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내 취재기를 다뤄볼까 한다. 별별 취재를 다 해봤지만, 이번에 풀어볼 기획은 상당히 독특하고 신선하다. 천천히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재용 가석방된다는데 한번 가볼래?" 새 언론사에 입사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국장이 내게 건넨 말이다. 구치소야 많이 가봤지만, 입사 직후 외부 출장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저녁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 '뻗치기'를 하자는데, 30살 차이 나는 직속 선배와 같이 있을 시간이 무척 퍽퍽했다.
거부하고 싶었지만, 일단 적응부터 해야겠지. 피할 방도가 없을까 고민하다 결국 승낙했다. 취재 일정은 이틀 후. 그때까지 주말을 실컷 즐겨야지!
여자친구를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오니 9시 40분. 안락한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스르르 잠들 계획으로 스마트폰을 열었는데, 국장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다.
감이 안 좋은데... 역시나 전화해 보니 "그냥 지금 당장 갈래?" 에라 모르겠다. 일은 빨리 치를수록 좋다지 않은가?
맞다. 이재용 가석방은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우리는 가석방 며칠 전 서울구치소에 가서 그보다 일찍 석방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이재용에 대한 특종이 나올지.
사실 우리의 주 콘텐츠는 '과연 이재용이 전자발찌를 찼을까?'였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싶겠지만, 가석방 출소자의 경우 전자발찌를 차는 게 원칙이다.
다만, 법원 심사위원회에 전자발찌 미부착을 신청해서 결정되면 안 찰 수 있다. 가석방 인원 10명 중 2명이 전자발찌를 안 찬다고 한다.
솔직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갔다. 절대로 이재용 회장이 전자발찌를 찰 리가 없겠지. 하지만 정언명령과도 같은 당연함이 오류 아니겠는가?
가석방 대상 중 80%가 전자발찌를 차는데, 이재용은 왜 안 차도 되는가? 법적 판단이 아닌, 사회적 혹은 정치적 판단이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며칠 전 서울구치소를 찾은 것이다. 당신네들은 전자발찌를 찼냐고. 혹시 이재용의 수감 생활에 대해 들은 거 없냐고.
가석방 출소는 새벽 5시경 이뤄진다. 우리는 혹시 모를 방문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저녁 10시에 도착했다.
개미 한 마리도 없었다. 젠장. 당했다 싶었다. 국장은 심심하다며 오전 4시까지 6시간 동안 떠들었다. 이런 수다쟁이는 서정진 회장 이후로 처음이었다.
새벽 4시쯤 되니 사람들이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검은 세단을 끌고 온 이들은 하나둘 차에서 내렸다.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고, 밤공기가 추운지 몸을 으스렁 흔들었다. 난 그들을 모르는 체했다. 멀리서 봐도 깡패였으니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국장은 무심한 표정으로 "가봐"라고 툭 던졌다. 젠장. 5초간 망설이다 핸드폰 녹음기를 켜고 다가갔다. 그들을 만나기 15초 전, 12명 정도 되는 깡패들이 날 쳐다봤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새낀 뭐지?“
깡패들이 나를 둘러싼 채 몸을 압박했다. "아저씨 뭐예요?" "가세요" "뭐 하자는 거예요?" 설마 때리기야 하겠어?
다행히 내 키가 193cm다. 어디 가서 꿀리진 않는다. 게다가 난 경호원 출신 아니겠는가? 당당히 밀고 들어갔다. 6명의 깡패가 육각형을 이뤄 날 둘러쌌다. 수학 공부, 특히 도형을 참 좋아했나 보구나. 나머지 6명은 뒤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날 노려봤다. 조심히 말해야겠다.
용기를 내 물었다. "혹시 어떤 분 기다리는 거예요?" 내 물음은 가차 없이 찢겼다. "아저씨 뭐예요?", "가세요", "뭐 하자는 거예요?"라며 압박했다. 도망갈까? 아니야. 기자 정신으로 더 부딪혀 보자. 설마 때리기야 하겠어?
다시 물었다. "혹시 이재용 회장에 대해 들은 거 없으세요? 안에 계신 분 통해서라도..." 디질라게 욕먹었다. 여기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나름 자존심은 있어서 웃으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공쳤다.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생기는 게 취잿거리다. 그들이 던진 욕과 구치소 주변 인물의 목소리를 담아 르포 기사를 작성했다.
이재용 회장 가석방 전 서울구치소 측에 전자발찌 부착에 대해 질문했다. 가석방 대상자의 전자발찌 착용 비율과 심사 기준 등을 물었지만, 대답은 법률뿐이었다. 이 또한 기삿거리다.
마침내 이재용 회장의 가석방 당일이었다. 각계각층의 시민이 모였다. 못해도 300명 정도 되지 않았을까? 취재진 100명과 노조와 진보 단체 100명, 보수 단체 100명이 함께 했다. 돌이켜보니 골고루 모였다. 대화합의 장이었네.
현장 인터뷰를 진행했다. 진보 단체 2명, 보수 단체 2명에게 이재용 가석방의 옳고 그름을 물었다. 아시다시피 답은 뻔했다. 전자발찌에 대해 물으니 이색적인 답변이 나왔다.
진보 진영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무척 당황했고, 보수 진영은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라며 강하게 분노했다.
마침내 이재용 회장이 나왔다. 생각보다 큰 키에 수척한 몸을 지녔다. 누군가는 이재용 회장에게 귀티가 난다던데, 그런 건 모르겠더라. 평범한 아저씨는 아니지만, 그리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몸 관리 잘한 40대 중년처럼 보였다.
소규모 언론사의 비애로 인해, 카메라와 마이크 하나 없이 홀로 방문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영상 하나 못 찍었다.
그러나 발목은 유심히 찍었다. 모두 흔들린 턱에 기사로 송출할 순 없었지만, 발목은 말끔했다. 아마 그는 전자발찌를 안 찬 20%에 해당하지 않았을까?
이재용 가석방 취재기를 통해 색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을 갖게 됐다. '이재용은 당연히 전자발찌를 안 차겠지'라는, 우리도 모르게 느낀 권위 의식을 깰 수 있었다.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딨겠는가?
이후로 이재용 회장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열심히 전국 방방곡곡과 세계를 다니고 있다. 언젠가 그를 만나 가석방 취재기를 들려줄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 본 기사는 삼성전자 홍보팀 부장에게 다이렉트로 송출했다. 답변은 "잘 읽었습니다"였던가?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우리가 당연하게 느낄 수 있는 부조리를 취재해 본 귀중한 경험
지금의 이재용 회장은 무척 밝지만, 그땐 무척 어둠에 가득한
이재용 회장을 다시 만나보면 꼭 그날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