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
영국 기숙학교로 홀로 떠날 때,
사람에 대한 기대는 이미 버린 지 오래였다.
너무 많이 기대했고, 너무 많이 실망했기 때문이다.
공부만 하겠다고 다짐하며 탔던 비행기 안에선,
그곳에서 인생의 귀인들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기숙사를 들어간 날의 저녁에 만났던 크리스티는 나의 봄날의 햇살이 되었다.
그 당시의 나와 다르게 그녀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능력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햇살 같은 웃음처럼, 그녀는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는 조금 더 따스한 세상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눈을 통해 나는 살아가며 조금 더 자주 미소 짓는 법을 배웠고,
어느새 그녀의 따뜻한 웃음을 닮아갔다.
뒤늦게 우리의 기숙사에 합류한 사린은 나에게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파도가 자주치는 얕은 해변 같은 나였지만 사린과 함께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졌다.
내가 말하는 고민을 그저 말 없이 들어주지만, 나를 안심시키는 물소리 같은 사람.
그렇게 잔잔하다가 신나는 일이 있곤 하면 그 누구보다 파격적인 이야기를 던져
우리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번져나가게 했다.
그런 그녀의 호수에서 헤엄치며 나는 듣는 것의 위력을 알게 되었고,
그녀와 비슷한 잔잔함을 가질 수 있었다.
나의 딸 같은 케일리는 나의 해피 바이러스이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려 존재만으로도 귀엽지만
솔직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 어느 상황에서도 내가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솔직함에 나도 나의 엉뚱한 면을 보이는 게 무섭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우울함에 잠식할 때면 어떻게든 끌고 나와 서로의 얼굴에 웃음을 그려주고는 갔다.
나와 케일리가 함께 있는 기숙사 방은 늘 시끄럽고 행복했다.
그녀를 통해 나의 엉뚱한 면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 사람과 이렇게까지 잘 맞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에게 온 최고의 바이러스였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고등학교 마지막 이 년을 함께 보냈고,
사랑으로 서로를 지탱했다.
나의 입시 실패와 내신 점수의 하락에 처음으로 소리 내 울던 날,
그들은 내 방에서 무너지는 나를 둘러싸 안았다.
몇 달 뒤, 의대에서 기적적으로 추합 메일이 온 날,
그들은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꿈을 꾸게 된 나를 둘러싸 안았다.
그들은 나의 친구였고,
나의 스승이었으며,
나의 가족이기도 했다.
엄마가 우리의 사진을 보고 전화로 그런 말을 하셨다.
“엄마는 너 영국 보낸 거 후회 안 해. 사진에서 너가 오랜만에 너처럼 웃더라”
얼마 전에 나의 셋 친구들을 보러 홍콩에 갔다.
그들과 찍은 사진에는 난 이제 그들 덕에 모든 사진에서 나처럼 웃는다.
다만 그 웃음에는 이제
크리스티의 따스함이,
사린의 잔잔함이,
케일리의 솔직함이 묻어난다.
이제 이 웃음은 나 같은 웃음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다시 웃는 법을 알려준 사람들이다.
- 출국 준비로 1주일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