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랑
“꼭 가야겠니? 엄마는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래…”
대학에 들어오고 한국인 모임을 나가겠다는 나에게 엄마가 했던 말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다시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며 갈 준비를 마친 나였지만 엄마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 밖에서의 한국인들에 대한 좋은 경험이 없어서였을까,
한국인들에게 동질감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나였다.
해외에 처음 나오면 자연스레 한국인들과 친해지게 된다.
내가 놓치고 있을 것만 같은 나의 나라의 파편일 거라는 착각에
같은 언어를 쓰는 그들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하지만 사람 수가 적고,
모두가 마음속에 외로움과 불안을 안고 사는 공동체는
주로 많은 잡음을 동반한다.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기분을 경험한 뒤로는 고의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스스로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 에게 혹시나 기대를 할까 조마조마했다.
그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에,
차라리 기대를 하지 않기로,
차라리 그런 기회를 방관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고등학교에 한국인 학생이 한 명도 없었고,
대학교 과 특성상 한국인이 많이 없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자연스레 그때 받았던 상처는 잊혀 갔다.
상처가 잊히면 불안이 차지했던 공간을 희망이 채우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말한 한국인 모임을 갔을 때에도 비슷했다.
대학교에 오고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한국인들에게서 오는 소속감으로 조금은 채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대를 품고 간 모임에서 나는
고등학교까지 한국에서 나온 “굉장히 정통적인 한국인”들로 둘러싸였다.
어쩌면 그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없었겠지만
혹시나 서로 너무나 비슷한 그들 사이에서 튀어 보일까,
홀로 치열한 눈치 싸움을 했다.
그러다 그들이 하는 말에 “이 사람들도 아니구나”라는 감정이 느껴질 때마다
또다시 나 홀로 품었던 기대는 무너져갔다.
외국인들이라는 다수에서 한국인이라는 소수로 사는 나는,
한국인들의 모임에서도 다수에 끼지 못했다.
위로받을 집이라고 착각했던 한인회는
마치 나에게 착각하지 말라는 듯 착실하게도 알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엄마에게
“엄마가 맞았어. 괜히 기대했나 봐… 내가 이상한 거면 어떡해” 이야기했다.
한인회에서 잘 지내는 다른 한국인들이나 나의 오빠와 상반되게 늘 기름 같이 분리되는 스스로가 참으로 어려운 밤이었다.
하지만 종종 너무나 따스한 한국인들을 만나고는 한다.
주로 나와 비슷하게 마음속 집이 사라진 사람들이다.
우리는 비슷한 외로움을 지니고,
서로를 지탱해 주는 존재가 기꺼이 되어준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우리 학년에 한국인이 있다 하여 잔뜩 긴장했었다.
하지만 알아가다 보니 한국계 영국인이었던 그녀는 나와 너무나 비슷하게 자라왔고,
처음으로 독립을 해가며 느끼는 어려움도 비슷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소속감을 느꼈다.
얼마 전, “우리, 우리나라를 함께 알아가 보자”며
그녀와 함께 떠난 경주 여행에서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 둘 다 혹시 우리가 충분히 한국인스럽지 못해서 서로 잘 맞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마저 비슷한 우리를 보며 우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에게도 내가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집의 조각이 되어줄 수 있기를 빌게 되는 밤이었다.
상처도, 위로도 한국인에게서 왔다.
나를 움츠러들게 한 것도,
다시 웃게 만든 것도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충분히 한국인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보다.
서로를 진심으로 품어주고 지탱해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여전히 집 없는 스스로가 불안할 때는 많다.
하지만 그런 불안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제 안다.
우리의 웃음과 눈물은 모여 서로가 지칠 때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든다.
그 보금자리 덕분에 나는 오늘도 낯선 길 위에서 조금은 덜 두렵게,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