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언어
“옷 벗고 들어오세요”
러시아에서 외국인 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간 보건소에서 들은 말이다.
흉부 x-ray를 찍으러 들어갈 때,
나에게는 가운이 쥐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보는 한가운데, 창문이 뻥 뚫린 x-ray실 안에서
나는 옷을 벗고 차가운 x-ray판에 몸을 갖다 대야 했다.
그 뒤 만으로 15살이던 나에게는 조금 낯설고, 두려운
마약 반응 검사, 성병 검사가 이어졌다.
비슷하게 모든 검사를 마친 나의 부모님과 나는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차에 탔다.
“심지어 이 검사가 비쌌어…”라고 중얼거리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외국인으로서 사는 건 생각보다 더 힘든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창밖의 일렁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쳐다보았다.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운 수치심과 다르게 창밖의 풍경은 참으로 화려해 보였다.
아무리 국제적인 나라를 가도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이 뚜렷한 순간들이 있다.
영국 비자를 받을 때 비자 센터에 가면 나의 얼굴이 찍히고, 열 손가락 지문을 등록하게 한다.
러시아 때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이 순간이 늘 그렇게 싫었다.
꼭 내 이마에 “이방인”이라고 적는 것 같아서,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너무나 쉽게 나의 탓을 할 것 같은 취약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던가,
이 순간은 비자 발급 후에 점점 옅어져 간다.
영국에서 지내는 생활이 길어질수록,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수록
내가 여기에 스며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희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희망은 입시가 시작하자 보기 좋게 부서졌다.
영국 의대는 외국인 학생을 최대 7.5%만 뽑는다.
입시에 무지했던 나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모른 채 대학교를 넣었다.
탈락
탈락
탈락
4개의 대학교 중 3개의 대학교에 보기 좋게 광탈했다.
내국인 학생들보다 훨씬 더 높은 조건을 원함에 숨김이 없었다.
뒤늦게 알아본 바로는 외국인 학생의 합격률이 6-8%로 질게 뻔한 싸움이었던 것이다.
내국인 친구들은 같은 대학교들에서
합격 통보를 받는 와중에 외국인인 나는 불합격 이메일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성공 앞에서 나는 “축하해”라는 말을 전하며 미소를 지었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의 성적과 능력은 나와 비슷해도
여권 색이 달랐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웃지 못하는 내가 싫었고,
내 국적을 원망하는 나 자신이 더 미웠다.
마지막 희망이었던 대학교에서 면접 이메일이 오고,
열심히 준비했지만 외국인 학생은 내국인보다 10점을 더 받아야 했다.
단 1점 차이로 떨어진 그날, 그게 그렇게 서러웠다.
여권 색 때문에 나의 19년이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은 유독 나를 아프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에게 나의 국적은 유리천장이 되었다.
있는 이유를 안다,
외국 학생들은 자격증을 따고 영국에서 의사로서 살아가지 않을 확률이 더 높으니까,
영국은 영국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이성적인 이해가 되어도 감정적인 이해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저 그 유리천장은 너무나 단단하고, 무거워 나를 참으로 많이도 눌렀다.
결론적으로는 입시가 잘 풀리며 그 유리천장을 깰 수 있었지만
깨면서 유리 파편들에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직도 어떻게 숨기려 해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자격지심이 남아있다.
이 상처는 나으려면 얼마나 또 오래 걸릴까.
비자 발급이 더 어려워졌다던데, 나는 괜찮을까.
시민권은 받는 게 맞는 걸까.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속에 종종 갇히고는 한다.
아마 앞으로도 다른 유리 천장을 만날 것이다.
이방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하지만 그저 다시, 부딪힐 뿐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유리 파편에 다쳐 생긴 상처를
자격지심이 아니라 성숙으로 품어낼 어른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