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언어
내 머릿속에는 오래전부터 고장 난 스위치가 있다.
어느 언어를 켜야 하는지, 더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부터 한국인이 없는 학교, 학과를 진학해서인지,
일 년 중 영국에 있는 아홉 달은 한국어를 쓸 일이 생기지 않는다.
유일하게 한국어로 이야기할 때는 가족들과 전화를 할 때이지만
엉뚱한 단어를 골라 엄마를 웃겨버리기 일쑤이다.
한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면 3개월 정도를 한국어를 쓰며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영어가 생각이 나지 않기 시작한다.
과외를 잘 진행하다가도 탁 막히는 지점이 생기면 민망해하며
꽉 찬 머릿속에서 원하는 단어를 찾아가야 한다.
그럴 때마다
“아… 미안해요. 선생님이 0개 국어라 그래요.”라고 이야기한다.
얼마 전부터인가,
숏폼에서 “명예 영국인” 또는 “유학 갔다 온 친구”
라며 영어를 섞어 쓰는 한국인에 대한 조롱이 담긴 콘텐츠가 큰 열풍이 불었다.
가벼운 풍자일 수는 있다.
하지만 단어가 막히는 순간마다 그 영상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움추러들었다.
나의 모습이 보기 싫었을까,
겉멋이 들어 보였을까,
처음 그런 영상을 보았을 때, 이런 걱정들로 머리가 가득 찬 걸 보니 생각보다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 뒤로는 철저하게 그러는 습관을 없앴다.
한국인에게는 힘들더라도 모두 한국어로 이야기하려 했고,
문자를 보내다 맞춤법이 틀릴 것 같을 때에는 맞춤법 검사기를 돌렸다.
영어로 대화할 때에도 예외는 아니다.
나의 악센트 때문에 혹시나 사람들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할까,
“아메리카노”같은 단어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음 한 속에 부끄럼이 자리를 잡고는 한다.
에세이 과제를 하다가도 나의 부족한 어휘실력에 매번 놀라며 사전을 옆에 두고 유사어를 찾기 바쁘다.
오빠는 아직도 내가 영국 악센트가 아니 미국 악센트에 가까운 “잡종 악센트”를 가지고 있다며 놀린다.
그 말을 늘 웃어넘기고는 하지만 꼭 그 어느 나라 언어도 잘하지 못하는 나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리고는 한다.
이민자들은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주눅 들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나를 보존하며 다른 문화에 섞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국인으로서의 나는 점점 무너지는데,
그렇다고 외국인으로서의 내가 강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집 없는 민달팽이처럼 서성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