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금자리
그렇게 한국이 낯설어질 때즘,
대학교 입시가 시작되었다.
엄마와 대학은 한국으로 약속을 하였기에 영국과 한국 입시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뒷편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결코 쉬운 입시는 아니었다.
눈이 안 부은 날이 없을 정도로 울었고,
많은 걸 내려놓으며,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너무나도 아팠던 1년이었다.
엄마가 한국 입시에 필요한 자료를 받으러
영국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가 떠난 날.
낮잠에서 깬 나에게
영국 대학교로부터 추가 합격 메일이 와 있었다.
제일 먼저, 1년 동안 내 울음소리에 익숙해져 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붙었어.”
예정에도 없던 합격이였다.
모든 걸 내려놓았던 우리에게,
정말 뜻밖의 소식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울음이 들려왔다.
무너지는 딸을 받쳐내느라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던 사람이,
처음으로 나의 입시 앞에서 울고 있었다.
고이 접었던 자신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한 딸을 바라보며
엄마는 조용히 속삭였다.
“다행이다.”
그렇게 또 다시 나의 영국행이 확정되었다.
의과대학이기에 적어도 5년의 학부 생활, 2년의 수련 기간은 영국에서 보내야 한다.
7년을 또 영국이라니.
고등학교 때 돌아오기로 정해져 있던 한국을,
대학교 때 돌아오겠다며 미루었고,
이제는 기한 없이 언젠간 돌아오겠다며 미룬 것이다.
태풍으로 인해 영국으로 떠나는 비행기가 취소되어
원래 떠나려던 날의 이틀 뒤에 떠나게 되었다.
떠나기 전날 밤,
우리 가족은 평소와 같이 코스트코를 가 손을 꼭 잡고 구경하다가
불고기 케밥을 사 먹었다.
볼이 빵빵해진 나를 보는 물기 어린 부모님의 시선에 마음이 미어졌다.
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가 미루고 미루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체크인을 하고 게이트에 들어갈 시간이 다가왔다.
“이제 들어가야지” 아빠가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말이 나와.
이제 진짜 안 돌아오면 어떡해. 진짜 떠나는 건데” 엄마는 울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엄마는 안다. 내가 겨울방학에 돌아올 거라는 걸.
아마 그녀가 말한 건,
내가 한국에 정착하지 않을 길을 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속절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빠는 이를 꽉 물고 나에게 가라 했고,
그렇게 미련 많은 딸은 또 끊임 없이 뒤를 돌아보며 떠났다.
비행기 안에서도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쏟아졌다.
엉망이 된 얼굴 위로, 런던의 불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었다.
“도착했네” 익숙한 풍경에 정신이 들었다.
히드로 공항의 어수선한 분위기,
회색의 하늘,
웅웅 울리는 영어 소리.
다시 그 자리에, 그 사이 두 살을 먹은 내가 서있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계절을 향한 문을 열었다.