 있다. 다른 선생님들에 대한 배려도 실천하고 교감 선생님의 애로사항도 이해하게 된다. 특히 학부모 민원에도 예민해지기 때문에 말 한마디도 조심하게 된다.


교장으로 퇴임했기에 더 조심스럽다. 정규 교사가 아니기에 학교에 대한 소속감은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는 약간 소외감도 느껴진다. 교장이었을 때 시간 강사로 오신 선생님들께 늘

“우리 학교에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 많이 예뻐해 주세요.”

라고 늘 인사를 드렸었다.

아마 내가 나간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많이 뵙진 못했지만 아마 그런 마음이실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근무하는 동안 폐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야겠다고 늘 생각하며 근무하였다.


시간 강사를 마치고 올 때면 교감 선생님께서

“선생님, 열심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학년 부장님께서 아이들이 선생님 좋아한다고 칭찬하셨어요.”

그 말 한마디에 피곤했던 마음도 녹는다.

3개월 시간 강사를 마치고 올 때 5학년 학생들이 감사 편지도 써서 주고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해주었다. 특히 말 잘 안 들어 힘들었던 학급 학생들이 헤어질 때는 더 따뜻한 인사말을 해 주었다. 표현은 못 했어도 마음은 따뜻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다.     


올해도 인근 초등학교에 계약직 교사로 출근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교장으로 퇴직하신 분이

‘왜 다시 지지고 볶고를 하려 할까?’

라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직 학교와 헤어질 준비가 안 되어 학교로 다시 출근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학교에 출근하는 것이 가슴 뛰게 하는 일이므로 나는 올해도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 출근한다.


올 3월 2일부터 인근 초등학교 2학년 담임으로 출근하고 있다. 이번에는 시간 강사가 아니라 계약직 교원 중에서 기간제 교사이다. 교감, 교장 기간 동안 학생 교육은 틈틈이 하였지만 담임은 오랜만이라 걱정이 태산이다. 교실은 어떻게 꾸며야 하고 학부모님들과 일 년 동안 소통은 또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되었다. 담임은 학생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요즈음은 학부모와의 관계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참 교사가 되고 싶어 학교로 출근하지만 잘 해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기에 잘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매일매일 나에게 마술도 걸어 보며 요즘 행복하다. 이 마술이 나에게 걸려 풀리지 않기를 기대한다. 우리 반 학생들이 나를 좋아하고 신뢰하길 바란다.  

올해도 이렇게 가슴 뛰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요즘 마음이 젊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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