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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Aug 21. 2022

유 선생님 사모님의 여든여섯 생신 잔치


유 선생님 사모님은 우리 엄마 이름이다. 물론 이름은 따로 있다. 친정아버지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 선생님 사모님이라고 부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에도 사모님이라는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아시는 분은 다 사모님이라고 불러준다.


유 선생님 사모님이 여든여섯이 되었다. 우리는 유선생님 사모님이 늘 건강하고 즐겁게 사실 거라고 믿었다. 친구를 좋아하고 뽕짝을 좋아해서 늘 즐거우셨기 때문이다.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셔서 라디오를 틀어놓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소리 내어 따라 부르셨다. 목청이 크셔서 담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가사 모르는 것은 적어 달라고 해서 빛바랜 수첩에 끼워두고 외우셨다.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으셨는데도 계산도 척척하시고 말씀도 너무 잘 하셨다. 가끔 많이 배우신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다. 그런 말을 듣고 오는 날이면 신나서 말씀을 더 많이 하신다. 노래부를 자리에 가면 마다하지 않고 박자가 틀려도 흥겹게 노래를 부르셨다. 손주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앉혀놓고 늘 유행가를 불러서  할머니가 자주 부르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지하철이나 병원에서도 모르는 사람하고도 어찌나 이야기를 잘하시는지 가끔 엉뚱한 이야기를 하실까 봐 불안할 때도 많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 딸은 뭐하고 큰 아들은 어디 다니고 작은 아들은 직업이 무엇이고 집안 내력을 다 말씀하신다. 아들 딸 자랑하시며 자식 잘 키우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니셨는지.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신다. 별일 아닌 이야기도 재미나게 말씀하시며 작은 것도 잊지않고 칭찬하시고 늘 '고맙습니다 '를 달고 사셨다. 한 마디로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다.



그런 친정어머니가 작년에 넘어지면서 어깨가 탈골되어 20일 정도 병원에 입원하신 후 인지가 갑자기 나빠지셨다. 어쩜 그 이전부터 조금씩 나빠지셨는데 혼자서 생활하셔서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퇴원하시며 혼자 생활하실 수 없어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시는데 매주 수요일에 외부 강사가 와서 노래교실을 한다. 어머니는 수요일을 매일 기다리신다. 노래교실을 할 때마다 1등으로 나가서 꼭 노래를 부르신다고 한다. 인지가 나빠지셔서 기억력이 없으신데도 옛날에 불렀던 노래 가사는 어떻게 기억하시는 지 신기하다. 친정아버지 18번 섬마을 선생님, 청춘을 돌려다오, 사랑의 이름표, 내마음 별과 같이 등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현철 노래를 특히 좋아하셔서 잘 부르신다.


그리고 많은 것은 기억 못 하시는데 생일은 똑똑하게 기억하신다. 음력 7월 27일, 올해는 8월 24일이 생신이다. 생신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드릴 수 있을까 싶어 매년 생신상을 잘 차려드리고 있다.



8월 20일 토요일에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 손녀, 손자며느리, 그리고 증손자까지 모여 생신을 축하해 드렸다. 우리 둥이가 큰 소리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왕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짝짝짝~

촛불도 껐다. 촛불도 한번에 못 끄셔서 손주들이 거든다.


둥이는 할머니가 많아(친할머니, 외할머니, 고모할머니 등) 친정 어머니를 '왕 할머니'라고 부른다. 증손자를 세 명이나 보았으니 유 선생님 사모님 인생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인지가 나빠지셨어도 지금처럼 센터에 다니시며 즐겁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허리가 안 좋으셔서 걷는게 불편하시긴 하지만 식사도 잘 하시고 잠도 잘 주무신다. 그냥 이대로 인지가 더 나빠지지 마시고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셨으면 좋겠다.


유선생님 사모님께서 오늘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하신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자주 모여 즐겁게 해 드려야겠다.


유 선생님 사모님,

여든 여섯 생신을 우리 가족 모두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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